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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한·미 동맹 이슈로 재부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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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2022년 11월 14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만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미-중 패권 경쟁이 가열됨에 따라 양안의 파고도 높아지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22년 11월 14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만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미-중 패권 경쟁이 가열됨에 따라 양안의 파고도 높아지고 있다. [AFP 연합뉴스]

중국 관영 매체는 지난 15일 깜짝 놀랄만한 소식을 세계에 타전했다. 6월 1일부터 지린성과 헤이룽장성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항구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청나라가 1858년 아이훈 조약에 따라 연해주를 제정 러시아에 넘기면서 잃었던 항구를 무려 165년 만에 중국이 사용할 길이 열렸다는 의미다. 중국이 사용권을 얻었던 북한 나진항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효용성이 떨어진 상황에서 중국이 동해를 내해(內海)처럼 오가며 해상 수송로 보호를 구실로 군함까지 대거 파견할 수 있어 앞으로 동해의 파고가 거칠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정호섭 전 해군참모총장이 보는 양안 위기와 한반도] #“한국, 미국 군사전략 변화 이해” #노무현 정부 때 한·미장관 합의 #중국은 과연 대만을 공격할까 #미·중 갈등으로 현실화 가능성 #북한, 국지 도발로 중국 도울듯 #한·미 역할 분담 논의 착수해야

블라디보스톡 사용권 얻은 중국
 대영제국에 이어 미국을 패권 국가 반열에 올려놓는 데 크게 기여했던 미국의 지정학자이자 해양 전략가인 알프레드 마한(1840~1914)의 가르침, 즉 해양력(sea power) 강화를 중국은 21세기에 전 세계 바다에서 착착 실행하고 있다. 심지어 중국이 2027년 전에 무력으로 대만 통일을 시도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가까운 한반도에까지 튈 수 있는 불똥을 생각하면 끔찍한 시나리오다.

 해군참모총장을 역임한 정호섭(65)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교수를 만나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 와중에 대만해협에서 무력 충돌의 발생 가능성, 미국의 대응 전략, 그리고 한·미 동맹과 대한민국 안보에 끼칠 영향 등에 대해 들어봤다. 그는 해군사관학교(34기) 생도 시절엔 조선공학을 공부했고, 영국 랭커스터대에서 국제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정호섭 전 해군참모총장은 지난 24일 서울 광화문광장의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진행한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양안 충돌 시 주한미군의 역할에 대해 한⋅미 동맹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정호섭 전 해군참모총장은 지난 24일 서울 광화문광장의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진행한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양안 충돌 시 주한미군의 역할에 대해 한⋅미 동맹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중국과 대만 사이를 '작은 양안(兩岸)'이라 부르고, 태평양을 사이에 둔 미국과 중국은 '큰 양안'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두 양안에서 무력 충돌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핵전쟁으로 확전할 위험 때문에 미⋅중 전쟁은 쉽게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두 가지 예외적 상황이 있다. 첫째, 서태평양에서 미군의 억제력과 상황 대처 능력이 급격하게 약화하고 중국 해군이 인도양에서 중국의 핵심 에너지 항로를 방어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고 중국이 인식할 때다. 둘째, 러시아가 유럽에서 다시 주도국으로 올라서고 중국과 공조해 유럽과 서태평양에서 동시에 현상변경을 시도할 수 있다고 판단할 때다. 이 두 경우도 가까운 미래에 발생할 가능성은 작게 본다. 물론 우발적으로 해상 무력 충돌이 발생해 소규모 제한전쟁으로 비화할 우려는 상존한다."

미국의 해군력 증강 쉽지 않아
 -2021년 출간한 『미·중 패권 경쟁과 해군력』에서 냉전에 승리한 미국이 해군력(함대 규모)을 대폭 축소했다고 지적했다.
 "공산 진영에 맞서 냉전에서 승리한 뒤 미국은 해군 함대 규모를 급격하게 줄였고, 이 때문에 미국 해군의 전비 태세가 약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뒤늦게 미국 정부는 해군력 증강 필요성을 인식했지만, 단기간에는 힘들다. 2022년 294척이던 전함이 2025년 286척으로 감축된 이후에나 다시 증강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 결과 서태평양에서 해군력은 수적으로 중국보다 불리해졌다. 질적 차원에서 미군이 아직 우세하지만, 질적 우세가 미국 해군력의 수적인 열세와 물리적 주둔을 보완할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지금까지 동북아 지역의 해양 안보를 제공하고 한반도 유사시 증원 전력을 수송하는 미 해군의 전투력 감소와 전비 태세 약화를 예의주시해야 한다."
 -1992년 필리핀 수빅 해군 기지에서 철수했던 미국이 2014년 필리핀과 ‘방위협력확대협정(EDCA)’을 체결한 이후 기존 5개 외에 기지 4개를 필리핀에 추가로 건설 중인데.
 "대만해협이든 동⋅남중국해에서 무력충돌 발생 시 미국이 중국에 맞서기 위해 무엇보다 분쟁 현장에 신속하게 도착하는 시간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는 역내에 미군 전력의 '유지력'(staying power) 기반 확대가 절실하다. 미군이 필리핀에 4개 기지를 추가하면 미·중 경쟁의 최전선인 대만과 남중국해에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제1 도련(일본-대만-필리핀-보르네오 섬)을 공고히 하고, 제2 도련(일본-괌-파푸아뉴기니) 남쪽으로는 호주 북부의 다윈항까지 미군의 새로운 군수 허브 네트워크가 구축된다는 의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일 미국을 방문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은 필리핀에 군사 기지 4곳을 추가 건설 중이다.[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일 미국을 방문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은 필리핀에 군사 기지 4곳을 추가 건설 중이다.[AFP=연합뉴스]

