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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형석의 100년 산책

100세 인생의 결론 “최선을 다해라, 더 큰 기회가 온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옛날에는 지방에서 온 손님을 만나면 혹시 어떤 가훈(家訓)이 있으세요, 또는 좌우명(座右銘)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있는 편이 없는 것보다 좋겠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가훈이나 좌우명에 집착하는 것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

강원도 양구, ‘철학의 집’ 내 가족사진이 있는 자리에는 두 글귀가 있다. ‘정신적으로는 상위권에, 경제적으로는 중산층에’와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을 받는 사람보다 행복하다’이다. 앞의 문구는 내가 뜻하는 것이고, 다음 글귀는 아내의 삶을 통해 얻은 교훈이다.

인간 태어난 목적은 일하는 것
더 많은 사람들 행복하게 해야

출세나 진급이 목적 될 수 없어
욕심 앞서면 끝까지 가지 못해

정권 잡으려고 공직자 됐는가
정신 빈곤하면 리더 자격 없어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나는 슬하에 많은 가족을 두었다. 또 제자 중에는 큰 기업을 운영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성공해서 부자가 되었더라도 사생활과 가정 경제는 중산층 수준이 좋다. 기업은 기업대로 독립된 공익기관이고 개인 생활은 정신적 가치가 중요하니까, 경제적 관심이나 부담에 빠지지 말라고 권한다.

‘정신은 상위권에, 경제는 중산층에’

더 중요한 것은 사회의 지도자 대부분은 중산층에서 태어났지 부유층 가정의 자녀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기업을 계승하는 일은 공인(公人)이고 사회 여러 분야의 지도자는 정신적 지도력이 있어야 한다. 인격과 정신적 가치를 깨달은 사람은 기업인도 될 수 있고 사회 각계의 지도자가 될 수 있어도, 정신적으로 빈곤한 사람과 경제가치의 노예가 된 사람은 기업인으로 성공할 수 없는 것이 보통이다.

나는 나를 위한 좌우명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삶이란 계속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찾아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도 모르게 터득한 교훈이 있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라, 그러면 더 소중한 일을 하게 된다’는 신념이다. 상식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사람이 허다하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일의 목적을 자기에게 두는 사람은 일의 가치와 역행하게 된다. 일의 목적을 사회적 가치가 아닌 주어진 집단이나 이기적 목적에 두는 사람은 사회악을 범할 수 있다. 사회경제를 병들게 하는 노동조합들이 그렇다.

일의 목적을 사회 전체에 부합시키는 사람이 최선을 다할 수 있다.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공직 그 자체가 목적이 못되고 더 높은 출세나 진급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사람도 자주 보게 된다. 서울특별시 시장이면 얼마나 막중한 책임인가. 그런데 시민을 위하기보다 대통령으로 진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시장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공직자가 정권욕의 노예가 되면 범하는 잘못이다. 독재국가에 가면 대통령이나 수상이 자신의 인기나 명예를 위해 국가행사까지 수단으로 삼고 이용한다.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보아 온 현상이다.

나는 군인이나 공무원들에게 이야기해 온 경험이 많다. 직책에 따른 계급의식이 강한 공동체에서는 진급이나 상위 보직에 대한 경쟁심을 갖게 된다. 그러나 크게 성공하는 사람들은 승진이나 높은 직위를 위해 과욕을 부리는 사람보다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성취하고 늦게 출발하더라도 중책을 찾아 끝까지 가는 사람들이다. 욕심이 앞서면 목적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교훈은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충고이다.

일의 결과는 직위가 아니고 사회적 기여도에서 나타난다. 나 같은 사람은 대학에서 보직을 맡는 경우가 적었다. 기회가 오더라도 나보다 더 유능한 동료에게 양보하고 강의와 학문에 열중하고 싶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외국에 가거나 사회에 나가면 제자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다. 교실에서 내 강의를 들은 제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라. 더 소중한 일을 하게 된다’는 체험을 한 것은 나의 신앙적 인생관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중학교 입학을 소원하면서 약속의 기도를 했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나도 다른 사람들같이 어른이 될 때까지 건강을 하락해 주시면 나를 위해서가 아니고 하느님의 일을 하겠습니다’는 기도였다. 내 건강이 거의 절망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나를 위한 욕심이나 희망이 없었다.

건강의 비결은 남을 위한 봉사

그런 출발에서인지 지금까지 항상 일이 먼저 주어졌다. 나 자신이 직업을 찾아간 경험은 단 한 번뿐이다. 27세에 탈북 월남하고 뒤늦은 학기 도중에 중앙중고등학교 교사가 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7년 후 연세대의 초청을 받은 후부터는 지금까지 주어진 일에 정성을 쏟아 온 셈이다. 내 건강이 남달리 유지되는 것도 주어진 일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중앙학교 7년 동안의 노력도 헛되지 않았다. 나보다 유능하고 훌륭한 인재들이 사회에 진출하였다. 미국, 캐나다, 한국 안에서 높은 평가와 존경받는 교수만 15~16명에 이른다. 또 교주인 인촌 선생의 뒤를 따르는 동안에 깨닫지 못했던 많은 교훈을 터득할 수 있었다. 내 뜻이 이루어지기보다는 더 높은 인생의 수련 기간이 되었다.

내가 100세를 넘기면서 얻은 결론은 인간은 일하기 위해 태어났다. 일의 목적은 더 많은 사람의 행복과 인간다운 삶을 돕는 데 있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면, 더 큰 봉사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인생관이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