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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명 '대우조선해양로'까지 싹 바뀐다…45년 역사 추억속으로 [르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골리앗 크레인에서 지운 그 '사명'

지난 26일 경남 거제시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옛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 있는 '골리앗 크레인' 2기 중 1기(오른쪽)에 'DSME 대우조선해양'이 지워져 있다. 안대훈 기자

지난 26일 경남 거제시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옛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 있는 '골리앗 크레인' 2기 중 1기(오른쪽)에 'DSME 대우조선해양'이 지워져 있다. 안대훈 기자

지난 26일 오후 경남 거제시 옛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여의도 1.5배 규모인 490만㎡(150만평) 조선소 부지 안팎에서 단연 눈에 띈 건 노란색 갠트리 크레인(Gantry Crane) 4기였다. 높이 100m 이상, 폭 150m 안팎 크기를 자랑한다. 초대형 축구 골대를 보는 것 같다. 갠트리 크레인은 조선소 상징이다. 초대형 선박에 들어가는 블록 등 900t급 중량물을 최고 91m까지 들어 올릴 수 있는 핵심 생산설비여서다. 압도적인 크기와 견인 능력으로 ‘골리앗 크레인’으로 불린다.

지난 26일 경남 거제시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옛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 있는 '골리앗 크레인'에 'DSME 대우조선해양'이 지워져 있다. [사진 한화오션]

지난 26일 경남 거제시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옛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 있는 '골리앗 크레인'에 'DSME 대우조선해양'이 지워져 있다. [사진 한화오션]

골리앗 크레인 4기엔 21년 전 가로 70m, 세로 10m 크기로 ‘DSME 대우조선해양’ 사명이 칠해졌었다. 현재 2기엔 이 사명이 지워진 상태다. 지난 23일 대우조선해양이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사명을 ‘한화오션’으로 변경하면서다. 새 주인을 맞은 대우조선해양이 조선소 상징을 새로 단장한 것이다. 이미 옥포조선소도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조선소 4개 출입구 간판, 신뢰관 정문 환영문구도 마찬가지다.

지난 26일 경남 거제시 옛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의 정문 간판이 '한화오션'으로 바뀌어 있다. 안대훈 기자

지난 26일 경남 거제시 옛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의 정문 간판이 '한화오션'으로 바뀌어 있다. 안대훈 기자

옛 대우조선해양 근무복의 회사 로고가 'DSME 대우조선해양'에서 'Hanwha Ocean(한화오션)'으로 바뀌어 있다. 안대훈 기자

옛 대우조선해양 근무복의 회사 로고가 'DSME 대우조선해양'에서 'Hanwha Ocean(한화오션)'으로 바뀌어 있다. 안대훈 기자

안내판도 새주인 색(色)으로 

진회색의 근무복은 아직 그대로였다. 하지만 직원들은 왼쪽 가슴 부근 회사 로고를 ‘Hanwha Ocean(한화오션)’으로 바꿔 달았다. 안전 헬멧 등 작업 장비도 한화오션으로 차례로 변경할 예정이다. 흡연장소ㆍ주차장ㆍ진입금지ㆍ샤워장 등 수십여종 안내판도 대우조선해양을 나타내는 푸른색에서 한화그룹을 상징하는 오렌지색으로 바뀌고 있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생산작업과 날씨, 휴가 기간을 고려해 사명 변경 작업은 빠르면 8월 초쯤 돼야 모두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명예도로명 남아 있지만 바뀔 듯

지난 26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서문'이라고 적혀 있는 시내버스 정류소. 안대훈 기자

지난 26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서문'이라고 적혀 있는 시내버스 정류소. 안대훈 기자

45년에 걸친 대우조선해양의 역사는 막을 내리게 됐다. 그간 대우조선해양은 ‘조선업 빅3’로 불리며 삼성중공업과 함께 거제 지역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다. 그만큼 거제 곳곳에는 대우조선해양 흔적이 아직 고스란히 남아 있다. 거제 시내 도로 안내판에는 여전히 ‘대우조선해양’이 적혀 있다. 옥포조선소 인근 시내버스 정류소 12곳도 마찬가지다. 조선소 부지를 둘러싼 6.3㎞ 구간 도로의 명예도로명도 ‘대우조선해양로’다.

