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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39) “차라리 죽을지언정 불의(不義)한 일은 하지 않겠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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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은 이전을 재촉해서 신야를 공격했습니다. 서서는 조인이 신야를 공격할 것을 미리 알고 유비에게 비어있는 번성(樊城)을 빼앗도록 했습니다. 유비는 서서의 계략대로 관우를 보내 번성을 차지했습니다. 조운이 공격해 온 조인군을 맞았습니다. 조인도 이전을 보냈습니다. 이전은 10합을 겨루자 힘이 부쳤습니다.

조조의 사촌동생이자 부하장수인 조인. 출처=예슝(葉雄) 화백

조조의 사촌동생이자 부하장수인 조인. 출처=예슝(葉雄) 화백

조인은 팔문금쇄진(八門金鎖陳)을 펴고 대항했습니다. 서서가 이를 간파하고 유비에게 격파방법을 알려줬습니다. 조운이 나서서 진을 깨고 대승을 거뒀습니다. 조인은 그제야 함부로 대적하면 안 된다는 이전의 말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전세(戰勢)는 기울었습니다. 조인은 한밤중에 유비군을 기습하기로 했습니다. 서서는 이러한 조인의 생각도 읽고 유비에게 역공하게 했습니다. 조인은 대패해 번성도 잃은 채 허도로 도망갔습니다.

유비는 조인에게서 빼앗은 번성에 입성했습니다. 현령의 사위인 구봉을 매우 좋게 보고는 양자로 삼았습니다. 유비의 성을 따서 유봉이라고 불렀습니다. 관우는 좋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형님께서는 이미 아드님이 계시는데 무엇 때문에 양자가 필요합니까? 훗날 반드시 분란이 생길 것입니다.

내가 아들처럼 대하면 저도 나를 아버지처럼 섬길 터인데 무슨 분란이 생기겠느냐?

조조는 조인이 패하고 와서 사죄하자 매번 이길 수만은 없다며 용서합니다. 서서가 누구인지 궁금해하자 정욱이 알려줍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격검(擊劍)을 좋아하고 잘했습니다. 남의 원수를 갚아 주려고 살인을 하고 머리를 풀어헤친 채 얼굴에 칠을 하고 달아났는데 관리가 잡아 이름을 묻자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는 사람을 찾으려고 수레 위에 달아매고 저잣거리로 조리를 돌렸지만 아는 사람이 있어도 감히 나서서 말하지 못했고, 친구가 몰래 풀어주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름을 바꾸고 도망쳐 완전히 새사람이 되어 열심히 공부했고 유명한 스승을 두루 찾아다녔는데, 늘 사마휘와 담론을 즐겼습니다.

인재를 보면 꼭 영입하고 싶은 조조입니다. 조조는 서서를 옆에 두고 싶었습니다. 정욱이 그를 데려오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서서는 지극한 효자입니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노모만 살아계시는데 지금 그의 아우 서강 마저 죽어 노모를 모실 사람이 없습니다. 승상께서 사람을 시켜 그의 어머니를 속여 허도로 데려다 놓고 아들을 부르는 편지를 쓰게 해 보내면 서서는 반드시 올 것입니다.

조조는 정욱의 제안대로 서서의 노모를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부르는 편지를 보내라고 했다가 벼루로 맞는 혼뜨검을 당했습니다. 승상인 조조는 크게 노해서 당장에 목 베어 죽이라고 난리 쳤습니다. 정욱이 만류하고 조조에게 말했습니다.

서서 어미가 승상의 노여움을 거스른 것은 죽으려고 한 것입니다. 만일 죽인다면 의롭지 못하다는 욕이나 부르게 되고, 서서 어미의 덕을 이루어 주는 꼴이 됩니다. 서서 어미가 죽는다면 서서가 죽기를 한하고 유비를 도와 원수를 갚으려 할 것이니 살려두는 것만 못합니다. 서서의 몸과 마음이 두 곳으로 갈린다면 설사 유비를 돕는다 하더라도 힘을 다하지 못할 것입니다. 당분간 서서 어미를 살려두소서. 서서가 이곳에 와서 승상을 받들도록 그를 속여 넘길 계책이 제게 있습니다.

