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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부활 천안함’ 이번으로 끝내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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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1호 30면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

부활(復活)은 죽었다 다시 살아남을 뜻한다. 2023년 5월 19일 천안함이 부활했다고 각종 언론 매체에서 대서특필했다. 13년 2개월 만에 ‘천안함’이 다시 눈앞에 돌아왔고 나는 그 앞에 섰다. 취역식에 참석해 부활한 새 천안함 앞에서 새하얀 하정복을 입고 도열해 있는 승조원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13년 전 미처 완수하지 못한 서해수호 임무를 그들이 이어받도록 무거운 숙제를 준 것만 같은 기분에서다. 이어, 더 강해진 모습으로 건조된 천안함 곳곳을 돌아보며 오늘의 순간이 있기까지 관심과 응원을 보내 주신 국민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13년 만에 천안함 부활해 감개무량
다시는 ‘천안함 비극’ 반복 안 된다

사실 오늘의 취역식이 있기까지 천안함은 멈춰 있지 않았다. 천안함 피격 이후 1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정권이 세 번 바뀌었다. 그동안 천안함은 수면 아래에서 쉼 없이 헤엄쳤고 살아 있다고 소리 없이 외쳤다. 어떤 정권은 천안함이라는 단어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을 두려워하며 쉬쉬했고, 다른 정권은 정치적으로 이용했으며, 또 다른 정권은 철저히 무시했다. 그럴수록 ‘이스라엘 잠수함 충돌’이니 ‘자작극’이니 ‘좌초설’이니 하는 음모론이 무성해졌고, 음모론자들은 사회 각 분야에서 득세했다. 그들은 방송에 나와 전문가인 척 세 치 혀로 농락했고, 허구의 소설을 전문 서적으로 둔갑시켜 책으로 출간했으며 SNS를 통해 가짜뉴스를 퍼날랐다. 천안함이 북한 소행이면 북한을 자극하고 한반도 평화가 깨진다는 생각을 하는 일부 정치인과 국민이 이에 동조했다. 전사한 장병들과 부상당한 생존 장병들을 향한 비아냥도 그랬지만 정말로 참담했던 건 그릇된 음모론이었다. 음모론자들과 추종자들은 있지도 않은 ‘진실’을 밝히라고 아우성이었다. 참으로 외로운 시간이었다. 살아 있는 이들은 살아도 살아 있는 삶이 아니었고 나라를 지키다 전사한 이들은 명예도 찾지 못하고 서해수호의 날에만 반짝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지는 별이 되었다.

죽음에 대한 해석 중 사회학적으로는 ‘기억으로부터 잊혀짐’을 죽음으로 둔다고 한다. 내게 천안함은 죽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전사한 이들의 명예를 찾기 위해서라도, 생존 장병들의 남은 삶을 위해서라도 천안함은 살아 있어야 했고, 그 일념 하나로 지금껏 버텨 왔다. 하나 된 마음으로 함께해 준 생존 장병과 유족들, 그리고 각자의 위치에서 응원과 격려를 이어간 평범한 국민이 있었기에 천안함은 잊히지 않고 살아 있을 수 있었다. 천안함 음모론은 이제 제2막으로 들어섰다. 인터넷 댓글 추이는 대략 1년전부터 ‘음모론’에서 ‘천안함 명예 실추론’의 형태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천안함 피격사건을 북한의 소행으로 공식화했고 각종 언론 기조와 국민 여론이 천안함에 대한 명예를 회복하는 방향으로 돌아서자 13년을 끌어온 기존의 음모론만으로는 설 땅이 없다고 판단한 것인지 모르겠다.

이제 새 천안함이 취역했으니 나를 포함한 생존 장병들은 천안함이 모두의 기억 속에 잊히지 않고 기억될 수 있도록, 또 새롭게 서해 바다를 지켜나갈 천안함과 신임 승조원들이 자부심을 갖고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활동해 나갈 예정이다. 새 천안함은 대잠수함 장비 등 각종 무기체계가 발전되고 개선되었다. 무기체계가 개선된 만큼 이를 지휘·통제하는 군수뇌부의 정보·작전·책임·결심 등 주요 분야도 개선되어야 한다.

깊은 바닷속에서 빠져나와 천안함의 기적 소리가 다시 대한민국에 울려퍼지기까지 13년의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전사한 전우들과 생존 장병들은 언제나 13년 전 그날, 그 바다에 머물러 있다. 새로운 미래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새 천안함이 힘차게 항진할 수 있도록, 제3·제4의 천안함이 재취역하지 않도록, 그리고 부활이란 단어가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2010년 3월 26일의 천안함을 잊어선 안 된다.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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