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 가려면 또 연차 내야"…비대면진료 끝난다, 부모 한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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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우리아이들병원 2층에 환자와 보호자 약 150명이 진료 대기를 하고 있다. [병원 제공]

지난 1월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우리아이들병원 2층에 환자와 보호자 약 150명이 진료 대기를 하고 있다. [병원 제공]

“아이가 밤에 고열에 시달릴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응급실 가서 대기할 생각 하니 벌써 한숨이 나오네요.”  

세 살배기 딸을 둔 30대 직장인 A씨는 다음 달부터 앱을 통한 비대면 진료를 이용하기 어려워져 걱정이 크다고 했다. A씨는 “2주 전에도 퇴근 후 돌아오니 애가 열이 오르고 감기 기운이 있었다. 오랜 대기 없이 비대면 진료로 바로 약 처방을 받았는데 이제 가벼운 증상에도 꼼짝없이 야간 병원이나 응급실로 뛰게 생겼다”고 말했다.

다음 달부터 재진 중심 비대면 진료 허용 

다음 달 1일부터 코로나19 위기 경보 단계가 ‘심각’에서 ‘경계’ 수준으로 하향되면서 팬데믹 기간 동안 초진·재진 구분 없이 허용돼왔던 비대면 진료가 종료된다. 정부는 법적 근거가 마련될 때까지 제도 공백을 줄이겠다며 지난 17일 재진 중심으로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는 시범사업안을 공개했다. 만성질환자는 1년 이내, 기타 질환자는 30일 이내 해당 의료기관에서 대면 진료 기록이 있으면 비대면 진료가 가능하다.

하지만 일부 부모들은 30일이라는 기준이 너무 짧아 사실상 비대면 진료를 받기 어려워졌다고 주장한다. 네 살배기 딸을 키우는 김모(31)씨는 “한 달 안에 같은 병명으로 같은 의사에게 진단을 받아야 하는데 아이가 감기인지 다른 질병인지 어떻게 알고 진료를 신청하냐. 현실성이 없다”며 “결국 연차를 내고 병원에 달려가서 대기 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한시적 비대면 진료 이용자 수 현황’ 자료에 따르면 0~14세 사이의 영유아·어린이의 경우 비대면 진료 이용자 수가 2020년 5만7000명에서 2022년 196만 명으로 약 35배 급증했다. 2022년 기준 해당 연령대 인구(약 593만 명) 3명 중 1명꼴이다.

휴일·야간 진료 걱정에 발 동동…의료계는 “초진 허용 불가”

팬데믹 이후 정부가 비대면 진료 서비스를 한시적으로 허용하면서 닥터나우 외에도 다양한 비대면 진료 앱들이 출시됐다. 왼쪽부터 올라케어, 굿닥, 메디르. [각 사]

팬데믹 이후 정부가 비대면 진료 서비스를 한시적으로 허용하면서 닥터나우 외에도 다양한 비대면 진료 앱들이 출시됐다. 왼쪽부터 올라케어, 굿닥, 메디르. [각 사]

온라인 맘 카페에선 당장 다음 달부터 휴일·야간 소아 진료 공백을 우려하는 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복지부는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초안에서 휴일·평일 야간에 한정해 18세 미만 소아·청소년 환자의 초진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도록 열어놓을 생각이었으나 의료계 반발로 “추가 의견을 수렴해 보완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의료계는 여전히 소아·청소년의 비대면 진료 초진 허용은 절대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배기수 아주대 의대 명예교수(전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회장)는 “아이들은 의사소통이 어렵고 특히 전화로 진료하는 건 한계가 아주 많다. 정부가 초진을 허용하겠다고 하는 건 당장 진료 공백이 우려되니 창구를 열어두겠다는 건데 결국 문제가 생기면 의사한테만 책임을 떠넘기는 꼴”이라며 “비대면 진료를 하다가 아이가 사망했을 때 국가가 책임질 게 아니라면 허용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아이들은 증상이 급격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경험 많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대면 진료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말했다. 비대면 진료 대신 달빛어린이병원 등 야간·휴일에 대안을 늘려달라는 부모들의 요청에 대해선 “복지부가 일방적으로 병원 수만 늘리려고 하는데 실효성을 높이려면 현장 의사들과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24일 열린 복지부와의 제9차 의료현안협의체 회의에서도 ‘소아·청소년 초진 허용 불가’ 입장을 전했다고 한다. 회의에 참여한 의협 관계자는 “이건 정말 의사 입장에서 허용할 수 없는 부분이다. 다시 한번 입장을 설명했다”라고 못 박았다.

당국은 오는 30일 건강보험 정책 최고의결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내용을 보고한 뒤 확정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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