조만간 이들 역시 ‘한화오션’으로 바뀔 예정이다. 온라인 거제 시내버스정보시스템에선 이미 변경 작업이 이뤄졌다. 거제시는 명칭 변경이 필요한 각 면ㆍ동 지역의 도로 안내판 등을 조사 중이다. 명예도로명도 주민의견 수렴 등을 거친 뒤 이견이 크게 없으면 7월쯤 ‘한화오션로’로 공고할 계획이다.

'세계 1위 조선기업' 대우의 추락

지난 1월 경남 거제시 옛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현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작업 현장. 연합뉴스

지난 1월 경남 거제시 옛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현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작업 현장. 연합뉴스

대우조선해양의 역사는 1978년 대우그룹이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를 인수하면서 시작됐다. 대우조선공업의 탄생이다. 이듬해 국내 최초 화학제품 운반선, 1992년 한국 최초 전투함 ‘이천함’을 건조(배를 설계해 만듦)했고, 93년 세계 선박 수주 1위를 달성했다. 그러다 1998년 IMF 여파로 2000년 대우그룹이 해체, 독립기업으로 거듭난 2002년부터 지금의 대우조선해양 명칭을 써왔다. 과거 조선업 호황기 땐 여러 새 역사를 써내려갔으나 불황에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5년 크게 휘청였다. 수조원대 대규모 영업손실에 분식회계 사태까지 터졌다. 대우조선해양이 문 닫으면 실직 등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심각했다. 이에 대주주 KDB산업은행이 경영정상화를 위해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했으나 과거 영광을 되찾기엔 역부족이었다.

한화오션으로 새출발

한화오션 국문 CI(기업 이미지). [사진 한화오션]

한화오션 국문 CI(기업 이미지). [사진 한화오션]

결국 대우조선해양은 ‘주인 없는’ 신세가 됐다. 그러다 다행히 지난해 12월 한화그룹에 인수, 6개월 여 만에 ‘한화오션’으로 새롭게 출발하기에 이른다. 한화그룹은 한화오션에 2조원을 투입한다. 유상증자에 참여해 경영정상화를 꾀하겠단 전략이다. 권혁웅 한화오션 신임대표는 “한화오션의 장점인 기술 중심의 우수한 문화를 기반으로 지속가능한 친환경 기술 기업, 세계 최고의 경쟁력으로 안정적인 이익을 실현할 수 있는 글로벌 기업으로 육성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지역사회 “과거 영광 재현 기대” 

대우조선해양 안팎에선 한화오션의 새출발에 거는 기대가 크다. 대우조선해양에서 39년째 근무 중인 도규환(57)씨는 “주인 없는 회사에서는 결정하는 부분이 굉장히 늦다 보니까 이 격변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며 “오너 기업에서는 빠른 결정으로 변하는 환경에 잘 적응할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조선업 호황기를 경험했던 지역 상인과 주민들의 기대도 남다르다. 거제 옥포동에서 30여년을 살았단 박모(63)씨는 “대우조선이 잘 나갈 땐 지역경기가 워낙 좋아 돈이 많이 돌았다”며 “‘지나가던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란 말이 나올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이어 “대우조선해양이 한화라는 주인을 만났으니, 과거의 영광을 되찾아 지역경기가 활성화되길 바란다”고 했다.

조선소 인근에서 20년 가까이 횟집을 운영한 박현옥(53)씨는 “대우조선해양과 지역민들은 상생 관계다. 장사하는 입장에서 대우가 잘 되면 우리가 잘 되고, 대우가 힘들면 같이 힘들었다”며 “오랫동안 들었던 대우조선이란 이름이 사라져 아쉬운 맘은 들지만, 예전처럼 잘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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