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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달의 예술

동물에 대한 예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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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주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이주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동아시아 미술품 중 개나 고양이를 표현한 예를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당나라 화가 주방은 궁중 여인들과 산책하는 애완견을 묘사했으며(‘잠화사녀도’), 청나라 낭세녕은 건륭황제가 선물로 받은 열 마리의 품종견을 회화로 기록했다(‘십준견도’). 조선시대에는 ‘변고양이’로 불렸던 화가 변상벽, ‘삽살개’를 잘 그렸던 김두량 등이 해학적이고 사실적 필치로 인간과 친숙한 동물들을 그려 왔다.

개나 고양이가 가축이 아닌 반려동물로서 삶 속에 깊숙이 자리한 오늘날, 이 같은 현상을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다루는 작가들 역시 늘고 있다. 경기 성남큐브미술관의 ‘헬로 펫, 또 하나의 가족’전에는, 반려동물을 전통 민화 도상을 빌어 익살스럽게 표현한 곽수연, 반려묘를 족두리 쓴 조선시대 규수 초상화로 의인화한 정하경,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프렌치 불독, 닥스 훈트 등을 테라코타로 구워낸 주후식 등 작가 11명의 회화·조각·사진 160여 점이 전시돼 있다.(6월 25일까지)

‘헬로 펫, 또 하나의 가족’ 전시
반려동물에 대한 다양한 시선
애도하며, 위로하며, 공감하며…
현대인의 공허한 마음도 보여

금혜원, 조이(Joy), 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 83x100㎝, 2014. [사진 성남큐브미술관]

금혜원, 조이(Joy), 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 83x100㎝, 2014. [사진 성남큐브미술관]

사진작가 금혜원은 1년간 한국·일본·미국의 반려동물 장례식과 화장터, 묘지와 납골당을 찾아다니며 동물의 죽음을 기억하는 방식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죽은 개의 묘지에 찾아와 매일 기타를 쳐주는 사람, 납골당에 노트를 마련해 죽은 동물에게 편지를 띄우는 사람들을 만났다. 동물을 위한 애도 공간이 사실은 인간의 공허함을 위로받기 위한 공간이었음을 깨닫게 한다.

작가는 미국 체류 중 죽은 반려동물을 박제로 만드는 것이 펫 로스 증후군의 상실감 치유 방법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미주리 주에 위치한 유명 박제업체를 찾아가 박제된 동물을 촬영했다.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조이(Joy)’는 가죽에 붙은 살점을 모두 제거해야 하는 일반 박제와 달리, 내장만을 제거한 후 수개월 간 건조되는 ‘동결건조 방식’으로 박제됨으로써 생전의 충직한 모습을 간직한 채 죽은 후까지도 만질 수 있는 대상으로 남아 있다. 죽은 동물에 대한 애도가 절절하면 할수록 이들의 자리를 빈껍데기로나마 채우고자 하는 고독한 현대인의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반려동물을 무책임하게 유기하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윤석남의 ‘1025: 사람과 사람 없이’는 유기견 1025마리를 나무 조각한 작품이다.(이 중 300여 점 전시) 작가는 2003년 열악한 환경 속에서 20년 동안 1025마리의 유기견을 돌봐온 이애신 할머니에 대한 기사를 접하고 현장을 방문했다. 일 년여에 걸쳐 드로잉 작업을 한 후 2008년까지 천 마리가 넘는 유기견을 제작했다. 30㎝부터 1m까지 다양한 크기의 개들은 본연의 털 색이 칠해진 건강한 개, 무채색 혹은 외곽선만으로 구획된 아픈 개, 두상만으로 제작된 세상을 떠난 개로 분류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산 나무를 두 달간 방부 처리한 후, 표면을 두 차례 갈고, 밑칠과 채색, 변색 방지 칠까지 오랜 시간과 끈질긴 노동의 집적으로 완성된 목조각들은 유기된 생명체를 위로하고 상처를 어루만지는 일종의 의식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반려견 ‘몽이’를 키우며 큰 위로를 경험한 사진작가 윤정미는 주변으로 시선을 돌려 2014년부터 2년간 100여 명의 반려인을 인터넷 커뮤니티와 지인 소개를 통해 만났고 이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공간을 직접 찾아가 기록했다. (이 중 23점 전시) ‘반려동물’ 시리즈는 동물과 주인보다 이들을 둘러싼 환경에 초점을 둠으로써 요즘의 주거 유형과 가족 형태, 생활 스타일을 짐작할 수 있다.

주택가의 빨간 벽돌 담장 위로 고개를 불쑥 내밀고 있는 ‘용산 할머니와 갑돌이’, 아파트 거실의 가죽 소파에 우아하게 앉아 있는 ‘나래와 똘이, 공덕동’, 팔뚝만한 초록색 이구아나를 손 위에 올려놓은 ‘정현과 초록이와 뽈뽈이, 하월곡동’ 등은, 개성 넘치는 싱글족으로부터 1인 노인 가구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동물이 함께하는 일상과 환경을 기록한 사회사적 사료이기도 하다.

인간 중심적 자연 지배나 동물 학대는 더 이상 개인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몸담은 사회구조의 문제이며, 지구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문제이다. 인간이 자신을 소외시키는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 문제가 극복되지 않는 한 반려동물이 증가하고 버려지는 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반려동물의 삶과 죽음은 인간의 삶과 죽음에 닿아있다. 또 다른 가족이 되어 우리 곁을 지키다 먼저 간 동물들은, 인간도 결국 동물이며 자연의 극히 적은 일부일 뿐임을 알려준다.

이주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