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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학자들에 쏟아진 '메일폭탄'…코로나때 그놈들 타깃 바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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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최근 세계적으로 극심한 가뭄·홍수 등 이상기후 현상이 빈번해지는 가운데, 애꿎은 기상학자들이 온라인 괴롭힘과 위협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기상학자들이 날씨 예보를 부풀리거나 심지어 조작하면서 기후 위기감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의심 때문이라고 한다.

한 스페인 남성이 지난 4월 18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반바지만 입은 채로 의자에 앉아있다. 스페인은 지난달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4월 기준 사상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 AP=연합뉴스

한 스페인 남성이 지난 4월 18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반바지만 입은 채로 의자에 앉아있다. 스페인은 지난달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4월 기준 사상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 AP=연합뉴스


27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 봄까지 스페인·프랑스·영국·호주 등에 이례적인 폭염이 강타하면서 각국의 국립기상청과 기상학자 등을 향한 기후변화 부정론자와 음모론자들의 위협이 크게 증가했다. 이들은 예보관들의 기상 정보에 의심을 제기하며 음모론으로 비난하는가 하면 "사기꾼들" "조심하라" 는 식의 e메일로 협박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으로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스페인에서 이 같은 현상이 극심하다. 스페인 기상청의 에스트렐라 구티에레즈-마르코 대변인은 “이곳에서 30여년을 근무했는데, 이렇게 심한 모욕과 위협을 당하는 건 처음”이라면서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가 현실이 됐고, 이와 관련한 최고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노력을 무시하고 가짜 뉴스를 확산시키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 기상학자는 가뭄이 심했던 지난달 트위터에 유럽 전역에 걸쳐 비구름이 펼쳐져 있는 사진을 올리면서 “슬프게도 이 비가 스페인은 피한다”고 적었다. 그러자 그에게 “우리를 바보로 여기지 말라”, “당신은 우리를 말라 죽이고 있는 사람들의 대변인” 등과 같은 비난이 담긴 메시지 수백 건이 빗발쳤다. 그는 “한동안 SNS에 접속하지 못할 정도로 인생에서 힘든 경험이었다”고 전했다.

스페인이 이상고온과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가운데 지난 11일 스페인 남부 도냐나 국립공원에 있는 야외 수영장의 바닥이 심하게 갈라져 있다. AFP=연합뉴스

스페인이 이상고온과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가운데 지난 11일 스페인 남부 도냐나 국립공원에 있는 야외 수영장의 바닥이 심하게 갈라져 있다. AFP=연합뉴스

이들 음모론자들은 기상 전문가들이 날씨 예보를 과장해서 알리고 있고, 각국 지도부는 이를 이용한 기후 정책을 통해 대중들을 통제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각국에서 ‘코로나 음모론’이 퍼진 것과 유사하다. 기상전문가에 대한 온라인 위협이 너무 심해지자 스페인 기상청은 지난달 트위터에 이런 행동을 중단해 달라는 요청이 담긴 동영상을 게시했다.

영국에서도 지난해 여름 폭염 사태 때 기상예보관과 기상학자들에 대한 욕설 메시지가 수백건 쏟아진 바 있다. 이들은 기후변화로 인해 폭염이 10배 더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기상전문가들의 추론에 의문을 제기하며 비난을 퍼부었다.

맷 테일러 BBC 기상캐스터가 지난해 7월 영국 전역에 폭염이 닥쳤을 때 예보하고 있는 모습. 사진 BBC방송 캡처

맷 테일러 BBC 기상캐스터가 지난해 7월 영국 전역에 폭염이 닥쳤을 때 예보하고 있는 모습. 사진 BBC방송 캡처


지난 3월 이상고온에 시달렸던 프랑스에선 기상청이 기온이 더 높은 지역의 관측소 수치에 집중해 온난화를 과장하고 있다는 글이 SNS에서 약 14만회나 공유됐다. 프랑스 기상청 측은 “기상청이 최근 (기후변화 부정론자와 음모론자들로부터) 심각한 공격의 대상이 됐다”면서 “과학적 근거가 있는 내용을 공격하는 강도가 점점 세지면서 SNS을 중심으로 잘못된 기후 정보가 널리 퍼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호주에서도 SNS에서 기상청이 기후변화를 강조하기 위해 기온 수치를 조작했다는 근거 없는 주장이 있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CNN은 앞으로 극단적인 기후변화가 계속 일어남에 따라 기상학자들을 향한 비난과 위협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로 인해 기상 전문가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밀려나 기후변화 부정론과 음모론이 확산되는 것을 우려하면서다.

스페인 카탈루냐 오베르타 대학의 알렉산드르 로페즈-보룰 정보통신과학부 강사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확산됐던 (백신무용론 같은) 음모론이 이제 기후변화로 옮겨갔다”면서 “날씨와 관련된 모든 조직과 전문가에 대한 모욕과 위협이 크게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기후 연구 및 정책 전문가인 제니 킹은 “날씨는 사람들이 자주 접하는 이슈로, 기후 의제를 이용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의심의 씨앗을 심을 수 있다”면서 “이런 음모론이 기후 관련 정치에 영향을 끼칠 수 있어서 신경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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