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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죄수’ 6명의 끈적한 살인 후일담, 관객 홀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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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뮤지컬 ‘시카고’의 명곡 ‘셀 블록 탱고’를 선보이는 배우들. 6명의 여자 죄수가 살인 후일담을 전하는 내용이다. [사진 신시컴퍼니]

뮤지컬 ‘시카고’의 명곡 ‘셀 블록 탱고’를 선보이는 배우들. 6명의 여자 죄수가 살인 후일담을 전하는 내용이다. [사진 신시컴퍼니]

적막한 쿡카운티 교도소에 간수의 구두 굽 소리가 울려 퍼진다. 곧이어 모습을 드러낸 6명의 미녀 죄수들이 자신의 살인 후일담을 전한다. ‘팝’하고 껌을 터뜨리는 남편이 거슬려 총을 쐈다는 리즈 등 이들 6명은 순식간에 관능미와 가창력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죽어도 싸다(He had it coming)”며 탱고 안무를 선보이는 클라이맥스 구간은 노래와 춤, 스토리와 연출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는 명장면이자 뮤지컬의 정수로 꼽힌다.

뮤지컬 ‘시카고’가 2017년 이후 6년 만에 내한했다. 미국투어팀 소속 배우들이 무대에 오른다. 미국투어팀은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하는 배우들과 별도로 미국 순회공연을 위해 꾸려진 팀이다. 남편을 죽인 여가수 벨마 켈리 역에는 로건 플로이드, 내연남을 살해한 코러스 걸 록시 하트 역에는 케이티 프리든이 발탁됐다. 두 배우는 뉴욕 브로드웨이 공연팀의 주역 배우들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무명이고 경력도 짧다. 플로이드는 미국의 한 지역 방송국 인터뷰에서 시카고가 자신의 프로 데뷔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른바 ‘2군’ 공연이라는 일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27일 개막 공연에서 이들은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8개월간의 미국 순회공연을 지난 21일 마무리하고 공백 없이 곧장 한국 공연을 시작한 덕분에 개막 공연에서 흔히 생기는 자잘한 실수는 보이지 않았다. 화려한 무대 장치와 수백 벌의 의상을 자랑하는 ‘오페라의 유령’ 등 다른 대작 뮤지컬과 달리, ‘시카고’는 사다리와 의자만으로 무대를 꽉 채웠다. 뛰어난 연출, 끈적한 춤과 노래, 그것을 선보이는 배우들의 역량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대표 넘버인 ‘올 댓 재즈’와 ‘셀 블록 탱고’를 부르는 플로이드의 연기에 여유가 넘쳤다. 프리든의 성량이 다소 아쉬웠지만, 전반적으로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섹시함과 코믹함을 오가며 백치 금발 미녀 록시를 발랄하게 표현했다. 부패한 교도소 관리자 마마 등 조연들이 뛰어난 유머 연기로 블랙코미디 뮤지컬의 장점을 극대화했다.

돈만 밝히는 형사 전문 변호사 빌리 플린 역의 제프 브룩스도 호연이 인상적이었다. 다만 브룩스가 ‘동시에 총에 손을 뻗었지(We both reached for the gun)’를 부르며 복화술을 하지 않아 아쉬웠다는 평이 있었다. 이 넘버는 플린이 록시에게 언론 다루는 법을 가르치는 내용이다.

꼭두각시로 변한 록시를 앞세우고 뒤에서 복화술로 노래 부르며 록시를 조종하는 플린의 연기는 ‘시카고’의 주요 볼거리다. 신시컴퍼니 정소애 본부장은 “복화술이 불가능한 배우도 있어 브로드웨이 공연에서도 배우 뜻에 따라 복화술을 생략하기도 한다. 전적으로 배우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시카고’는 1920년대 미국 시카고를 배경으로 여가수 벨마 켈리와 코러스 걸 록시 하트가 살인죄로 수감돼 겪는 에피소드다. 살인범이 ‘미녀 킬러’로 추앙받는 씁쓸한 현실과 말초적인 기사를 쏟아내는 언론을 풍자하는 내용으로, 물질주의가 만연한 시대상을 그렸다. 공연은 8월 6일까지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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