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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만날 이유 없다"지만…日정상 제안에 '차관급' 격 낮춘 北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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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29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최근 북ㆍ일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고위급 협의 의사를 밝힌 것과 관련 “만나지 못한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다만 “일본인 납치 문제 등에 대한 일본의 입장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전제 조건으로 제시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16일 딸 주애와 함께 '비상설 위성발사준비위원회' 사업을 현지 지도하고 위원회의 '차후 행동계획'을 승인했다고 조선중앙TV가 17일 보도했다. 그러면서 정찰위성 1호기의 조립 상태 점검과 우주 환경시험이 끝났으며, 탑재 준비까지 완료됐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16일 딸 주애와 함께 '비상설 위성발사준비위원회' 사업을 현지 지도하고 위원회의 '차후 행동계획'을 승인했다고 조선중앙TV가 17일 보도했다. 그러면서 정찰위성 1호기의 조립 상태 점검과 우주 환경시험이 끝났으며, 탑재 준비까지 완료됐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박상길 북한 외무성 부상은 이날 담화를 통해 “만일 일본이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변화된 국제적 흐름과 시대에 걸맞게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대국적 자세에서 새로운 결단을 내리고 관계 개선의 출로를 모색하려 한다면 조ㆍ일(북ㆍ일) 두 나라가 서로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일본은 말이 아니라 실천·행동으로 문제 해결의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밝혔다.

박 부상은 대화의 가능성을 언급하며 “기시다 일본 수상이 어느 한 집회에서 조ㆍ일 수뇌들 사이의 관계를 구축해나가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발언했다”며 이날 담화가 기시다 총리가 북·일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언급한 데 대한 공식 반응임을 분명히 했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27일 도쿄에서 열린 일본인 납북자 귀국 촉구 대집회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조건 없이 만날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외교가에선 이날 북한의 담화에 대해 “실제 북ㆍ일 정상회담을 염두에 둔 제안과는 거리가 멀다”는 반응이 나왔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은 북ㆍ일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일본인 납북자 문제에 대해 북한의 입장을 완전히 수용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며 “과거 동물 뼈 등을 납북자의 유해로 속여 보내며 관련 사안이 종결됐다고 주장했던 북한의 입장을 일본 정부와 일본 국민들이 수용할 가능성은 희박하고, 결국 이번 담화를 대화에 응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평가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13일 공화국전략무력의 전망적인 핵심주력수단으로, 중대한 전쟁억제력의 사명을 수행하게 될 새형의 대륙간탄도미싸일(미사일) '화성포-18' 형 시험발사가 단행되였다"고 지난달 14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13일 공화국전략무력의 전망적인 핵심주력수단으로, 중대한 전쟁억제력의 사명을 수행하게 될 새형의 대륙간탄도미싸일(미사일) '화성포-18' 형 시험발사가 단행되였다"고 지난달 14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일본 정부는 1970∼1980년대 일본인 17명이 북한으로 납치됐고,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 純一郞) 당시 총리의 방북 후 일시적 귀환 형태로 돌아온 5명을 제외한 12명이 여전히 북한에 남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12명 중 8명은 사망했고, 나머지 4명은 아예 북한에 오지 않았다고 맞서고 있다.

그런데도 북한은 이날 “일본은 이미 다 해결된 납치문제와 우리 국가의 자위권을 놓고 그 무슨 문제 해결을 운운하며 조ㆍ일 관계개선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며 “지나간 과거를 한사코 붙들고 있어가지고는 미래를 향해 전진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일본이 납북자 문제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전격적으로 수용하지 않을 경우 대화에 응하지 않겠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여지가 있다.

실제 북한은 이날 일본 정상의 대화 제안에 대한 공식적인 화답 성격의 담화를 내면서 담화의 주체를 ‘김정은의 입’ 역할을 하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또는 북한의 공식적 외교 분야의 수장격인 최선희 외무상이 아닌 박상길 부상으로 격(格)을 낮췄다. 북한의 외무성 부상은 한국의 외교부 차관에 해당하는 지위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장인 그랜드프린스호텔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한미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장인 그랜드프린스호텔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한미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뉴시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의도적으로 격을 낮춘 담화를 낸 이유는 스스로 북ㆍ일 대화가 실제 성사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며 “그럼에도 북한은 한ㆍ미ㆍ일 공조가 급속히 공고화되는 상황에서 일본을 ‘약한 고리’로 여기고 일본이 민감하게 여기는 납북자 문제를 꺼내 일본에 고민 거리를 주는 동시에 3국 공조에 균열을 만들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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