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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이 말에 충격…'마약 예방 수업'에 부모들 난리난 까닭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14일 오후 대구 능인중학교 시청각실에서 열린 ‘청소년 대상 마약 등 약물 오남용 예방 교육 마약나뽀(NOT! FOUR) 프로젝트'에 참석한 학생들이 마약 주의 안내문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지난달 14일 오후 대구 능인중학교 시청각실에서 열린 ‘청소년 대상 마약 등 약물 오남용 예방 교육 마약나뽀(NOT! FOUR) 프로젝트'에 참석한 학생들이 마약 주의 안내문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엄마도 마약 먹어봤어? 무슨 맛이야?”

서울의 한 초등학교 6학년 학부모 A씨는 최근 자녀의 질문을 받고 깜짝 놀랐다. 아이는 학교에서 마약에 관한 수업을 듣고 왔다고 했다. A씨는 “약물 오남용 교육 중에 마약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는데, 오히려 마약에 대해 호기심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했다.

마약 예방 교육 확대에 학부모 우려 왜?

지난 1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 이른바 '강남 학원가 마약음료' 사건과 관련해 주의를 요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

지난 1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 이른바 '강남 학원가 마약음료' 사건과 관련해 주의를 요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마약 범죄가 잇따르면서 마약 예방 교육이 강화되고 있지만 일부 학부모들의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 마약과 관련한 교육이 오히려 마약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학부모들은 마약 교육 자체가 적절한지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정부는 2015년부터 ‘7대 표준 안전교육’ 과정에 따라 유·초·중·고교에서 약물 오남용과 관련한 교육을 필수로 가르치고 있는데, 앞으로 마약 관련 비중을 더 늘린다는 방침이다. 최근 학원 수업을 마치고 나온 학생들을 노린 ‘마약 음료 배포’ 사건이 벌어지면서 학교뿐 아니라 학원가에서도 자체적인 마약 교육이 확산하는 추세다.

서울 동작구에 거주하는 학부모 B씨의 7살 자녀도 최근 태권도장에서 마약 관련 교육을 받았다. B씨는 “태권도장 사범이 아이들을 불러 모아 ‘공부 잘하는 약이라고 누가 준다고 해도 먹지 마라. 그게 마약일 수도 있다’고 알려줬다”며 “유치부라 더 어린아이들도 있었을 텐데 굳이 마약을 언급하며 교육을 해야 했는지 마음이 불편했다”고 말했다.

“눈높이에 따른 맞춤형 교육 어려운 현실”

교육부 학생건강정보센터 홈페이지에 올라온 초등용 약물 및 마약류 오남용 예방교육 자료. 홈페이지 캡처

교육부 학생건강정보센터 홈페이지에 올라온 초등용 약물 및 마약류 오남용 예방교육 자료. 홈페이지 캡처

이러한 우려에 대해 교육계에선 맞춤형 교육이 어려운 현실을 토로한다. 지방의 한 교육청 관계자는 “발달 수준을 고려했을 때 초등학교 1·2학년과 5·6학년이 배워야 할 마약 교육의 내용이 분명 달라야 한다”며 “하지만 아직 세부 지침이 없고 교육자료 또한 ‘초등용’이라는 큰 범주로 제작되다 보니 수준별 수업이 이뤄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학년별로 모든 교재를 다 만들 수는 없는 만큼 교육자료를 활용해 교사나 강사가 개별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교육을 진행하는 방식을 권장한다”고 말했다.

수업 방식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는 최근 약사로 재직 중인 전문 강사를 섭외해 마약을 포함한 ‘의약품 안전교육’을 했다. 당시 교육을 진행한 약사 C씨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교육해달라는 학교 요청에 따라 교내 방송을 통해 PPT와 영상 등을 보여주며 수업을 했다”며 “같은 내용이라도 학년에 따라 받아들이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교육 효과가 얼마나 될지 염려가 된다”고 말했다.

“마약 호기심 다그치면 안 돼, 제대로 알려줘야”

지난달 17일 서울 마포구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브리핑실에 강남 학원가 일대에서 범행도구로 사용된 마약음료가 놓여 있다. 뉴스1

지난달 17일 서울 마포구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브리핑실에 강남 학원가 일대에서 범행도구로 사용된 마약음료가 놓여 있다. 뉴스1

전문가들은 연령과 무관하게 마약 등 약물 오남용에 관한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흥희 한성대 마약알코올학과 교수는 “마약 문제는 억제 정책이 아니라 교육 예방 정책이 가장 중요하다”며 “영유아부터 이미 감기약 등 약물 사용에 노출되는 만큼 안전한 약물 사용에 대한 예방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정근 경기도마약퇴치운동본부 본부장은 “저학년과 고학년의 교육 방식과 목적은 구분돼야 한다”며 “영유아나 저학년에선 구체적으로 ‘마약’을 언급하기보다는 가급적 ‘중독성 약물’로 순화해 약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과장은 “마약에 대한 자녀의 호기심 가득한 질문을 다그치면 오히려 아이들은 인터넷에서 마약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며 “부모가 먼저 마약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숙지해야 하고 아이들이 질문했을 때 의료용 마약과 불법 마약의 차이, 마약의 부작용 등을 정확히 가르쳐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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