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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견제받지 않는 선관위의 민낯…뼈 깎는 개혁을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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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과천 중앙선관위 청사. 강정현 기자

과천 중앙선관위 청사. 강정현 기자

사무총장과 사무차장, 딸 특혜 채용 의혹 동시 사퇴

고인 물 썩는 법, 헌법상 ‘독립 기구’ 지위가 독 돼서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초유의 위기에 몰렸다. 박찬진 사무총장(장관급)과 송봉섭 사무차장(차관급)이 22대 총선을 불과 11개월 앞두고 지난 25일 동시에 사퇴했다. 두 사람 자녀의 선관위 특혜채용 의혹이 중앙일보에 단독 보도된 지 보름 만이다. 박 총장과 송 차장의 딸은 광주광역시 남구청과 충남 보령시청의 지방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각각 전남 선관위와 충북 단양 선관위의 경력직으로 채용됐다. 모두 “아빠 찬스는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선관위는 전임 사무총장 역시 지난해 아들 채용 의혹에 휘말린 끝에 사퇴한 전례가 있다. 감사원은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 외부인이 참여하는 특별감사를 시작했다. 5급 이상 간부 전원이 대상인 전수조사도 병행한다. 철저한 진상 규명으로 치부를 도려내고, 뼈를 깎는 자정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구다. 하지만 최근 선관위가 보여주는 모습들에선 견제받지 않는 감시의 사각지대에서 벌어질 수 있는 적나라한 사례들이 망라돼 있다. 지난해 3월 대선 사전투표 당시의 ‘소쿠리 투표’에 온 국민이 경악했지만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구”라며 감사원의 직무 감사를 거부했다. 북한 해킹 위협에 대한 국가정보원의 보안점검 권고까지 마찬가지 이유로 거부했다는 사실이 이번에 드러났다. 무엇이든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간섭 말라”는 태도로 벽을 쌓았고, 결국 고인 물이 부패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말았다.

정치적 중립성의 문제도 있다. ‘헌법상 독립기관’이란 지위가 도리어 중립성 훼손의 방패로만 작용하는 게 아니냐는 문제의식이다. 헌법상 선관위원 9명은 대통령 임명 3인, 국회 선출 3인, 대법원장 지명 3인으로 구성된다. 당시의 정치적 역학관계에 따라 선관위원 구성의 중립성이 영향을 받고, 여기에 선관위 내부 출신 ‘늘공’들까지 휘둘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 문재인 전 대통령은 선거 캠프 특보 출신을 선관위 상임위원으로 임명해 중립성 훼손을 자초했다. 민주당 출신 박원순 시장의 극단적 선택으로 치러진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야당과 여성단체가 걸려던 ‘내로남불’ ‘보궐선거 왜 하죠?’ 현수막을 선관위가 막아선 것도 논란을 불렀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선거 관리 조직의 청렴성과 신뢰성, 공정성의 훼손은 국가의 근본을 흔드는 문제다. 이번 위기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선관위 구성원들은 물론 여야 정치권과 학계가 머리를 맞대 관련 법 개정 등 선관위 개혁 방안을 치열하게 숙고할 필요가 있다. 30년 넘게 ‘내부 승진’이 이뤄져 온 사무총장직에 정치권과 무관한 외부 인사를 발탁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국민이 선관위에 대해 품고 있는 의심을 거둘 수 있도록 근본적 해결책을 논의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