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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에 꽂힌 명품 주얼리…춤바람 난 미술도시 홍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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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1호 19면

홍콩 ‘댄스 리플렉션’ 가보니

홍콩 서구룡문화지구 M+앞 아트 파크에서 공연된 프랑스 안무가 라시드 우람단의 ‘줄 긋는 자들’. 정면의 건물 M+에 ‘댄스 리플렉션’ 대형 포스터가 걸려 있다. [사진 반클리프 아펠]

홍콩 서구룡문화지구 M+앞 아트 파크에서 공연된 프랑스 안무가 라시드 우람단의 ‘줄 긋는 자들’. 정면의 건물 M+에 ‘댄스 리플렉션’ 대형 포스터가 걸려 있다. [사진 반클리프 아펠]

지난 20일 오후, 요즘 핫하다는 홍콩 침사추이 서구룡문화지구에 2021년 문을 연 현대미술관 M+ 앞 아트 파크에 나들이 나온 시민들은 진귀한 경험을 했다. 넓은 잔디 광장을 가로질러 5층 높이로 설치된 로프를 무려 40분간 외줄타기한 사람 때문이다. 100m쯤 되는 거리를 간단한 안전장치 하나에 의지해 왕복하다가 잠시 그 위에서 드러눕거나 가부좌를 틀 뿐인데, 감동이 있다. 평온하게 가다가도 자칫 균형을 잃기 쉽고, 그럴 때 로프는 격하게 출렁인다. 파도타기를 잘 해야 다시 균형이 잡힌다. 바닥에선 여러 명의 댄서가 인간 탑을 쌓거나 도약해 로프 위의 댄서에게 닿으려고 줄기차게 시도한다.

프랑스 안무가 라시드 우람단의 아웃도어 공연 ‘줄 긋는 자들’인데, 단순 서커스는 아니었다. 홍콩의 새로운 시각문화 중심지 M+의 텅 빈 외벽을 캔버스 삼아 움직이는 그림같은 댄서들의 몸짓은 꽤 선언적이었다. 미술의 도시에서 상대적으로 마이너한 현대무용이 대중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것 같았고, 뙤약볕 아래 40분 동안 꼼짝 않고 집중한 관객들은 “브라보”로 화답했다.

발레 후원 넘어 현대 무용으로 확장

니콜라 보스 반클리프 아펠 회장. [사진 반클리프 아펠]

니콜라 보스 반클리프 아펠 회장. [사진 반클리프 아펠]

이 공연은 30주년을 맞은 홍콩 프렌치 메이 페스티벌에 올해 추가된 ‘댄스 리플렉션’ 프로그램 중 하나로, 2020년부터 프랑스와 이탈리아, 브라질 여러 도시를 누벼 왔고, 오는 10월 한국에서도 선보일 예정이다. ‘댄스 리플렉션’은 명품 주얼리 브랜드 반클리프 아펠의 현대무용 후원 프로젝트다. 안무가들의 창작과 공연, 네트워킹을 돕는 글로벌 플랫폼으로, 지난해 런던에 이어 올해 홍콩에서 댄스 페스티벌을 열었다. 지난 5일부터 총 7팀의 아방가르드한 무대로 홍콩 곳곳을 3주간 수놓고, 21일 프랑스 안무가 크리스티앙 리조와 터키 무용수 케렘 겔레벡의 ‘사키난’으로 막을 내렸다. 공연의 성격은 제각각이었지만, 주최측의 적극적인 홍보로 모든 현장에 관객이 넘쳐났다.

현대무용이 든든한 후원자를 얻은 셈이다. 반클리프 아펠은 1950년대 클로드 아펠과 ‘신고전주의 발레의 아버지’ 조지 발란신의 만남 이래 꾸준히 발레를 후원해 왔고, 이들의 합작으로 뉴욕시티발레단이 초연한 ‘주얼스’(1967)는 지금까지 우리 국립발레단을 포함해 전세계에서 공연되는 인기 레퍼토리다. ‘주얼스’와 발레 모티브 컬렉션이 워낙 유명해 발레만 후원하는 줄 알지만, 반클리프 아펠은 알고 보면 현대무용과도 인연이 깊다.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 적 있는 LA댄스 프로젝트의 ‘리플렉션’(2013)은 파리오페라발레단 예술감독 출신인 현대무용가 뱅자멩 밀피예와 반클리프 아펠의 협업으로 탄생한 3부작 ‘젬스’ 중 하나다. 밀피예가 현대적으로 재창작한 ‘로미오와 줄리엣’은 동명의 하이 주얼리 컬렉션 출시로 이어지기도 했다.

반클리프 아펠이 본격적으로 현대무용 후원을 시작한 건 2020년 ‘댄스 리플렉션’이라는 타이틀을 걸고서다. 파리·교토·베이징·아부다비 등 특정 도시와 다양한 방식으로 협업해 현대무용이 대중을 만나게 돕고 있다. 2021년엔 미국 연출가 로버트 윌슨과 안무가 루신다 차일드의 ‘바흐 6 솔로’를 위해 파리 떼아뜨르 드 라 빌과 협업하고, 지난해에는 그리스 아티스트 디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의 신작 ‘가로 방향’의 일본 투어를 지원하는 식이다. 뉴욕대 아부다비 아트센터에 칸도코 댄스컴퍼니 등 아랍에미리트 아티스트들을 초청해 공연과 워크숍을 후원하기도 했다.

