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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장일치 돈 풀기? 미국 연준 뜻밖의 역사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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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1호 22면

돈을 찍어내는 제왕, 연준

돈을 찍어내는 제왕, 연준

돈을 찍어내는 제왕, 연준
크리스토퍼 레너드 지음
김승진 옮김
세종서적

미스터 체어맨
폴 볼커·크리스틴 하퍼 지음
남민호 옮김
글항아리

코로나19 대유행이 마침내 끝났지만 우리는 그토록 기다렸던 희망 대신 새로운 고통과 만나고 있다. 코로나 종식으로 에너지·물자 수요가 급증한 데다, ‘석유·가스 공급국’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다. 고물가·고금리에 시달리면서 삶의 질은 떨어지고 앞날은 불안하기만 하다. 불평등은 더욱 깊어지고 금융시스템에 대한 불안도 확대일로다.

이달 초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이 기준금리를 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이후 회견장을 나서는 모습. [AP=연합뉴스]

이달 초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이 기준금리를 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이후 회견장을 나서는 모습. [AP=연합뉴스]

미국 경제 분야 탐사보도기자로, 초거대 기업을 비판적으로 파헤쳐온 지은이는 오늘날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경제혼란의 핵심 이유를 미국의 과도한 달러화 찍어내기와 돈 풀기에서 찾는다. 글로벌 기축통화인 달러화의 통화량과 가치는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산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기준금리 결정에 좌우된다.

연준 산하 FOMC는 6주에 한 번씩 모여 기준금리를 정한다. 그때마다 전 세계가 주목하고 주가가 출렁인다. FOMC는 7명의 연준 이사 전원과 미국 15개 지역 연방준비은행(FRB·연은)의 총재 중 순번제로 뽑힌 5명 등 12명의 위원으로 이뤄진다.

지은이는 1991~2011년 캔자스시티 연은 총재로 일했으며 2010년 FOMC 위원을 맡았던 토머스 호니그의 지적에 주목한다. 당시 연준 의장이자 FOMC 위원장인 벤 버냉키는 2007~2009년 금융위기에 대한 처방으로 양적완화(돈 풀기)에 나섰다.

하지만 호니그는 FOMC가 돈을 계속 풀면 그전까지 안전한 투자처에 있던 자산이 자칫 위험한 쪽으로 이동해 ‘자산버블’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2000년 수많은 투자자를 울렸던 닷컴 주식 가격폭락과 2007년 주택시장을 무너뜨린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시작해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금융시스템이 타격을 입은 금융위기가 자산버블의 대표적 사례다.

미스터 체어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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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비난의 화살은 주로 주식·모기지 중개인에게로 향했지만 실제로는 FOMC의 돈 풀기가 근본 원인을 제공했다는 게 호니그의 믿음이다. 인위적으로 풀린 거대한 자금과 이를 다루는 금융기관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자칫 1930년대 대공황과 같은 경제 재앙을 부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위기가 고조되던 2008년 말에서 2010년 초 사이 연준은 무려 1조 2000억 달러를 시중에 공급했다. 100년간 늘릴 화폐량을 불과 1년이 조금 넘는 기간에 풀었다. 호니그가 FOMC에 참여한 2010년에도 이 유례없는 돈 풀기는 그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그 한 해 동안 FOMC 안건에 모두 반대표를 던져 ‘반란자’로 통했다. FOMC에서 내부 논쟁이 있었으며, 적어도 한 명의 위원은 양적완화가 정당성을 가지기에 위험이 너무 크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양적완화는 효과가 있었을까? 버냉키는 저금리 혜택으로 자산이 불어난 부자들이 소비를 늘리면 이들이 뿌린 돈의 혜택으로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와 더 높은 임금이 가게 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제대로 수익을 내지 못하는 한계 기업에 저금리라는 산호호흡기만 달아준 셈이 됐다. 돈 풀기에 따른 물가상승으로 저소득층은 고통을 겪었다.

연준은 코로나 대유행 중에는 300년에 걸쳐 늘릴 돈을 몇 달 안에 풀었다. 이제 와서 기준금리를 올려 돈줄 죄기에 나서지만, 정작 대출이 필요한 개인과 기업만 옥죈다는 지적이 만만치 않다.

호니그는 금융위기가 닥치면 무조건 돈을 풀고, 인플레이션이 심화하면 돈줄을 죄는 정책보다 은행에 대한 개별적인 대응을 주문한다. 고수익을 바라고 위험투자에 나선 은행과 경제적·사회적 필요성이 큰 기업 대출에 주력한 은행을 분리 대응하자는 제안이다. 위험 투자 은행은 전체 시스템 보호를 위해 혼자 무너지도록 놔두고, 기업 대출 등에 치중한 은행은 최대한 보호하자는 것으로, ‘호니그 규칙’으로 불린다.

이 책의 원제는 The Lords of Easy Money. 부제인 ‘미국 중앙은행은 어떻게 세계 경제를 망가뜨렸나’는 지은이가 외치고 싶은 말일 것이다.

『미스터 체어맨』은 바람직한 연준의 정책과 의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75~79년 뉴욕 연은 총재, 그리고 지미 카터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인 79~87년 연준 의장을 지내면서 돈줄을 단단히 묶어 물가를 잡은 폴 볼커(1927~2019)의 회고록이다. 고물가와 싸우고 금융위기를 막으면서 행정 효율화에도 힘쓴 그의 공적은 물론 정치적 압박에 굴하지 않고 신념을 지킨 중앙은행장의 바람직한 공직자 상도 함께 살필 수 있다.

87년 연준 의장에서 물러난 그에게,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인 2009~2011년 ‘고용과 경쟁력에 대한 대통령 자문위원회’ 의장을 맡을 때까지 공직의 기회는 오지 않았다. 소신이 제대로 평가받는 데는 너무도 긴 시간이 필요했다. 원제 Keeping at It. ‘건전한 자금과 좋은 정부를 향한 탐색’이라는 부제가 내용을 요약한다.

채인택 전 중앙일보 전문기자 tzschaei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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