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톺아보기] ‘내치의 시간’ 맞은 윤 대통령
‘외치(外治)의 시간’이 끝나고 이제 ‘내치(內治)의 시간’을 맞게 된 윤석열 대통령. 여권은 과연 정상 외교의 효과를 국내 정치와 총선 정국에서도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 지 딱 한 달이 지났다. 윤 대통령의 국빈 방미는 이후 릴레이 정상 외교로 이어지는 신호탄이었다. 지난 7~8일엔 서울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며 12년 만에 한·일 셔틀외교를 복원했다. 지난 19~21일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해 주요국 정상들과 회동한 데 이어 깜짝 참석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만났다. 귀국 후엔 독일·유럽연합(EU) 등과도 정상회담을 했다. 지난 한 달간 숨가쁜 일정 속에 ‘외교 슈퍼 먼스’를 보낸 셈이다.
여론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 4월 넷째 주 30%였던 윤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는 5월 셋째 주엔 37%까지 상승했다. 특히 30→33→35→37%로 3주 연속 오르며 정상 외교를 통해 매주 차곡차곡 득점을 쌓아간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부정 평가도 63%에서 56%로 7%포인트 줄었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당초 윤 대통령의 4~5월 외교 일정을 바라보는 시선엔 우려가 적잖았다. 지난 1년간 해외 순방 때마다 각종 구설에 휩싸이면서 오히려 지지율에 악영향을 미쳤던 전례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여론이 민감하게 반응할 소재가 없진 않았다. 윤 대통령이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기존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반대 입장이 바뀔 가능성을 처음 시사한 데 이어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에서는 “일본이 100년 전 역사 때문에 무조건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생각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정상 외교에 따른 긍정 효과가 부정 효과를 능가하면서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여기엔 예전과 달리 외교 외적인 발언 논란이 없었다는 점, 상대적으로 부정적 여론이 높은 한·일 정상 외교가 훨씬 주목도가 높았던 한·미 정상회담에 묻히면서 부정 변수가 상쇄되는 효과를 낳았다는 점 등이 함께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 지지율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30%대 중후반을 회복한 모습이다.
이제 정가의 관심은 이런 흐름이 내치로도 연결돼 총선 정국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에 쏠리고 있다. 당분간 큰 외교 이벤트가 없다는 점과 총선이 다가올수록 국내 현안에 여론의 관심이 더욱 집중될 것이란 점도 지금의 추세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로 꼽힌다. 하지만 내치의 영역으로 돌아온 윤 대통령 앞에는 적잖은 난제들이 쌓여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비록 지지율이 저점을 찍고 반등 국면에 접어들었다 하더라도 정국의 주도권을 쥐기까지는 여전히 ‘산 넘어 산’의 형국이다.
당장 지난 한 달간 윤 대통령 지지율 추이를 봐도 섣불리 낙관만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지지율 상승은 대부분 보수층 지지세 결집에 따른 결과였다.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4월 넷째 주 55%였던 보수층의 윤 대통령 긍정 평가가 5월 셋째 주엔 65%로 3주 만에 10%포인트나 뛰었다. 긍정 평가 이유로 ‘외교’를 꼽은 비율(21→42%)도 한 달 새 두 배로 뛰었다. 지난달 말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보수 지지층이 급속히 결집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반면 중도층이나 진보층의 변화는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진보층의 경우 같은 기간 윤 대통령 긍정 평가가 10%에서 11%로 거의 변화가 없었다. 윤 대통령의 외교 노선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선이 찬반으로 극명하게 갈려 있는 상황에서 최근의 잇단 외교 이벤트가 반대쪽 여론까지 움직이진 못했다는 분석이다. 여론 추이의 키를 쥐고 있는 중도층도 여전히 부정 평가가 높은 실정이다. 한국갤럽이 지난 23~25일 조사해 26일 발표한 5월 넷째 주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중도층의 부정 평가는 63%로 긍정 평가(31%)보다 두 배 이상 많았고 전체 부정 평가(55%)보다도 8%포인트나 높았다.
이 같은 흐름은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중도층으로의 외연 확장이 필수라는 점에서 여권의 고민을 깊게 하고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일단 지지층이 눈에 띄게 결집하고 있는 만큼 윤 대통령 지지율도 당분간 30% 중후반에서 40%대 초반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며 “관건은 정상 외교의 긍정적 효과를 최대한 내치로 연결시켜 중도층 민심을 회복하는 것으로, 이게 여권의 상반기 최대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상 외교가 갖는 ‘동전의 양면 효과’도 만만찮은 변수로 꼽힌다. 지난 한 달 동안엔 미국·일본·유럽 정상들과 나란히 서서 악수하는 사진과 공동선언 등이 득표 요인이 됐다면 앞으로는 그에 따른 현실적 청구서를 신경 써야 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다. 당장 후쿠시마 오염수 논란과 관련해 국민적 불안감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느냐가 현안 과제다. 향후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여부를 놓고 논란이 커질 가능성도 상존한다. 26일엔 제주도 인근에서 열릴 한·미·일 해상 훈련에 자위대 호위함이 욱일기를 게양하고 참여할 것이란 소식도 전해졌다. 여론이 민감하게 반응할 이슈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특히 중국 수출길이 좁아지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경제’가 향후 총선 정국의 최대 이슈로 부각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정교하지 못한 대중 외교가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정상 외교의 화려함과 달리 실익은 없었다”는 야당의 비판이 이어지는 가운데 당장 이번주 각종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지지율이 보합세로 돌아선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한국갤럽이 26일 발표한 조사에서도 윤 대통령 지지율은 37%에서 36%로 1%포인트 하락했다. 정상 외교의 ‘사후 리스크’를 여권이 어떻게 관리해 나가느냐가 내치 정국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이 같은 상황에서 여권이 어떤 전략을 취할지도 관심사다. 일단 윤 대통령은 ‘강온 병행 전략’을 택한 모습이다. 지난 23일 두 개의 장면이 상징적이다. 이날 오전 국무회의에서는 노조 불법행위 엄단 방침을 거듭 천명한 데 이어 저녁엔 중소기업인들과 치맥 회동을 하며 ‘소통’에 주력하는 행보를 보였다. 다만 이런 강온 전략이 지난 1년간 취해온 스탠스와 크게 차별화되지 않을 경우 여론의 호응을 이끌기엔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여권의 고심이 클 수밖에 없다.
더욱이 총선이 다가올수록 ‘구심력’보다 ‘원심력’이 더욱 커지는 냉정한 정치 현실 속에서 상반기를 지나 9월 추석 연휴 때까지 지지율이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할 경우 총선 승리가 지상 목표인 국민의힘 내에서는 원심력이 한층 세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민의힘 지도부 인사는 “지난 한 달의 성과에 안주하는 순간 지지율은 언제든 다시 떨어질 수 있다”며 “지금이야말로 용산과 여의도 모두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박신홍 정치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