‘로미오와 줄리엣’ 하이주얼리 컬렉션. [사진 반클리프 아펠]

‘로미오와 줄리엣’ 하이주얼리 컬렉션. [사진 반클리프 아펠]

올해 홍콩 ‘댄스 리플렉션’ 페스티벌에는 반클리프 아펠의 니콜라 보스 회장이 직접 건너와 여러 작품을 관람하며 무용가들과 어울려 축제를 즐겼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CEO를 겸하면서 예술가 후원까지 총괄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오는 10월 한국에서도 공연 예정

코로나 시국에 ‘댄스 리플렉션’을 시작한 동기는.
“슬픈 우연일 뿐, 몇 년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다. 초기 계획은 그저 공연을 홍보하고 페스티벌을 조직하는 것이었는데, 공연이 금지된 세상에서는 눈에 띄지 않게 재정적 도움을 주는 방식으로 창작 활동을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다시 원래 의도대로 창작을 지원하고 공연을 확산하고 관객이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어 기쁘다.”
‘발레 사랑’이 브랜드 정체성의 일부인데, 현대무용까지 확장한 의미는.
“연속성도 중요하고, 카테고리의 다양성과 보편성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댄스 리플렉션의 기본 아이디어는 고전발레뿐 아니라 현대무용과 비서구적인 춤까지 확장하려는 것이지만, 동시에 발레 관련 프로젝트도 유지하고 있다. 말하자면 무용 분야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지원을 하는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 하이주얼리 컬렉션. [사진 반클리프 아펠]

‘로미오와 줄리엣’ 하이주얼리 컬렉션. [사진 반클리프 아펠]

발레 모티브 컬렉션처럼 현대무용도 컬렉션으로 만들 수 있을까.
“쉽진 않다. 역사적으로 반클리프 아펠에 영감을 준 건 우아하고 반짝이는 발레리나의 모습과 고전 발레 스토리, 의상이었지만, 현대무용에서는 형태가 아니라 추상적인 동작이나 댄서의 철학이 영감을 준다. 하지만 영감은 여러 방향으로 작동한다. 예컨대 셰익스피어 연극에서 영감받아 ‘로미오와 줄리엣’ 컬렉션을 제작하면서, 안무가 뱅자멩 밀피예의 새로운 컨템포러리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 창작을 지원하기도 했다.”
뱅자멩 밀피예와의 인연은 발란신과의 인연에 비유할 만한 것 같다.
“뱅자멩과의 만남 자체가 발란신과 연결되어 있다. 아펠 가문을 통해 소개받았는데, 뉴욕시티발레단 최고의 무용수였던 만큼 발란신을 좋아하고 ‘주얼스’도 자주 공연했다더라. 그래서 ‘주얼스’ 재안무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가 발란신에게서 영감받은 완전히 새로운 3부작 공연 ‘젬스’를 만들게 됐고, 그의 작업을 계속 지원하고 있다.”
뱅자멩 밀피예의 ‘로미오와 줄리엣’ [사진 반클리프 아펠]

뱅자멩 밀피예의 ‘로미오와 줄리엣’ [사진 반클리프 아펠]

지난해 런던, 올해 홍콩 등 도시와의 협업도 인상적이다.
“‘댄스 리플렉션’의 기본 아이디어는 현대무용가들의 네트워킹을 위한 글로벌 플랫폼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고, 반클리프 아펠이 진출한 모든 곳에 함께 선보이는 것이 미션이다. 그런데 아티스트들은 상황에 따라 다른 방식의 지원을 요구하니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예컨대 파리에는 댄스 페스티벌이 많으니 우리가 또 하나를 만들 필요가 없지만, 홍콩처럼 없는 곳에는 만드는 거다. 우리는 ‘댄스 리플렉션’이라는 이름으로 유럽·미국·중동·아시아에서 독자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고, 그것들을 페스티벌에 불러 모아 협업하게 하려고 한다. 이것이 우리가 좋아하는 방식이고, 지금 홍콩에서 하고 있는 일이다.”
크리스티앙 리조의 ‘사키난’. [사진 반클리프 아펠]

크리스티앙 리조의 ‘사키난’. [사진 반클리프 아펠]

한국 아티스트나 기관과의 협업도 계획에 있나.
“당연히 있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 할 수는 없지만, 조만간 댄스 리플렉션 프로젝트를 한국에서도 선보일 예정이다. 무용 장르는 아니지만 한국 예술가들과 협업한 적은 많다. 서울에 메종(브랜드를 대표하는 공간)을 지을 때 전체 프로그램을 장인들과 협업으로 진행했었다. 우리는 이미 공예 부문에서 금속·도자기·목공예 등 한국의 전통 예술과 탄탄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고, 무용은 앞으로 탐구할 분야라 생각한다.”
명품 브랜드로서 예술후원에 대한 철학이라면.
“예술가들이 하려는 것을 그대로 밀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물론 주얼리 사업은 당연히 비즈니스와 예술을 연결해야 하지만, 댄스 리플렉션 같은 프로그램은 순수하게 아티스트를 지원한다. 그들의 독립성과 취향을 존중하고, 절대 작업에 개입하거나 상업적 활동을 요구하지 않는다. 때로는 그들이 우리가 보석으로 표현하는 것과 상반되는 이야기를 할 때도 있지만, 분명한 선을 긋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브랜드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도록 요구하지 않고, 순수하게 지원만 한다는 게 우리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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