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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매혼·성차별 논란 ‘농촌총각 국제결혼 지원 조례’ 속속 폐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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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1호 12면

폐지되는 ‘국제결혼 지원 조례’

지난달 7일 충청남도 서천군은 ‘서천군 미혼자 국제결혼 지원에 관한 조례’의 폐지안을 입법예고 했다. 이 조례는 2012년 미혼 남녀의 국제결혼을 지원해 저출산 고령사회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목적으로 제정됐다. 군에서 3년 넘게 살고 있는 만 35세 이상 50세 미만 거주자가 외국인과 결혼한 경우 소요 비용의 일부를 지원하는 내용이다. 서천군에 따르면 폐지안은 이달 말 공포될 예정이다.

지난달 7일 발표된 ‘서천군 미혼자 국제결혼 지원에 관한 조례’의 폐지안 입법예고 공고문. 윤혜인 기자

지난달 7일 발표된 ‘서천군 미혼자 국제결혼 지원에 관한 조례’의 폐지안 입법예고 공고문. 윤혜인 기자

국제결혼 지원 조례가 속속 폐지되고 있다. 지난 3월 31일 경상남도 창원시도 ‘창원시 농촌거주 미혼남성 국제결혼 지원 조례’의 폐지를 입법예고 했다. 충북 괴산군도 지난 3월 20일 관련 조례의 폐지를 입법예고 했다.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국제결혼 지원 조례 폐지에 나선 지자체만 10여 곳이다. 충북 음성군, 금산군, 경북 울진군은 2021년 12월에, 경기 양평군은 지난해 1월에, 전남 화순군은 2월, 충남 부여군은 4월, 경기 남양주시와 충북 증평군은 9월, 경상남도는 12월에 관련 조례를 폐지했다.

국제결혼 지원 조례는 대부분 관할 지역 내 거주하는 ‘미혼 남성’이 ‘외국인 여성’과 결혼을 한 경우 국제결혼에 든 비용을 일부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농어촌 총각’ ‘미혼자’ ‘농어업인’ ‘결혼이민자 가정’ 등 지자체마다 지원 대상도, ‘만 35세 이상 50세 이하 미혼 남성’ ‘만 35세 이상 미혼 남성 농어업인’ 등 연령 기준도 다르지만 조례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지원 금액은 300만원부터 1200만원에 이른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영농의욕 고취, 인구증가 도모, 저출산 고령사회 대응, 농촌사회 활력 도모 등을 위해 제정됐다.

인구 유입 위해 시행했지만 “매매혼 조장, 성차별 문제”

국제결혼 지원 조례 폐지의 가장 큰 이유는 인권 문제다. 이주여성 인권 침해, 매매혼 조장이 대표적이다. 조례에서 국제결혼 ‘비용’을 인정하는 건 사실상 결혼중개업체를 통한 국제결혼을 지원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평등한 당사자 간의 계약이 아닌 매매혼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지적이다. 충북 괴산군 관계자는 “인구 유입을 위해 시행했으나 외국인 여성과의 매매혼 조장, 성차별 문제 등이 지속해서 제기돼 국가인권위원회와 여성가족부 특정성별영향평가에서 개선을 권고함에 따라 폐지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결혼중개업체를 통한 국제결혼이 단기 속성 과정처럼 이뤄져 여성을 상업화한다는 비판도 일었다. 실제로 2020년 여성가족부가 국제결혼 중개업의 현황을 조사한 결과, 국제결혼 커플의 만남부터 결혼식까지 소요된 기간은 5.7일에 불과했다. 한국인 배우자가 낸 결혼 중개 수수료는 평균 1372만원에 달했지만, 외국인 배우자가 낸 수수료는 69만원에 그쳤다. 기간과 지불금액만 놓고 보면 두 사람이 서로 평등한 관계로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결혼한 것인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다. 연령차도 만만찮다. 한국인 배우자의 연령은 40~50대(81.9%)가 대부분이었지만 외국인 배우자는 20대(79.5%)가 가장 많았다.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인권위·여가부도 정책 개선 권고

이런 이유로 지자체의 국제결혼 지원 사업에 대한 비판은 지속해왔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2018년 1월 국제결혼 지원 사업을 시행하는 지자체에 “일회성 사업을 지양하고 다문화 가정의 역량 강화와 다문화 가정 여성의 인권이 향상될 수 있도록 예산을 집행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전달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지난 2019년 “개인의 존엄과 성평등에 기초한 혼인의 성립과 가족생활 보장을 위해 국제결혼 지원제도를 젠더 관점에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박복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2020년 여성가족부가 시행한 국제결혼지원사업 특정성별영향평가에서 “국제결혼지원사업은 결혼이주여성을 ‘사올 수 있는 상품’으로 인식시키는 인권침해 문제가 있다”며 “지역 거주 남성의 국제결혼을 지원하기보다는 다문화 가정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해당 연구를 바탕으로 여성가족부는 2021년 각 지자체에 “일회성 사업을 지양하고 다문화 가정의 역량 강화와 이주여성 인권이 향상될 수 있도록 사업 운영 방향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며 국제결혼 지원 조례 및 사업 정비를 권고했다.

대부분 지원 대상자를 남성으로 한정해 성차별적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남아있는 33개의 국제결혼 지원 조례 중 21개의 조례명에는 여전히 ‘농촌총각’‘농어촌 미혼남성’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외국인 여성’과 결혼한 ‘남성’으로 지원 대상을 한정한 곳은 27곳에 달한다. 지원 대상을 ‘외국인과 결혼한 미혼자’로 성별에 제한을 두고 있지 않은 곳은 6곳에 불과했다. 이 경우에도 대부분 처음에는 지원 자격을 남성으로 제한하다 조례를 개정해 성별 제한을 없앤 것이다.