조조는 정욱의 말을 옳게 여겼습니다. 정욱은 서서의 어머니를 찾아가 서서와 의형제라고 속이고 자주 편지와 선물을 보냈습니다. 서서 어머니도 편지로 답장했습니다. 정욱은 서서 어머니의 글씨체를 모방해 서서를 부르는 편지를 썼습니다. 이를 모르는 서서는 ‘아우도 죽고 혼자 있으니 얼른 오라’는 어머니의 편지를 받고는 눈물이 샘솟았습니다.

서서는 편지를 가지고 유비에게 가서 견마지로(犬馬之勞)를 하지 못하고 어머니에게 가야 하는 사정을 말했습니다. 유비도 큰 소리로 울면서 대답했습니다. 이 사실을 안 손건이 유비에게 서서를 보내지 말 것을 주문했습니다. 서서를 보내지 않고 정욱이 우려하는 일을 만들면 서서는 전력을 다해서 조조를 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유비가 정색하고 말했습니다.

아니 될 말이네. 남에게 그 어머니를 죽이게 하면서 내가 그 자식을 쓴다는 것은 불인(不仁)이고, 잡고 못 가게 해 그들 모자의 정을 끊는다는 것은 불의(不義)이네. 나는 차라리 죽을지언정 불인·불의한 일은 하지 않을 것이야!

유비는 서서와 짧은 밤을 꼬박 새우며 이별주를 마셨습니다. 둘의 처지가 서로 난감해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마시면 마실수록 정신은 더욱 말짱했습니다.

지금 늙으신 어머님께서 갇혀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나니 비록 금파옥액(金波玉液;좋은 술)이라 해도 목으로 넘어가지 않습니다.

나는 공이 떠난다는 말을 들으니 양쪽 팔을 다 잃은 것 같아 비록 용간봉수(龍肝鳳髓;매우 진귀한 음식)라고 해도 쓰기만 하오.

모종강은 유비가 서서를 보내는 것을 조조가 관우를 보내는 것과 비교했습니다.

'조조가 관우를 억지로 잡아 두지 않았던 것은 형제간의 의리를 다하게 하려는 것이었고, 유비가 서서를 억지로 잡아 두지 않았던 것은 모자간의 은혜를 다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조조와 유비의 보내주는 마음이 똑같았던 것일까? 아니다. 조조는 관우를 거짓으로 놓아주고 뒤로 막다가 막지 못하게 되어서야 보내 주었다. 그러나 유비는 서서를 처음부터 깨끗이 보내 줄 뿐이다. 또한, 조조는 원소가 유비를 죽여주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유비는 오직 조조가 서서의 어머니를 죽일까 봐 걱정한다. 거짓되고 진실한 그들의 차이는 하늘과 땅보다도 크다.'

드디어 날은 밝고 서서는 유비와 헤어졌습니다. 유비는 아쉬운 마음에 신야의 경계까지 전송했습니다. 떠나가는 서서가 숲속에 가려 보이지 않자 나무를 몽땅 베어버리라고도 했습니다. 유비의 찢어지는 듯한 마음을 누가 알겠습니까. 눈물만 비 오듯 흘릴 뿐이었습니다. 그때, 서서가 다시 달려왔습니다. 유비는 서서의 생각이 바뀐 줄 알고 기뻤습니다. 하지만 서서는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추천하고 돌아갔습니다.

유비가 서서를 배웅한 사언진 초점촌. 사진 허우범 작가

유비가 서서를 배웅한 사언진 초점촌. 사진 허우범 작가

양양성 밖 20리 융중(隆中)에 살고 있습니다.

서서가 나를 위해 만나볼 수 있도록 청해 올 수 없겠소?

이 사람은 앉아서 부르면 안 됩니다. 사군께서 직접 찾아가셔서 구해야합니다. 만일 이 사람을 얻는다면 주나라가 강태공을 얻고 한나라가 장량을 얻은 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 그는 복룡인 제갈량입니다.

유비에게 제갈량을 추천하는 서서. 출처=예슝(葉雄) 화백

유비에게 제갈량을 추천하는 서서. 출처=예슝(葉雄) 화백

유비는 서서의 말을 듣고 뛸 듯이 기뻤습니다. 이제 꿈에서 깨어난 것 같았습니다. 즉시 넉넉한 예물을 갖추어 관우, 장비와 함께 제갈량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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