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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와 사색] 흰 부추꽃으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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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1호 30면

흰 부추꽃으로
박남준

몸이 서툴다 사는 일이 늘 그렇다
나무를 하다보면 자주 손등이나 다리 어디 찢기고 긁혀
돌아오는 길이 절뚝거린다 하루 해가 저문다
비로소 어둠이 고요한 것들을 빛나게 한다
별빛이 차다 불을 지펴야겠군……

언제쯤이나 사는 일이 서툴지 않을까
내 삶의 무거운 옹이들도 불길을 타고
먼지처럼 날았으면 좋겠어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문학동네 2005)

배우를 꿈꾸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저는 가끔 친구에게 눈물 연기를 해달라고 짓궂은 부탁을 했습니다. 즐겁게 이야기를 하다가, 잔을 부딪치다가, 문득 그리고 불쑥. 갑자기 부탁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친구는 자신 있다고 말하며 이내 골똘한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러고는 굵은 눈물방울을 뚝뚝 떨구었습니다. 볼 때마다 신기했지만 아무리 연기라도 울고 있는 친구를 보면 어쩔 줄 몰라 미안해졌습니다. 게다가 친구는 한번 흘린 눈물을 좀처럼 그치지 못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일에는 능숙했지만 그치는 일에는 서툴렀던 것입니다. 거짓으로 울 수 있지만 거짓으로 그칠 수는 없다고 저는 그때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박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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