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1채중 10채를 빌라왕 3명이 장악…목동 신축 'T하우스' 비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 양천구 목동의 ‘T하우스’는 총 11세대 규모의 신축빌라다. 2021년 3월 준공된 신축 빌라답게 현관에는 최신 보안장치와 폐쇄회로(CC)TV, 엘리베이터 등을 갖춰 세입자 선호도가 높았다. 지하철역까지 가파른 경사지를 20분 이상 걸어야 도착할 수 있지만, 세입자들은 ‘T하우스’에 거주하기 위해 2억~3억원대 전세가를 기꺼이 지불했다.

서울시 양천구 목동에 위치한 신축 빌라 T하우스는 11세대 중 10세대가 전세사기 피해를 당하거나 당할 예정인 상태다. 신혜연 기자.

서울시 양천구 목동에 위치한 신축 빌라 T하우스는 11세대 중 10세대가 전세사기 피해를 당하거나 당할 예정인 상태다. 신혜연 기자.

이모(30)씨도 2021년 6월 보증금 3억원에 전세계약을 맺고 이곳에 입주했다. 집주인이 주택 1139채를 보유한 ‘빌라왕’ 김모(43)씨라는 걸 모른 채 계약을 맺었던 이씨는 최근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들었다. 김씨의 사망 소식이었다. 전세 계약 만료일을 한 달 앞두고도 보증금을 돌려받을 길이 막막했던 이씨는 지난 8일 자택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시신의 부패가 심해 경찰은 이씨의 죽음에 ‘사인 불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김씨 집 앞에는 “힘들면 힘들다 말하지 그랬어요. 최소한 손이라도 잡아줄 수 있었잖아요. 왜 그랬어 이사람아. 이제 힘든 거 없이 푹 쉬어요”(윗집 이웃)라는 이웃의 쪽지만 덩그러니 남았다.

지난 8일 서울시 양천구 자택에서 숨진 이모(30)가 세들어 살던 T하우스의 등기부등본. 이씨는 건축업자 B씨로부터 집을 매수한 '빌라왕' A씨와 전세 계약을 맺었다. 이후 주택 1139채를 보유하던 김모씨가 돌연 사망하면서 이씨의 집은 압류를 당한 상태가 됐다.  [인터넷등기소 캡처]

지난 8일 서울시 양천구 자택에서 숨진 이모(30)가 세들어 살던 T하우스의 등기부등본. 이씨는 건축업자 B씨로부터 집을 매수한 '빌라왕' A씨와 전세 계약을 맺었다. 이후 주택 1139채를 보유하던 김모씨가 돌연 사망하면서 이씨의 집은 압류를 당한 상태가 됐다. [인터넷등기소 캡처]

지난 8일 서울시 양천구 목동의 한 빌라에서 숨진 이모(30)씨의 집 앞에 이웃이 국화꽃 한 다발을 남겼다. 이씨는 빌라 및 오피스텔 1139채를 소유한 '빌라왕' 김모씨의 세입자로, 다음달 전세 계약이 만료되는 상황이다. 양천경찰서는 ″A씨의 죽음은 전세사기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밝혔다. 신혜연 기자

지난 8일 서울시 양천구 목동의 한 빌라에서 숨진 이모(30)씨의 집 앞에 이웃이 국화꽃 한 다발을 남겼다. 이씨는 빌라 및 오피스텔 1139채를 소유한 '빌라왕' 김모씨의 세입자로, 다음달 전세 계약이 만료되는 상황이다. 양천경찰서는 ″A씨의 죽음은 전세사기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밝혔다. 신혜연 기자

 건축업자 A씨는 2021년 T하우스를 지었다. 이후 11가구를 모두 전세 계약으로 돌린 뒤 이중 10채를 서로 다른 ‘빌라왕’ 3명에게 팔았다. 지난해 10월 사망한 김씨가 4채, 휴대번호 끝자리가 ‘2400’이라서 ‘2400 빌라왕’으로 알려진 또 다른 김모(51)씨가 3채, 2021년 7월 제주도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또 다른 ‘빌라왕’ 정모(당시 42세)씨가 4채를 각각 사들였다. 결국 한 가구를 제외한 10가구가 서로 다른 3명의 집주인에게 이미 전세사기 피해를 당했거나, 피해가 예정돼 있는 셈이다.

전세사기가 본격화한지 반 년이 지나면서 정부 대책도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4일부터 연소득 7000만원 미만, 전세금 3억원 이하 세입자에 대해서는 저리 대환대출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 25일에는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될 경우 ①최우선변제금을 최장 20년간 무이자로 상환할 수 있도록 하고 ②살고 있는 집이 경매로 넘어가면 우선매수권을 부여받을 수 있도록 한 ‘전세사기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T하우스 세입자들은 정부 대책에 대해 “체감효과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숨진 이씨의 옆집에 거주중인 최모(40대)씨는 2년 전 2억7000만원에 전세계약을 맺어 4월 이미 전세만기가 도래했다. 하지만 집주인이 집을 압류당한 채 사망하면서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가 됐다. 최씨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저리 대환대출을 제공한다고 해서 기대했지만, 알아보니 내가 가입한 대출 상품은 7월에나 적용 가능하다고 했다”며 “전세 만기가 끝났지만,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해 한 달 이자만 100만원씩 내고 있다”고 호소했다.

‘2400 빌라왕’ 김모씨의 세입자인 4층 거주자 이모(35)씨는 아예 대환대출 지원 대상이 아니었다. 이씨는 “저리 대환 기준이 3억 미만 주택이라서 3억 3000만원에 계약한 나는 해당도 되지 않는다”며 “2년 전 전세가가 한창 높았을 때라서 울며 겨자 먹기로 들어온 전셋집인데 3억이 넘는다는 이유로 대환 정책에서까지 소외될 줄은 몰랐다”며 억울해했다. 서원석 중앙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이번 대책을 보면 피해 금액을 직접 지원해주거나 상환해주는 방식이 아니라 이자를 대신 내주거나 상환을 미뤄주는 방식”이라며 “이번 법 제정으로 어느 선까지 피해자들을 도와줘야 하는 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어느 정도 이뤄진 만큼, 정부는 구체적인 세부 지침을 마련해 피해자들이 빠른 시일 내에 법적 구제를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