지난 2021년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등 국내 인권단체와 베트남 출신 유학생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 사업을 추진한 지자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페이스북]

지난 2021년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등 국내 인권단체와 베트남 출신 유학생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 사업을 추진한 지자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페이스북]

이처럼 꾸준한 비판이 있었지만 최근에서야 관련 조례가 개정 및 폐지되고 있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높아진 인권 의식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다문화 사회가 본격화되면서 곳곳에서 외국인 노동자나 이주여성이 겪는 문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고 그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많아지고 있다”며 “국제결혼 지원 조례 및 사업 폐지도 그 노력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례 남아있는 지자체 33곳 중 8곳만 시행

이런 분위기 속에 아직 국제결혼 지원 조례가 남아있는 지자체도 대부분 국제결혼 지원 사업을 중단한 상황이다. 중앙SUNDAY가 현재 국제결혼 지원 조례를 가지고 있는 지자체 33곳을 조사한 결과 실제로 국제결혼을 지원하는 지자체는 8곳에 불과했다. 조례를 가지고 있는 지자체는 강원도와 경상남도가 각각 11곳, 충청남도 3곳, 충청북도 2곳, 인천시 2곳, 전라남도 2곳, 전라북도 1곳, 경상북도 1곳이었다(자치법규정보시스템). 하지만 실제 지원 사업을 시행하는 곳은 인천 강화군, 인천 옹진군, 강원 고성군, 강원 정선군, 충북 단양군, 전남 강진군, 경북 포항시, 경남 하동군 뿐이었다.

조례가 남아있는 33곳 중 17곳은 조례 개정 또는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 강원도는 2020년 ‘농어촌 총각 국제결혼 지원 조례’를 ‘농어업인 국제결혼 지원 조례로’ 개정한 데 이어 조례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 올해부터 예산도 배정하지 않고 사업을 중단했다. 강원도 관계자는 “조례 개정으로 지원자 성차별 문제는 해소됐지만, 매매혼 조장과 가정폭력 문제 등을 고려해 중단한 상황”이라며 “농촌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도 결혼을 안 하는 추세다보니 수요가 줄어든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강원도 정선군도 조례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 정선군은 올해 최대 6가구까지 지원이 가능하도록 3000만원의 예산을 배정했는데, 이미 3가구가 신청해 수령한 상태다. 수요가 있어 사업을 진행하고는 있지만, 앞선 문제들이 제기돼 일회성 지원보다 3년에 걸쳐서 계속 정선군에 거주했을 때 지원하는 방향을 고려하고 있다. 정선군 관계자는 “지원 대상에 있어서도 성별 제한이 없도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국제결혼만 지원하는 것을 재고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올해부터 국제결혼 지원을 중단한 삼척시는 “일반 국민의 결혼도 어려운 상황에서 국제결혼만 지원하는 것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중단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7일 폐지안을 입법 예고한 충남 서천군이 “신설된 결혼정착금 지원 정책이 미혼자 국제결혼 지원에 관한 조례를 보완할 수 있다”고 판단한 배경과 다르지 않다. 서천군은 올해부터 결혼 후 지역에 정착하는 신혼부부에게 최대 770만원을 분할 지급한다. 국제결혼의 경우 국적 취득 후 신청이 가능하다.

지원자 적어 실효성 없다는 지적도

최근 수요가 적어진 점도 사업 중단 및 조례 폐지에 영향을 미쳤다. 강원도 삼척시는 지난해 10명분의 예산을 배정했지만 지원자가 적어 재공고를 올렸다. 삼척시는 올해부터 예산을 편성하지 않고 조례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 강원도 고성군은 2020년부터 22년까지 3년간 지원자가 0명이었다. 고성군 관계자는 “수요가 너무 적어서 내부에서도 실효성에 대한 얘기를 논의한 바 있지만, 일단 올해 다시 지원자가 2명이 있어서 사업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상남도 하동군은 올해 2명 예산을 배정했지만 지원자가 없어 추가 모집 공고를 내걸었다.

경남 하동군 농촌총각 행복가정이루기 지원사업 추가신청 안내 공고. 윤혜인 기자

경남 하동군 농촌총각 행복가정이루기 지원사업 추가신청 안내 공고. 윤혜인 기자

통계청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결혼 건수는 줄고 있다. 2013년 32만2807건에서 점차 감소해 지난해 19만1690건으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국제결혼 건수도 2만5963건에서 1만6666건으로 35.8% 줄어들었다. 코로나19의 영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결혼을 잘 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며 국제결혼도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2007년 국제결혼중개업법이 제정되며 신상정보 공개, 소득 증빙, 범죄사실증명서, 국제결혼용 건강검진서 제출 등 요건이 까다로워졌는데 생계형 영농이나 어업을 하는 경우 기준에 못 미쳐 자격이 안 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외국인 여성도 농어촌에 거주하는 남성과의 결혼을 꺼리는 추세다.

결혼정보업체 리스토리 이현숙 대표는 “국제결혼중개업법에 의해 국제결혼을 위해 준비할 것이 많아졌는데, 농어촌에서 농어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해당 요건을 다 갖추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농촌이나 오지에 사는 남성과 결혼을 원하는 외국인 여성은 거의 없다”며 “외국인 여성들도 이제는 단순히 가난 때문에 국제결혼을 원하는 게 아니어서 외모, 직업, 학벌, 재산 등 다양한 면모를 고려해 배우자를 선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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