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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 영화가 세상 바꿔, 지구환경 성찰·실천 이어졌으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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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1호 16면

환경영화제 집행위원장 맡은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 

자타공인 영화 마니아, 정재승 카이스트(KAIST) 뇌인지과학과 교수. [사진 환경재단]

자타공인 영화 마니아, 정재승 카이스트(KAIST) 뇌인지과학과 교수. [사진 환경재단]

영화 ‘스타워즈’의 광선검은 사실 진짜 우주에선 쓸모가 없다. 서로 통과하는 빛의 성질로 인해 아무리 휘둘러도 절대 부딪치지 않고 그냥 지나가버리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 번쯤 ‘할로우 맨’처럼 투명 인간이 되길 꿈꾸지만, 모든 게 투명해진 나머지 눈의 망막까지 투명해져서 상이 맺힐 수 없는 투명 인간은 절대 인간의 삶을 볼 수 없다. 그러니 무슨 재미로 살까. 영화 ‘쥬라기 공원’에 등장하는 공룡은 대부분 백악기 시대의 공룡이다. 때문에 영화 제목을 ‘백악기 공원’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무심코 지나쳤던 영화 속 장면들에서 과학적 오류들을 ‘쏙쏙’ 뽑아 그 진실을 설명하고 영화와 과학의 행복한 만남을 주선한 책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1999)의 저자는 정재승 카이스트(KAIST) 뇌인지과학과 교수다. 그는 3년 뒤에는 “영화 속 주인공들의 뇌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뇌과학자는 영화에서 인간을 본다』(2012)도 출판했다.

사실 정 교수는  JTBC 영화 프로그램 ‘방구석1열’에서 ‘마블 영화 특집’ ‘기억 소재 영화 특집’을 진행할 때면 특급 게스트로 모실 만큼 자타공인 영화 마니아다. 대사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영화관을 들락거린 어린 시절부터 프랑스 문화원에서 자막 없는 프랑스 영화에 골몰했던 고등학생 시절까지, 그는 “영화는 늘 세상을 다르게 보는 창이 돼 줬다”고 말한다.

이렇듯 영화에 각별한 애정을 가진 정 교수에게 특별하면서도 맞춤한 감투가 주어졌다. 6월 1일부터 7일까지 열리는 제20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서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와 공동 집행위원장을 맡은 것. 평소 관심 많았던 ‘환경’과 ‘영화’ 두 가지 이슈를 합친 환경영화제의 집행위원장으로 활약하면서 그는 어떤 메시지를 준비하고 있는지 중앙SUNDAY가 이야기를 들어봤다.

칸서 황금종려상 고레에다 작품도 개봉

올해의 개막작 ‘블루백’은 호주의 바다와 산호를 지키려는 가족의 이야기다. [사진 환경재단]

올해의 개막작 ‘블루백’은 호주의 바다와 산호를 지키려는 가족의 이야기다. [사진 환경재단]

