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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 첫 공판…"횡령 부인, 대북송금 사실관계 인정"

중앙일보

입력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쌍방울 사외이사 시절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과 비비안 행사장에서 촬영한 사진. 독자 제공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쌍방울 사외이사 시절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과 비비안 행사장에서 촬영한 사진. 독자 제공

 “(검찰이 적용한 혐의가 문제가 된다면) 그에 대한 책임은 제가 져야한다고 생각한다”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26일 열린 첫 재판에서 이런 입장을 밝혔다. 그는 자신에게 적용된 혐의 중 자본시장법 위반과 배임·횡령 등 기업 범죄 부분에 대해선 대부분 혐의를 부인했지만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관련된 대북송금 등 혐의에 대해선 “사실 관계는 인정한다”면서도 “관련 재판과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PPT로 “횡령·배임 등 혐의 부인”

 수원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신진우)는 이날 외국환거래법 위반, 자본시장법 위반, 배임·횡령, 정치자금법 위반 및 뇌물 공여, 증거인멸 교사 등 혐의를 받는 김 전 회장과 양선길 쌍방울그룹 현 회장, 전 쌍방울그룹 재경총괄본부장 김모씨 등 3명에 대한 첫 공판을 진행했다.
김 전 회장 측 변호인은 준비해온 10장 분량의 파워포인트(PPT) 자료를 화면에 띄우고 각 혐의에 대한 인정·부인 여부를 40여분간 설명했다.

변호인은 먼저 공소장에 검찰이 공소사실과 관련 없는 ‘대북 관련 테마주·수혜주’ 등을 공소장에 장황하게 기재한 것은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이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공소장 일본주의란 재판 이전에 증거능력이 없는 증거를 제출하거나 공소사실과 관계없는 부분을 기재해 법관에게 선입견을 줘선 안 된다는 원칙이다. 김 전 회장의 변호인은 “검찰이 공소장에 ‘소위 기업사냥꾼으로 불리는 투기세력에 대한 대표적인 범행 방식’ 등을 언급했는데 이는 피고인을 기업사냥꾼과 동일시하는 듯한 인상을 심어서 재판부가 피고인에게 좋지 않은 예단과 심증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칼라스홀딩스·착한이인베스트·오목대홀딩스·희호컴퍼니·고구려37 등 김 전 회장이 쌍방울그룹 임직원 명의로 세운 5개 비상장회사(페이퍼컴퍼니)와 관련된 횡령·배임 혐의에 대해 모두 부인했다. “모두 피고인(김성태)의 1인 회사로 조달된 자금도 피고인의 주식 등 개인 재산을 금융기관에 담보로 제공해 받았고, 대출금도 모두 변제해 회사와 금융기관 모두 피해가 없어 횡령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했다. 비상장회사끼리 주고받은 자금도 “피고인 김성태와 경제적 동일체로 볼 수 있는 관계 회사 또는 조합 간의 거래라 횡령으로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피고인은 구체적인 공시업무에 관여하지 않았고, 주식매수세 유입을 위해 부정한 계획을 세우고 공시 내용 거짓으로 기재하거나 누락하지 않았다”며 “일부 누락은 실무진의 착오에 의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허위급여 등을 통한 횡령 혐의에 대해선 “깊이 반성하며 인정한다”면서도 “피고인이 받아야 할 급여를 가족 명의로 수령한 것이라 돈을 빼돌릴 의사가 없었다”고 밝혔다.

이해찬(앞줄 가운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화영(뒷줄 오른쪽)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동북아평화경제협회 소속으로 2017년 7월8일 중국 지린성 훈춘 TRY 공장을 찾아 김성태(뒷줄 왼쪽) 전 쌍방울그룹 회장 등과 함께 기념 사진을 촬영했다. 독자 제공

이해찬(앞줄 가운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화영(뒷줄 오른쪽)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동북아평화경제협회 소속으로 2017년 7월8일 중국 지린성 훈춘 TRY 공장을 찾아 김성태(뒷줄 왼쪽) 전 쌍방울그룹 회장 등과 함께 기념 사진을 촬영했다. 독자 제공

김성태 “책임 내가 져야 한다”

 지난 2월부터 이달 중순까지 5차례 걸친 재판준비기일에 불출석했던 김 전 회장은 이날 연갈색 반소매 수의에 뿔테 안경을 착용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변호인의 PPT 이후 별도 발언 기회를 얻은 그는 “재판에 성실하게 임하겠다”면서도 “(이 사건으로) 매제(A씨), 사촌 형(양선길 회장) 등이 다 같이 구속됐다”며 “이들은 저의 지시를 받고 일한 것이기 때문에 비상장법인 이러한 내용 등은 저에게 책임이 있는 점 등을 참작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김 전 회장은 재판 뒤 쌍방울그룹을 통해 낸 입장문에서 “쌍방울그룹이 본인(김성태)으로 인해 고통받고 어려운 상황이고, 회사의 많은 사람이 압수수색을 받고 구속됐다”며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으니 가족들과 임직원들에게는 넓으신 아량으로 선처를 다시 한번 부탁드린다”고 했다. 이어 “개인적으로는 다소 억울한 면도 없지 않으나 재판 과정에서 소명하겠다. 한 개인의 부족했던 판단으로 작금의 사태가 그룹과 각 계열사에 더는 악영향이 미치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김 전 회장은 이 전 부지사에게 정치자금과 뇌물을 제공하고, 2019년 대북사업을 진행하면서 경기도 스마트팜 비용 등 명목으로 800만 달러를 북한에 전달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쌍방울 그룹 임직원 명의로 세운 5개 비상장회사의 자금 538억원을 횡령하고, 그룹 계열사에 약 11억원을 부당하게 지원하도록 한 혐의(배임) 등을 받고 있다. 재판부는 다음 달 2일부터 매주 금요일 김 전 회장 등에 대한 공판을 진행할 예정이다.

 한편 수원지법 형사9단독 곽용헌 판사는 이날 직원들에게 회사 관련 비리 증거를 인멸하라고 지시한 혐의(증거인멸교사)로 구속기소된 김 전 회장의 친동생이자 쌍방울그룹 부회장 B씨가 낸 보석 청구를 인용했다. 검찰은 지난 25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B씨에게 징역 10개월을 구형했다. B씨의 선고 기일은 7월 10일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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