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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위험천만’ 항공기 비상구 사고, 재발 방지책 급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착륙 중 항공기 비상문을 개방한 혐의(항공보안법 위반)로 긴급체포된 30대 남성 A씨가 2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뉴스1

착륙 중 항공기 비상문을 개방한 혐의(항공보안법 위반)로 긴급체포된 30대 남성 A씨가 2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뉴스1

승객 돌발 행동에 213m 상공서 아찔한 상황

비상구 관리 취약, 실효성 있는 대책 나와야

승객과 승무원 200명이 탑승한 항공기에서 한 승객의 돌발 행동으로 비상구가 열리는 아찔한 사고가 벌어졌다. 지난 26일 제주공항을 출발, 대구공항으로 향하던 아시아나항공 여객기에서다. 당시 항공기는 대구공항 700피트(약 213m) 상공에서 활주로 쪽으로 착륙을 준비하던 상황이었다. 이때 비상구 바로 옆 좌석에 앉아 있던 한 승객이 갑자기 비상구 개폐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비상구가 열리자 기내에는 소음과 바람이 쏟아져 들어왔고,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는 승객도 있었다.

결국 항공기는 비상구가 열린 상태로 대구공항 활주로에 내렸다. 착륙 직후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승객들은 병원으로 옮겨졌다. 기내에는 울산에서 열리는 전국소년체전에 참가하는 제주 지역 초·중학생 선수와 지도자 60여 명도 타고 있었다. 위험천만한 상황이었지만 더 심각한 인명피해가 없었던 게 천만다행이다.

이번 사고는 항공기 비상구 관리의 취약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비상구 좌석에 앉은 승객이 고의든, 실수든 비상구 개방을 시도하는 걸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항공사는 아무 승객이나 비상구 좌석에 배정하지 않는다. 체격 조건이나 언어 능력이 충분하면서 비상 상황에서 승무원에게 협조하기로 동의한 사람만 비상구 좌석에 앉을 수 있다. 그런데 항공사가 사전에 승객의 정신 상태나 동의의 진실성 등을 파악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비상구 무단 개방으로 현장에서 체포된 30대 승객은 경찰 조사에서 “답답해서 빨리 내리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법원은 어제 이 승객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일이 벌어진 뒤 처벌보다 더 중요한 건 사전 예방이다. 특히 코로나19로 경영난을 겪었던 항공사들이 만일의 사고에 대처할 준비가 돼 있는지 철저하게 모든 안전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제선과 국내선을 이용한 여객 수는 5500만 명을 웃돌았다. 올해는 코로나19로 막혔던 해외여행 재개로 국제선 여객 수가 큰 폭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아시아나항공은 해당 기종에서 비상구 좌석의 판매를 중단하기로 했지만 이걸로 문제의 소지를 해소했다고 하기는 어렵다. 같은 기종을 운영하는 다른 항공사에서도 비슷한 사고의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토부는 이번 사고 직후 항공사와 지방항공청·한국공항공사 등이 참여하는 안전회의를 열고 비상구 관리 강화 등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불안해 하는 항공기 승객들을 안심시키기에는 충분치 않아 보인다. 정부와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실효성 있는 재발 방지책을 제시하는 게 시급하다. 조금의 실패나 실수가 대형 참사로 이어지는 게 항공 안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