환경재단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현재 인류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는 기후재난과 경제적 불평등입니다. 그러다 보니 환경재단 활동에 관심이 많았죠. 2017년·2018년 환경재단이 운영하는 ‘피스&그린보트’에 탑승해 한국과 일본 젊은이들에게 환경강연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었고, 이후 환경재단 이사를 맡으면서 ‘과학기술과 환경의 관계’를 성찰하는 시간들을 갖고 있죠.”
서울국제환경영화제만의 매력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저는 25년 전 부산국제영화제 첫 해 자원봉사자였어요. 영화제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체험했던 시간이었죠. 서울국제환경영화제는 지구환경을 한 발 떨어져서 성찰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실천을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들로 가득합니다. 환경 이슈를 다룬 최근작들을 다채롭게 볼 수 있고, 매해 빠르게 변하는 기후 위기 및 환경 이슈를 영화라는 감동적인 작품들을 통해 이해하고 토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죠.”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 등의 책은 영화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쓸 수 없는 이야기들이죠.
“영화를 무척 좋아해요. 대학 땐 영화동아리도 만들고 어설프게나마 영화를 찍기도 하고(웃음), 영화평을 학교신문에 기고하면서 젊은 시절 내내 영화에 매료된 삶을 살았죠. 영화라는 장르가 과학기술 덕분에 탄생한 예술인만큼, 영화를 통해 과학기술을 얘기하고 싶어 SF 장르를 꽤 즐깁니다. 자연스럽게 환경영화에 대한 관심도 그래서 깊어진 것 같아요.”
영화는 극장에서 보시나요?
“한때는 극장에서 살다시피 했죠.(웃음) 극장이란 어두운 동굴로 들어가 영화라는 빛의 세계로 끌려들어가면 세상을 완전히 잊곤 했는데, 워낙 바쁘다 보니 요즘은 OTT를 통해 집에서 더 많이 봅니다. 그래도 화제작은 꼭 챙겨봅니다.”
영화는 과학자에게 어떤 영감을 주나요?
“실연의 고통을 잊기 위해 과학자를 찾아가 기억을 지우는 연인들의 얘기인 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보고, 실제로 영화에서처럼 작동하는 기억소멸장치를 만들어 보고 싶어 대학원 학생과 몇 해를 씨름한 적이 있습니다. 결국 쥐의 기억을 지우는 소멸장치를 발명해 2012년도 국제저널에 논문으로 출간해서 화제가 됐었죠. 저는 영화 속에서 뇌과학의 영감을 종종 얻곤 합니다.”
TV 프로그램 ‘알쓸신잡’에서 마징가Z와 로봇태권V의 공격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을 재밌게 봤습니다. 그때 김청기 감독님과의 특별한 인연도 얘기하셨죠.
“6년 쯤 전, 김청기 감독님을 KAIST에 모시고 로봇태권V처럼 생각이나 태권 동작만으로 작동하는 로봇을 뇌파와 연결해 보여드렸더니 감동의 눈물을 흘리셨어요. 현실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영화와 만화는 우주의 법칙에 사로잡힌 과학자들에게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영감을 줍니다. 학창시절부터 엉뚱한 공상들을 즐긴 편인데, 그 생각의 단초는 어김없이 영화였고, 그 고민의 끝은 영락없이 과학이었습니다.”
영화제 캐치프레이즈가 ‘한 편의 영화가 세상을 바꾼다’입니다. 가능할까요?
“정신과 의사 선생님과 치매 환자의 뇌를 연구하면서 뇌인지과학 분야에 발을 들여놓았어요. 그때 의사 선생님께서 저를 정신병동에 앉혀놓고 6시간 동안 입원환자들을 관찰하게 하셨죠. 제 앞에 펼쳐진 광경은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그 자체였습니다. 1.4㎏의 뇌가 도대체 뭐길래 한 인간의 정신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린 건지 규명하고 싶어졌죠. 영화가 현실이 되는 순간, 사람의 마음이 확 바뀌더군요. 세상을 바꾸려면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어야 하는데, 영화에는 그런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인지해야 할 기후환경 위기는 얼마나 심각한가요?
“평균 지구기온이 2~3도 오른 것이 뭐가 대단한가 싶겠지만, 바다 온도 변화는 그 자체로 물고기의 체온 변화로 이어지죠. 우리 체온이 36.5도에서 2~3도만 올라가도 우리 몸은 심각하게 위험해요. 현재 수온 상승으로 바닷속 산호의 20%가 백화 현상을 겪으며 죽어가고 있고, 산호 근처 바다생물들도 덩달아 위험에 빠져 그 지역에서 어업을 하는 약 1억 명의 사람들이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죠. 이미 기후재난은 시작됐습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과학+환경콘서트’를 하게 된다면 “환경적 실천을 모색해야 하는 자리가 돼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환경문제는 경각심을 느끼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삶의 실천으로 이어져야만 합니다. 영화제가 환경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을 넘어, 작게라도 실천으로 옮기게 만드는 역할을 하길 바랍니다. 에어컨이나 보일러를 적정 온도에 맞춰 사용하고, 집 안에서도 옷을 갈아입어 여름과 겨울을 대응했으면 해요. 우리나라는 전기요금이 낮아 전기를 아끼려는 생각이 아직 부족한데 앞으로 챗GPT, 전기차까지 더해지면 대규모 전기사용으로 지구는 심각한 위험에 빠질 겁니다. 빈 방에 불을 끄는 것부터 기후재난에 대한 대비입니다.”

공상의 단초는 영화, 고민의 끝은 과학

고레에다 감독의 다큐멘터리 ‘또 하나의 교육’ 스틸. [사진 환경재단]

고레에다 감독의 다큐멘터리 ‘또 하나의 교육’ 스틸. [사진 환경재단]

‘피스&그린보트’를 두 번이나 탔다고 들었는데, 어떤 경험이었나요?
“일주일 넘게 함께 배를 타며 그 안에서 날마다 대화하고 토론하는 시간은 제게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어요. 과학기술이 주는 편리함·즐거움이 사회의 지속가능성과 충돌할 때 이를 제어하고 조정하는 장치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우리 뇌는 위험신호에 왜 둔감한가,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의 해법은 어떻게 실천돼야 하는가 등등의 문제들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새 토론했네요.”
이번 영화제에서 추천하고 싶은 세션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지구를 지켜라!: 액셔니스트의 삶’ 세션은 환경 문제를 성찰에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도와줄 겁니다. ‘기후(호)식품 전성시대’ 세션은 우리가 평소 습관적으로 먹는 음식들이 환경이슈들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줍니다. 또 올해는 특별히 제주에 관한 작품이 여러 편 출품됐어요. ‘생존의 땅, 제주’ 세션에서 제주의 환경을 함께 고민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번 영화제의 추천작을 꼽는다면요?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초기에 TV 다큐멘터리 연출가로 활동하면서 환경 작품을 만든 거 아세요? ‘또 하나의 교육’ ‘그러나… 복지를 버리는 시대로’ ‘오염은 어디로 갔는가?’ 세 작품인데 이번 영화제에서 개봉합니다. 그만의 영화 스타일이 여기서도 여지없이 발견되죠. 개막작 ‘블루백’도 인상적입니다. 산호를 지키는 환경운동가 ‘에비’와 엄마 ‘도라’의 이야기인데, 위기의 바다와 생명체를 구하는 노력을 통해 서로의 소중함을 알아가는 가족 이야기가 감동적이에요.”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서 관객들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뭔가요?
“영화제는 더없이 훌륭한 학교입니다. 교실에서 벗어나 지구 환경을 성찰하고 토론할 수 있는 매력적인 교육의 장이죠. 영화제는 더없이 화목한 거실이기도 해요. 가족이 함께 환경영화를 보며 우리집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토론해 볼 수 있죠. 환경을 주제로 최고 수준의 작품들을 선보이는 국제영화제는 전 세계적으로 서울국제환경영화제가 독보적입니다. 저희 영화제가 모두 함께 환경을 노래하는 축제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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