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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 문 연 30대 목덜미 끝까지 제압…빨간바지 승객 정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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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열린 채 운항 중인 아시아나 여객기 안에 앉아 있는 이윤준(사진 속 빨간 바지)씨 모습. 연합뉴스

문 열린 채 운항 중인 아시아나 여객기 안에 앉아 있는 이윤준(사진 속 빨간 바지)씨 모습. 연합뉴스

전날(26일) 제주공항을 출발해 대구공항에 착륙하기 직전 약 213m(700피트) 상공에서 한 승객이 여객기 비상문 출입문을 강제로 여는 일촉즉발의 현장이 담긴 영상이 온라인에서 퍼지면서 이를 진압하려 승무원들을 도운 일명 '빨간바지' 승객이 화제다. 이 승객의 정체는 이윤준(48) 행정안전부 산하 국민안전재난총연합회 제주본부 상임부회장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사건 당일 안전 교육을 위해 제주도 출장 뒤 생일을 하루 앞두고 생업 전선인 대구로 복귀하던 길이었다고 한다. 그는 제주공항발 대구공항행 아시아나 여객기에서 착륙 직전 출입문을 연 남성 A씨의 옆자리였다.

이씨는 2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비행 동안 (범인이) 자꾸 저와 눈이 마주치고 두리번거렸다"라며 "대구 공항에 다 왔는데 (공중에서) 문이 열렸고 (옆자리에 앉아있던) 그 친구가 저를 보면서 웃으면서도 겁이 나는 섬뜩한 표정을 지었다"라고 지나간 1∼2분 회상했다. 이어 "대각선 방향에 앉은 승무원을 보니 나에게 무언가 지시를 하려는 눈빛이었다"라며 "승무원이 계속 눈빛으로 무언가 간절한 신호를 줬다"라고 이어갔다.

이씨에 따르면 짧은 몇 초 사이 여객기 바퀴가 활주로에 닿으며 착지하기 시작하자 A씨가 안전밸트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 열린 출입문 앞에 있던 비상문 옆 벽면에 매달린 채로 뒤를 돌아봤다고 한다.

눈빛을 계속 교환하던 승무원이 "도와주세요"라고 외쳤고, 이씨는 왼팔을 뻗쳐 A씨의 목덜미를 낚아채 제압했다. 안전벨트를 차고 있었기에 일어날 수 없었던 이씨는 양손이 닿는 대로 범인이 뛰어내리지 못하도록 그의 목 주위를 악력으로 잡아내느라 진땀을 뺐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승무원 서너명과 승객들이 달려왔다. 이들은 A씨를 제압한 뒤, 끝내 여객기 안쪽 복도로 끌고 갔다. 당시 여객기는 여전히 착륙 이후 활주로를 달리던 중이었다고 한다.

이씨는 "뒤에 앉은 초등학생들이 울고 있었다. 그야말로 패닉이었다"라며 "이렇게 큰 사고인 줄 모르고 대구로 돌아와서 하루를 보내고 나니 인터넷에서 승무원분들을 욕하는 악플이 많아서 가슴이 아팠다"라고도 했다. 이어 "추가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건 상황을 정리한 승무원들 덕분"이라며 "특히 저한테 계속 눈으로 사인을 주신 승무원분은 끝까지 침착하게 행동하셨다. 착륙 과정에 범인을 진압하던 사람들이 튀어 나갈 수도 있었을 텐데 정말 안전하게 잘했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대구 동부경찰서는 항공보안법 위반 혐의로 A씨를 긴급 체포해 이틀째 조사 중이다. A씨는 전날 제주에서 출발해 대구로 향하던 아시아나 항공기에서 착륙 직전인 상공 213m에서 출입문을 연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최근 실직 후에 스트레스를 받아오고 있었다"며 "비행기 착륙 전 답답해 빨리 내리고 싶어서 비상문을 개방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추가 수사를 마치는 대로 A씨에 대한 구속 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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