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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다름을 넘어 다채로움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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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정진호 기자 중앙일보 기자
정진호 경제부 기자

정진호 경제부 기자

최근 JTBC 뉴스룸에 출연한 배우 박은빈은 “(백상예술대상) 수상 소감으로 여러 말이 오가서 스트레스가 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한 문화평론가가 올해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을 받은 박은빈에게 “울고불고하던데 그러지 좀 마시라”고 하면서 정작 그의 수상 소감은 주목받지 못했다. 시상식 당일 “각자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들을 다름으로 인식하지 않고 다채로움으로 인식할 수 있기를 바라며 연기했다”는 인상적 발언이 묻혀버렸다. 울림이 컸는데도 말이다.

사전적 의미로 ‘다르다’는 두 대상이 서로 같지 않다는 뜻이다. 사전에서 찾은 ‘다채롭다’의 풀이는 이렇다. “여러 가지 색채나 형태, 종류 따위가 한데 어울려 호화스럽다.” 언뜻 비슷하게 들리는 다름과 다채로움은 분명 다른 의미다. 다름이 같지 않다는 차이점을 부각한다면 다채로움은 조화와 어울림까지 포함한다.

지난 4월 말 백상예술대상에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TV부문 대상을 받은 박은빈. [중앙포토]

지난 4월 말 백상예술대상에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TV부문 대상을 받은 박은빈. [중앙포토]

일상에서 흔히 비교되는 말이 있다. ‘틀리다’와 ‘다르다’다. 둘 사이에 차이가 있을 때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다”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도 종종 썼고, 영화·드라마·소설·기사 등에서도 자주 등장했다. 주로 성향이 다른 사람이나 장애인 등이 이 표현의 대상이었다. 이 말은 분명 긍정적인 의미로 썼다.

박은빈의 수상 소감은 한발 더 나아갔다. 틀린 게 아니라는 건 아주 분명한 사실이니 언급할 필요도 없다는 게 전제다.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등 8명은 『다름의 아름다움』이란 책에서 “다르다는 것 자체는 갈등을 일으키지 않지만, 다름에 가치나 등급을 부여하고 감정을 개입시키면 다툼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다른 것을 틀리다고 규정하는 게 갈등을 만든다는 취지다. 이 책이 나온 건 2008년이다.

틀림과 다름을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강조됐다. 그 사이 교통약자를 위한 저상버스가 늘어났고,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가 인정됐다. 동성 커플에게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한 2심 판결이 나왔다. 틀리지 않는다고 인식하는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퍼져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채로움까진 연결되지 않은 것 같다.

선천성 골형성부전증에 휠체어를 타는 김원영 변호사는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에서 “개인이 가진 고유한 이야기, 특유의 욕망과 선호 등 개별적 인격성을 인정받지 못할 때 사회적 존재로서 존엄성을 크게 훼손당한다”며 “나라는 사람은 존중받지 못할 때 그냥 한 사람의 장애인이지만, 존중받을 때는 장애와 그 밖에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가진 김원영이 된다”고 고백했다. 처음 읽을 땐 몰랐는데 이제 확실히 알겠다. 사회가 장애를 다름으로 인식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개개인의 다채로움을 인정할 때에야 존엄이 지켜진다는 뜻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