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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소영의 문화가 암시하는 사회

반 고흐 대체할 수 없는 AI 화가,‘제2의 고흐’ 탄생 막을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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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문소영 중앙SUNDAY 문화전문기자

문소영 중앙SUNDAY 문화전문기자

“이 사람은 스케치에는 재능이 있는데 붓만 들면 그림이 이상해진다니까!”

19세기 말 가난한 무명 화가의 모델을 서던 남자가 투덜거렸다. 여기서 ‘이 사람’은 바로 빈센트 반 고흐다. 그는 자연과 인간을 화폭에 옮기면서 관습적이지 않은 색채와 즉흥적인 붓질로 내면을 표출했다. 동료 화가 폴 고갱마저 “무질서하다”며 비판했다. 하지만 오늘날 반 고흐는 현대미술을 연 거장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인공지능(AI)이 반 고흐 같은 그림을 만들 수 있을까. 반 고흐 스타일로 척척 그려내지만, 과연 반 고흐라는 화가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AI는 반 고흐 같은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예술의 핵은 독창적 시각·영감
인공지능은 기존 데이터 조합
실력 부족한 작가들에 큰 위협
새로운 예술가 양성에 걸림돌

두 코끼리 작품은 무엇이 다를까

AI 이미지 생성기 달리2가 만든 ‘전위미술 스타일의 코끼리’.〈사진 1〉 문소영 기자

AI 이미지 생성기 달리2가 만든 ‘전위미술 스타일의 코끼리’.〈사진 1〉 문소영 기자

GPT를 기반으로 대화형 AI ‘챗GPT’는 창의적인 거짓말에 능하다. 학습한 데이터 중에서 특정 단어 다음에 올 가장 문맥에 맞을 만한 단어를 선택하는 것이지, 진위를 판별해서 선택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때그때 주사위를 던져 정하듯이 가장 그럴듯한 단어를 선택하고, 그중에서 인간이 무엇을 선호하는지 다시 학습한다. 〈중앙SUNDAY 4월 29일자 2면〉

챗GPT와 함께 오픈AI사(社)에서 나온 달리(Dall-E)를 비롯해서 이미지 생성 AI가 그림을 만드는 식도 비슷하다. 가장 그럴듯하며 인간이 선호할 만한 그림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AI 이미지 생성기가 처음에는 너무나 놀랍게 보이지만 나중에는 추앙받는 전위적인 거장이 될 일은 없어 보인다. 이미 존재하는 전위예술가들 스타일로 그림을 그릴 수는 있어도 말이다.

광주비엔날레에 출품된 ‘코 없는 코끼리’.〈사진 2〉 문소영 기자

광주비엔날레에 출품된 ‘코 없는 코끼리’.〈사진 2〉 문소영 기자

예를 들어 달리2 생성기에 “전위미술 스타일의 코끼리”를 그려보라고 하면 매우 전형적인 코끼리의 기본 형태에 여러 유명 화가의 화풍을 버무린 듯한 이미지〈사진1〉를 만든다. 반면에 올해 광주비엔날레에서 박서보 예술상을 받은 ‘코 없는 코끼리’〈사진2〉를 보자. 엄정순 작가의 미술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시각장애 학생들이 청각·촉각·후각으로 관찰한 코끼리를 표현한 것을 작가가 재창조한 작품이다. 눈이 보여도 늘 틀에 박힌 코끼리 이미지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우리에게 코끼리의 다른 면을 체험하게 해주는 작품으로, 인지와 생각의 지평을 넓혀준다.

이걸 AI가 만들 수 있을까. 더구나 독창적 예술을 위해서는 이처럼 독창적인 감각적 체험이 중요한데 AI는 감각기관이 없다. 이런 연유로 순수미술가 중에 AI에 대해 크게 걱정하는 이들은 적다. 카이스트에서 AI 체험 연구실을 운영하는 이탁연 교수는 “전문 작가들의 경우 AI를 참고자료 모아주는 검색엔진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차피 그것을 자료로 자신이 최종 작품을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앙SUNDAY 2월 11일자 8면〉

문제는 이 교수도 말하듯 “단편적이고 비교적 단순한 작업을 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의 경우 (AI에 의해)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또한 AI가 학습하는 데이터의 저작권도 문제가 된다.

네이버 신작 웹툰을 둘러싼 시비

AI 의혹으로 논란을 빚은 웹툰 표지. [네이버 캡처]

AI 의혹으로 논란을 빚은 웹툰 표지. [네이버 캡처]

최근 이와 관련한 사건이 하나 벌어졌다. 지난 23일 네이버 웹툰에 신규로 올라온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이라는 판타지 웹툰에 최저 별점과 분노의 댓글 수천 개가 쏟아진 것이다. AI가 생성한 그림이라는 의혹이 일었기 때문이다. 제작 스튜디오는 사람이 그렸고 “마지막 단계에서 AI를 이용한 보정작업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독자들은 AI 생성 이미지 특유의 부자연스러운 점들을 지적하며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AI로 양산형 웹툰(비슷비슷한 내용과 화풍으로 대량생산되는 웹툰)이 판치고 웹툰 산업은 몰락할 것”이라는 비판이 쇄도했다. “산업혁명 때 러다이트 운동(기계파괴운동)을 보는 것 같다” “피할 수 없는 기술의 흐름 아닌가?” “어차피 양산형 웹툰 많은데 그걸 사람이 그리든 AI가 그리든 무슨 상관인가?” “개성 있는 웹툰은 상관없는 것 아닌가?” 같은 반응도 있었다. 하지만 “밥그릇만 문제가 아니라 AI가 기존 작가들 그림체를 학습하고 모방해서 그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는가?” “AI 사용이 보편화하면 양산형 웹툰이 더욱더 성행하고 개성적인 작가들도 결국 피해가 갈 것”이라는 재반박도 잇따랐다.

이 사건은 AI에 위협받는 업계 당사자들의 거부감이 전문가들이 예측한 것보다 크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향후 다른 산업으로 확산될 문제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생성 AI의 학습 데이터 저작권을 둘러싼 법적인 분쟁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한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는 법제화를 추진 중이다. 미진하더라도 이 문제는 법과 규제를 통해서 어느 정도 풀 수 있을 것이다. 더 크고 심각한 문제는 앞으로 AI 세상이 가져올 극심할 양극화이다. AI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우려하는 것도 각계 전반에 걸쳐 나타날 양극화다.

예술의 양극화도 깊어질 우려

문화예술계의 경우, 순수예술가나 독창적인 내용과 그림체로 이미 입지를 굳힌 웹툰 작가라면 AI는 위협이 되기보다 오히려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 소수만 살아남고 그런 역량을 갖추지 못한 다수는 AI에게 몰려 몰락할 것이라는 점이다.

AI를 주체적으로 활용하고 AI와 경쟁할 역량을 기르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 역량을 기르지 못한 작가 중에는 미래에 어떻게 성장할지 모르는 어린 작가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창작자의 풀 자체가 너무 줄어들어 버리면 미래의 거장이 나타날 기회도 줄어든다. 우리는 지금 거대한 사회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