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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도 못 피한 실질소득 감소, 고소득층만 지갑 열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25만 원짜리 위스키 1병을 사기 위해 전날부터 줄을 선다. 올해 들어 대한민국 위스키 주조 1호 장인인 김창수 대표의 싱글몰트 위스키는 파는 데마다 완판이다. 26일 출발한 홍콩 3박 4일 일정의 모두투어 여행상품은 완판됐다. 1박 100만원을 호가하는 최고급 호텔에 묵는 고가의 여행상품이지만, 예약은 판매 30초 만에 마감됐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거리두기 해제 이후 고소득층의 보복 소비는 통계로도 드러난다. 올해 들어 고소득층에 해당하는 소득 상위 20%(5분위)의 지출이 큰 폭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고소득층이 지갑을 다시 열기 시작하면서 코로나19 이전 수준의 소비성향을 보여줬다. 그러나 소득 1분위부터 4분위까지는 소비 회복이 더뎠다.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고물가로 인해 중산층의 실질소득은 감소한 탓이다.

28일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소득 5분위의 평균소비성향은 57.8%로, 지난해 같은 분기(51.4%)보다 6.2%포인트 증가했다. 평균소비성향은 처분가능소득에서 소비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뜻한다.

5분위의 평균소비성향은 2019년 1분기(59.8%) 수준에 근접했다. 반면 1분위와 2분위는 각각 2019년 1분기보다 평균소비성향이 12.7%포인트, 13.9%포인트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저소득층은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된 시점에서도 한번 위축된 소비를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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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지출에서 물가상승으로 인한 영향을 제외한 실질지출 증가율을 봐도 소득 1~5분위 중 5분위가 가장 높았다. 지난 1분기 5분위의 실질소비지출은 지난해 같은 분기와 비교해 12.4% 늘었다. 가계동향조사를 개편한 2019년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전체 평균 실질소비지출 증가율은 6.4%였는데 5분위는 그 2배 수준에 달했다.

5분위의 지출 확대를 견인한 건 먹거리와 같은 생계형 지출이 아닌 여행이나 문화생활이다. 지출 항목별로 봤을 때 올해 1분기 5분위 가구는 1년 전보다 교통 관련 실질지출이 77.7% 늘었다. 또 오락·문화에 27.6%, 기타상품·서비스에 19.3%를 더 쓴 것으로 나타났다.

미뤄뒀던 해외여행을 가는 등 여가를 즐기다 보니 상대적으로 지출 여력이 큰 5분위만 지갑을 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소득층은 돈이 없어서 못 쓴 게 아니라 코로나19 때문에 돈을 안 쓰고 있었던 것”이라며 “거리두기 해제 이후 이들의 소비성향이 빠르게 회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1년 새 커진 소득 격차도 영향을 미쳤다. 물가상승 분을 제외해 실제 구매력을 나타내는 실질소득은 지난 1분기 가구당 월평균 458만원으로, 1년 전과 동일했다.

그러나 소득 분위별로는 그 명암이 분명히 갈렸다. 소득 상위 40%에 해당하는 4·5분위는 실질소득이 증가했지만, 이를 제외한 1~3분위 가구의 실질소득은 이 기간 줄었기 때문이다. 재난지원금·방역지원금 등 코로나 확산 때 지급한 각종 정부 지원금이 끊기면서 저소득층의 소득 감소가 두드러졌다.

실질소득은 1분위 1.5%, 2분위 2.4%, 3분위 2.1%씩 감소했다. 3분위는 소득 상위 40~60%로, 중산층에 해당한다. 물가가 오르는 것과 비교해 임금은 크게 늘지 않으면서 저소득층뿐 아니라 중산층까지 실질소득이 줄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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