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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그래서 생선회를 또 안 드시렵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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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chief에디터

고정애 chief에디터

대통령실이 6개월 만에 국회에 출석했다는 지난 24일 국회 운영위는 자정까지 이어졌다. 5시간20분,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다들 짐작하듯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문제로 뜨거웠다. 발언자만 달라질 뿐 유사한 문답이 반복됐다. 대충 이런 식이었다.

핵·일본·정치 맞물린 오염수 문제 #과학적 검증이 논란 가라앉힐까 #정부가 진정시키려는 노력 해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오염수를 검증하고 판정하는 곳이 아니다. 일본이 채취한 시료를 어떻게 믿나.” “시료를 채취한 건 IAEA다. 미국 등 각국에 나눠준다. 우리도 세 차례에 걸쳐 받았다.”

“IAEA에 다 떠넘기는 거냐.” “우리도 두 사람이 IAEA에 참여하고 있다. 미국·영국 등과 함께 우리도 체크 중이다.”

“그래도 직접 채취했어야 한다. 일본이 IAEA의 허가를 받아 오염수를 방류하면 일본 수산물 수입을 재개할 것인가.” “그건 별개의 문제다.”

인용이 길었다. 표현과 수위가 달라질 뿐, 당분간 계속 마주할 문답이어서다.

오염수 문제는 일종의 복합 갈등이다. 일단 ‘핵폐기물’이란 속성이 있다. 위험성을 평가하는 우리의 두뇌를 두고 “모닥불을 첨단 기술로, 들소 가죽을 고급 의류로 여기던 선사시대 인간과 다를 바 없다”(『이유 없는 두려움』)고들 말한다. ‘원시인’인 우리에게 핵은 근원적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 16세기 파라셀수스의 설파(“모든 물질은 독이다. 용량만이 독인지 아닌지를 결정한다”)대로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있느냐가 중요한데도 말이다. 미국 물리학회가 저온핵융합의 비현실성을 대중에게 이해시킬 순 있었으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를 긍정적으로 보도록 하는 데엔 실패한 일도 있다.

도쿄전력 관계자들이 지난 2월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외신 기자들에게 오염수 저장탱크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쿄전력 관계자들이 지난 2월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외신 기자들에게 오염수 저장탱크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기에다 일본 프레임이 겹쳤다. 일본은 어떻게 믿느냐는 것이다. 오염수의 위험성을 낮게 평가하는 이들에겐 곧잘 ‘친일파’란 딱지가 붙곤 한다. 정치적 동원도 이뤄진다. 특정 정파가 줄기차게 위험성을 과장하고 있다.

사실 위험하기로 치면 2011년 사고 이후 몇 년 동안이었을 것이다. 정화 안 된 오염수가 바다로 흘러들었다. 해류상 가장 먼저 도달한다는 캐나다의 한 학자는 그러나 2017년 이렇게 평가했다. “북태평양 인근의 해양 생물이나 인간에게 심각한 위협이 되는 수준에는 이르지 않았다. 최고 수준(2015~2016년)일 때도 지상 핵무기 실험이 금지되기 전인 1950년대 후반과 60년대 북태평양에서 볼 수 있었던 오염의 약 10분의 1이었다. 지금은 70년대와 비슷한 수준이며 이후엔 더욱 감소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국무총리실 산하 TF에서 작성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관련 현황 보고’도 다르지 않다. “2019년까지 조사한 결과, 원전 사고 이전의 농도와 유사한 수준의 방사능 농도가 국내 연안에서 측정됐다. (일본이) 오염수 전부를 매년 처분한다는 가정으로 도출 평가한 결과는 자연 방사선에 의한 피폭선량 대비 1000분의 1 이하다”고 했다. 한국에 실질적인 피해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란 분석이었다. 당시 총리실은 보고서의 존재가 드러나자 “일부 전문가의 의견”이라고 축소했다. ‘정치’를 한 것이다.

원래 더 안전하게 만드는 일은 가능하지만, 절대적으로 안전하게 만드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오염수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번엔 이런저런 배경까지 겹쳤다. 많은 이들이 불안해할 것이고, 또 많은 이들이 불안을 증폭할 것이다. 의당 치러야 할 비용, 그 이상을 지불하게 될 수도 있다. 우리 사회 전체가 말이다. 최근 군산에서 횟집을 하는 80년대 운동권 출신 함운경씨가 소셜미디어에 “애꿎은 수산업자만 망하게 생겼다”고 썼던데, 12년 전에도 수산업자들이 힘들었다.

그에게 연락했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미 문제가 생겼으면 12년 전에 생겼을 텐데 이제 와 난리를 치니 갑갑하다. 과학자들이 맞다(괜찮다)고 해도 (일반인들은) 찜찜할 테니 소비하겠느냐. 정부가 진정시켜 줘야 하고 사람들도 덜 휩쓸려야 할 텐데….”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