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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 달러' 사라졌는데, 원화 힘 못쓴다…"이건 위험하다" 경고 왜

중앙일보

입력

달러 당 원화가치가 1300원 선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나타났던 ‘킹 달러(달러 초강세)’ 현상이 수그러들었음에도 원화 약세는 이어지고 있다. 최근의 원화 약세는 장기간 수출 부진 등 한국 경제의 체력이 약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일종의 경고음으로 여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원화와 달러화를 정리하는 모습. 뉴스1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원화와 달러화를 정리하는 모습. 뉴스1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달러 당 원화가치는 종가 기준 지난달 14일 1298.9원에서 직후 거래일인 같은 달 17일 1311.1원으로 떨어진 이후 46일째 1300원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6일 서울외환시장에서 달러 당 원화가치는 전날(1326원) 대비 1.5원 오른 1324.5원에 거래를 마쳤다. (환율은 하락)

지난해 11월 1400원대까지 떨어졌던 원화 가치는 올해 2월 1220원 수준까지 올라갔는데, 최근 들어 다시 1300원대로 주저앉았다.

지난해 원화 약세의 원인은 ‘킹 달러’였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가파르게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달러 가치가 초강세를 보였고, 다른 통화는 약세를 면하지 못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최근 달러 인덱스는 104 수준을 오르내리고 있다. 달러 인덱스는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준다. 지난해 연중 최고점을 찍었던 지난해 9월 27일(114.11)과 비교하면 9%가량 떨어졌다. 통상 달러 가치가 낮아지면 원화값은 오르는데, 올해는 달러 약세에도 원화 가치가 떨어진 것이다.

올해 원화 약세는 수출 부진과 이에 따른 무역수지 적자 영향이 크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이달 21일까지의 무역 적자 누적 규모는 295억4800만 달러에 이른다. 연간 사상 최대 적자 폭을 기록했던 지난해 전체 무역 적자 규모(478억 달러)의 62% 수준이다. 무역적자는 달러 유출을 의미해 달러당 원화 가치를 끌어내린다. 김찬희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5월 수출도 두 자릿수 감소의 부진한 흐름이 이어갈 것으로 보이고 이는 향후 원화값을 더욱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외부 환경도 원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 우선 위안화 약세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원화와 위안화는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커서다. 외국인 투자자가 외환거래 규제가 많은 위안화 대신 원화를 사고파는 경우가 많아 원화는 위안화의 프록시 통화(proxy·대리)로 여겨진다. 민경섭 SI증권 환관리센터장은 며 “중국의 재개방 효과가 시장의 기대에 못 미치고 중국 지표들이 부진하면서 역외 위안 환율이 7위안을 넘어 상승한 것도 원화 약세 요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다시 긴축의 고삐를 죌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지난 26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미국의 지난달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는 전월보다 0.4% 오르며 시장 예상치(0.3%)를 상회했다. 지난달 전년 대비 근원 PCE 물가지수도 4.7%로 한 달 전(4.6%) 보다 올랐다. 시장은 여전히 미국의 기준금리 동결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연준이 만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추가 인상할 경우 역전된 한국과 미국의 금리 격차는 이미 사상 최대인 1.75%포인트에서 2%포인트로 더 벌어지고, 이는 외국인 자금 이탈에 따른 원화 약세 요인이 될 수 있다. 다만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5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 간담회에서 “환율을 결정하는 건 금리 격차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이달 1일~20일 수출액은 324억43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6.1% 감소했다. 이달 무역 적자는 47억1500만달러로 올해 누적된 적자는 295억4800만달러를 기록 중이다. 사진은 부산 남구 신선대부두 모습. 송봉근 기자

이달 1일~20일 수출액은 324억43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6.1% 감소했다. 이달 무역 적자는 47억1500만달러로 올해 누적된 적자는 295억4800만달러를 기록 중이다. 사진은 부산 남구 신선대부두 모습. 송봉근 기자

수출 회복이 요원한 가운데 원화 가치를 낮추는 대외적 요인도 적지 않아 달러 당 원화가치는 당분간 1300원대를 벗어나기 어려울 거란 전망이 나온다. 달러 당 원화가치 1300원대의 장기화는 한국 경제에 대한 경보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과거 원화가치가 1300원대까지 떨어진 것은 지난해를 빼면,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2001년 카드 사태와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정도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달러를 제외한 모든 통화가 약세를 보였던 지난해는 달러 당 1300원대의 의미가 크지 않을 수 있지만, 올해의 경우는 한국 실물 경제 악화에 따른 대외 신인도 하락을 반영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라며 “현재의 환율 상황을 위험 신호로 여기고 수출 반등을 비롯한 경기 회복에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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