중국과 러시아의 반미 연대 강화
 -중국은 어떻게 미국에 대응하고 있나.
 "중국은 러시아와 반미 연대를 강화해 미국에 2개의 전선을 강요함으로써 미국의 대중 견제를 완화하려 한다. 중국은 항공모함 등 미군의 접근을 차단하는 A2/AD(Anti-Access/Area Denial, 반접근 지역거부) 능력을 확대해 중국 연안에서 무력분쟁이 발생할 경우 미군의 개입을 억제·지연·완화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항모 등 대양 해군력을 증강해 중국의 핵심 에너지 항로 보호 능력을 확보하고 있다.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에 따라 지부티·과다르·함반토타·치타공·시트웨·리암 등에 유사시를 대비한 해외기지를 구축했다. 솔로몬군도 등 남태평양 도서 국가로 진출해 하와이-서태평양, 하와이-오세아니아를 연결하는 미국의 해상 교통로 차단을 노린다. 중국 전략가들은 대만해협 유사시 미국과 일본뿐 아니라 호주와 한국까지도 개입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미국 중심의 동맹체제 와해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2027년 전에 무력으로 대만 통일을 시도할까.
 "대만해협을 넘어 대규모 상륙작전을 감행한다는 것은 중국으로서도 전혀 쉽지 않은 일이다. 미·중 패권 다툼 등 심각해진 안보 상황에서 대만 통일의 정당성을 거론하는 것은 시진핑 체제의 장기집권을 합리화하고 중국공산당의 일당독재를 영구화하려는 국내정치적 의도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시진핑의 권력이 흔들리거나 중국공산당의 영구적 지배를 위협하는 요소가 발생하면, 중국에 가까운 진먼(金門)섬이나 마쭈(馬祖)섬 중 하나를 기습 점령하는 선택지를 쓸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어렵다."
 -양안 충돌 시 북한은 어떻게 움직일까.
 "북⋅중⋅러가 한편이고 주도적 역할을 하는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북한이 도발하도록 사주해 주한미군을 한반도에 붙들어 두려 할 것이란 시나리오가 통상적인 전망이다. 그러나 '중국을 믿지 말라'는 김정일의 유훈처럼 북한도 중국을 경계하고 불신하기 때문에 김정은 위원장이 김씨 세습 정권의 생존을 걸고 중국의 의도대로 도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핵무기 사용 가능성으로 위협하며 국지 도발 등으로 중국의 대만 침공을 측면 지원하려 할 공산이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미국과 중국의 패권 갈등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3국 공조가 강화되면서 신냉전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중앙포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미국과 중국의 패권 갈등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3국 공조가 강화되면서 신냉전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중앙포토

유사 시 한국 역할 놓고 의견 분분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6년 1월 19일 당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워싱턴에서 제1차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를 열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대해 상호 입장을 존중하기로 합의했다. 양국 장관은 공동성명을 통해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대해 ▶한국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 변화의 논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필요성을 존중하고 ▶미국은 미군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양국은 이후 구체적 논의를 진전시키지 않아 모호한 부분이 많다. 그런데 미·중 패권 다툼이 가열되고 양안 분쟁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최근 '뜨거운 감자'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미국의 일부 전략가는 대만해협 무력충돌을 전제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거론하며 한반도가 수수방관할 수 없을 거라 주장한다.
 "역내에서 육⋅해⋅공군 모두 미국에 매우 불리하기 때문에 대만해협 유사시 주한미군은 십중팔구 개입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한·미 동맹의 기능을 한반도 전쟁 억제뿐 아니라 역내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확대할 것을 제안하는 목소리가 미국에서 나온다. 미국의 군사 전문가들은 '대만 유사시 한국에 중립이라는 방책은 없다'고 종종 주장한다. 한국군이 직접 전투 행위에 참여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동맹으로서 최소한 미군의 후방 군사 지원 역할 정도는 해야 할 것이다. 한국이 미국을 전혀 지원하지 않을 경우 한⋅미 동맹의 앞날을 장담할 수 없을 수 있다. 어차피 미군을 지원해야 한다면 양국이 사전에 지원 범위를 공식 협의하고 준비해 한반도 전쟁 억제는 물론 지역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2006년 9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앞서 그해 1월 양국 외교 장관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사상 처음 합의했다.[청와대]

2006년 9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앞서 그해 1월 양국 외교 장관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사상 처음 합의했다.[청와대]

한·미·일 안보협력 다져가야
 영국의 탐험가 월터 롤리(1552~1618)의 말이 떠오른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무역을 지배하고, 세계 무역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의 부를 지배하며, 마침내 세계 그 자체를 지배한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도약한 한국은 경제의 70%를 해외교역에 의존하고 수출⋅입 물동량의 99.7%를 해상 수송이 담당한다. 수입 원유의 100%, 밥상에 올라오는 곡물의 77%가 바다를 통해 수입된다. 바다가 막혀 연료가 수입되지 못하면 탱크·전투기·함정 등 아무리 막강한 군사력도 무용지물이다.
 해양력을 기워야 한다는 알프레드 마한의 충고는 21세기 대한민국에 여전히 유효하다. 대륙과 해양 사이에서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키면서 국익을 극대화하려면 한·미 동맹을 굳건히 하면서도 한·미·일 안보 협력도 강화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