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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청소년축구, 감격과 비탄의 4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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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장혜수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콘텐트제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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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 선생님이 교무실로 반장을 불렀다. 70여 명 아이들 시선이 반장에 쏠렸다. “선생님이 내일 학교 올 때 집에 있는 테레비 가져오래.” 그때는 교실에 시청각(이 표현도 참 고전적이다. 요즘 말로 멀티미디어) 교육용 TV 같은 게 없었다. 다음 날 담임 선생님은 TV를 교탁 위에 올려놓고 실내 안테나를 이리저리 돌리며 화면을 조정했다. 1983년 어느 날 서울의 한 중학교 2학년 교실 풍경이다.

6월 16일 목요일이었다. 오전 8시 킥오프했다. “짝짝짝~ 짝짝” 박수도, “대~한민국” 연호도 없던 시절이다. 숨죽인 채, 간간이 탄성과 한숨을 내쉬던 아이들이 뒤집힌 건 전반 14분이다. 김종부의 오른발 슛이 브라질 골망에 꽂혔다. 반 아이들뿐만 아니라, 온 학교가, 아니 전국이 뒤집혔다. 하지만 불과 8분 뒤 동점골, 그리고 후반 막판 역전골을 내주며 한국은 브라질에 1-2로 역전패했다. 모두 아쉬워했다. 그 대상이 결승행 좌절인지, 한 번으로 끝난 교실 TV 시청인지는 몰라도.

지난 23일 조별리그 1차전 프랑스전에서 2-0으로 앞서 나가자 환호하는 한국 U-20 축구대표팀 선수들. [AP=연합뉴스]

지난 23일 조별리그 1차전 프랑스전에서 2-0으로 앞서 나가자 환호하는 한국 U-20 축구대표팀 선수들. [AP=연합뉴스]

수많은 ‘대한민국 4강 신화’의 원조 격인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준결승전 날의 모습이다. 영광은 그 뒤에 따라올 수많은 비극의 전주곡이었을지도 모른다. 대표적 비극이 1997년 말레이시아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조별리그 B조 3차전이다.

6월 22일 일요일이었다. 1무 1패로 탈락 위기인 한국은 ‘경우의 수’를 따지며 3차전에 나섰다. 상대는 또 브라질이었다. 경기가 열린 쿠칭이라는 도시 이름은 ‘참사’ ‘쇼크’ 등의 단어와 함께 한국 축구사에 길이 남았다. “잘 버티네”라는 말이 무색하게 전반 19분 브라질의 선제골이 터졌다. 이후 한국 골문은 자동문이 됐다. 브라질 아다일톤은 전반 31분 첫 골을 시작으로 6분 만에 해트트릭을 완성했다. 이날 총 6골을 넣은 아다일톤은 대회 득점왕(10골)에 올랐다. 최종 결과는 한국의 3-10 대패. 더구나 일본이 8강에 오르면서 온 국민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는 2007년부터 U-20(20세 이하) 월드컵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2년 주기인 대회가 2021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열리지 못했다. 그래서 4년 전인 2019년 폴란드 U-20 월드컵이 직전 대회다. 정정용 감독과 아이들은 한국 남자축구 최초로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 결승에 진출했다.

팬데믹을 건너 4년 만에 돌아온 2023년 아르헨티나 U-20 월드컵이 한창이다. 신문이 배달된 금요일 아침 한국과 온두라스의 조별리그 2차전이 진행 중(오전 6시 킥오프)이다. 한국은 1차전에서 프랑스를 2-1로 잡고 1승을 거뒀다. 첫 경기를 내주고 ‘경우의 수’를 따져야 했던 과거와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 다른 게 하나 더 있다. 기세다. 대회를 앞두고 선수들이 했던 한마디. “형들이 준우승했으니까 우리는 우승해야죠.” 그래 꼭 하자, 우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