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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에 부친 묘소, 가족들 아바타로 성묘…日 디지털 묘지

중앙일보

입력

일본 도쿄에 사는 A씨는 아버지 5주기 기일을 맞아 무덤을 찾지 않고도 '성묘'를 할 수 있게 됐다. 메타버스(가상세계)에 마련한 아버지의 '묘지'가 있어서다. A씨의 가족은 미국 등 해외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어 한자리에서 성묘하거나 벌초 등을 제때 하기 어렵다. 그런데 온라인 공간에 묘지를 마련하자 가족을 대신한 아바타 캐릭터가 아버지 묘비 앞에 꽃을 둘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저출생 고령화 국가 일본에서 최근 ‘디지털 묘지’가 등장하면서 장례·성묘 문화가 변하고 있다. 사진은 메타버스(가상현실)형태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모습을 이미지화한 것. 트위터 캡처

저출생 고령화 국가 일본에서 최근 ‘디지털 묘지’가 등장하면서 장례·성묘 문화가 변하고 있다. 사진은 메타버스(가상현실)형태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모습을 이미지화한 것. 트위터 캡처

저출산·고령화사회 일본에서 최근 '디지털 묘지'가 등장하면서 장례·성묘 문화가 변하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닛케이) 신문 등이 보도했다. 디지털 묘지란 온라인상에 마련된 가상의 장례·추모 공간이다. 참가자들은 아바타 캐릭터를 택한 뒤 온라인 속 고인의 빈소·무덤에 향을 올리거나 꽃을 바치는 등 추모 행사를 할 수 있다. 이 경우 유골은 대체로 화장하고 물리적인 묘는 두지 않는다.

메타버스 형태의 장례·성묘 서비스를 올해 안으로 론칭할 예정인 알파 클럽 무사시노의 오가와 마코토(小川誠) 이사는 "10~20년 내로 '무덤의 디지털화'는 진행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는 일본에서 사망 후 묘를 돌봐줄 후손·친척 등이 없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장례기업 가마쿠라 신서(鎌倉新書)에 따르면 일본의 무덤 구매자 중에서 '묘를 관리해줄 사람이 있다'고 한 응답자는 33.8%로 전년 대비 4.9%포인트 감소했다. 나머지는 사망 후 묘를 건사할 사람이 없는, 이른바 '미(未)계승 무덤'이 될 가능성이 크다.

나라현립 의과대학 연구진은 미혼자 증가와 저출산 영향 등으로 2160년이 되면 일본 내에 156만기 이상의 미(未)계승 무덤이 생길 것으로 추산했다. 닛케이에 따르면 실제로는 추산한 숫자의 25~50배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일본의 한 장례업체는 메타버스(가상현실)형태의 장례식에 참석해 친족들과 아바타로 만날 수 있는 서비스를 올해 안에 정식으로 론칭할 예정이다. 아바타가 차를 마시면서 대화하는 모습. 트위터 캡처

일본의 한 장례업체는 메타버스(가상현실)형태의 장례식에 참석해 친족들과 아바타로 만날 수 있는 서비스를 올해 안에 정식으로 론칭할 예정이다. 아바타가 차를 마시면서 대화하는 모습. 트위터 캡처

이마무라 도모아키(今村知明) 나라현립 의과대학 교수는 "관리자 없는 무덤은 계속 방치돼 황폐해질 수 있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경종을 울렸다.

A씨의 사례처럼 가족이 해외에 거주해 묘를 돌보기 어려운 경우에도 비용 절감, 편리함 등을 이유로 메타버스 장례·성묘를 택하는 추세다.

디지털 묘지가 아니더라도 묘지 관리의 편리함을 중시하는 추세는 뚜렷하다. 일본에선 관리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일반 묘는 줄고 수목장(유골 화장 후 나무 아래, 잔디 등에 묻는 방식), 실내 시설에 유골을 보관하는 납골당이 보편화하고 있다.

가마쿠라 신서에 따르면 올해 무덤 구매자의 51.8%는 수목장을 선택했다. 납골당 선택 비율도 20.2%로 일반 묘(19.1%)를 웃돌았다. 일반 묘의 경우, 묘석과 토지 비용을 합쳐 170만엔(약 1617만원)이지만, 수목장은 절반 이하인 75만엔(약 713만원)이다. 또 일반 묘와 달리 수목장은 관리비가 없는 경우도 많아 선호한다고 한다.

돌볼 사람이 없다보니 기존의 묘를 간소화하기 위해 유골을 이장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유골 이장 건수는 2021년 11만8975건으로 10년 전보다 55% 늘었다.

2022년 일본 교토부 아라시야마에 있는 전통적인 일본 묘지. 묘를 돌볼 사람이 줄어들면서 일본의 일부 묘지들은 30년 등 정해진 기간만 유골을 보관하는 서비스를 운영하기도 한다. AFP=연합뉴스

2022년 일본 교토부 아라시야마에 있는 전통적인 일본 묘지. 묘를 돌볼 사람이 줄어들면서 일본의 일부 묘지들은 30년 등 정해진 기간만 유골을 보관하는 서비스를 운영하기도 한다. AFP=연합뉴스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심각한 한국에도 디지털 묘지가 남의 일만은 아니다. 닛케이는 "한국에서는 1년에 몇 차례 자손이나 친족이 고향에 모여 벌초하는 문화가 있으나 도시로의 인구 이동으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지역 농가가 유상으로 대행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묘지 삼을 땅 부족에 골머리…싱가포르, 15년만 매장 허가

세계 여러 국가들은 고인을 모실 매장지 부족으로 골머리를 앓아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싱가포르다.

현지 언론 스트레이트타임스 등에 따르면 싱가포르 정부는 1998년부터 국민들의 묘지 매장 기간을 15년으로 한정하는 정책을 실시해왔다. 단, 국가 유공자·성직자 등의 일부 인사는 특별히 영구 매장을 허가했다.

싱가포르는 국민들의 매장 기간을 15년으로 정한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은 싱가포르의 한 공동묘지 모습. 트위터 캡처

싱가포르는 국민들의 매장 기간을 15년으로 정한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은 싱가포르의 한 공동묘지 모습. 트위터 캡처

이렇게 매장 기간을 정한 이유는 인구 대비 국토 면적 때문이다.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 3위인 싱가포르는 간척지와 제방을 제외하면 서울(605㎢)과 비슷한 600㎢의 국토(간척지 포함시 721㎢)에 약 600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2030년에는 인구가 690만 명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이런 까닭에 싱가포르 정부는 15년이 지나면 무덤을 재발굴해 유골만 수습한 뒤 유족들에게 돌려준다. 이렇게 확보된 토지는 도로 등 인프라스트럭처 부지로 활용한다. 앞서 정부는 지난 2019년엔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또 2017년에는 공군 기지 확장을 위해 대규모 이장을 발표한 바 있다.

유골 수습 후 처리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화장이 금지된 회교도의 경우는 발굴 뒤 일반 장지 8분의1 크기의 별도 장소에 재매장하고, 다른 종교를 가진 경우 화장한 뒤 정부가 운영하는 납골당에 안치한다. 뉴질랜드 현지 언론은 "매장을 원하는 일부 싱가포르인들 사이에서 뉴질랜드 등에 해외 묘지를 조성하려는 구상이 나온 적도 있다"고 보도했다.

비싼 땅값으로 유명한 홍콩, 섬나라 대만도 매장보다는 화장을 장려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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