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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또 금리동결…성장률 전망 낮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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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국은행은 25일 경제전망보고서를 통해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GDP) 전망치를 1.4%로 하향 조정했다. 지난 2월 전망치(1.6%)에서 0.2%포인트 낮춘 것으로, 한국개발연구원(KDI)·국제통화기금(IMF)·아시아개발은행(ADB) 등의 전망치(1.5%)보다 낮다. 한은은 이날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3.5%에서 3회 연속 동결했는데,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은은 올해 연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2월(2.5%)을 시작으로 다섯 번 연속 낮췄다. 코로나19로 마이너스 성장한 2020년(-0.7%)과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2009년(0.8%)을 제외하면 2000년대 들어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는 반도체 수출 부진 등 정보기술(IT) 경기 위축이 심화된 데다 중국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이 한국 경제에 긍정적 효과를 미치는 시점도 예상보다 지연돼서다.

김웅 한은 부총재보는 “대중국 반도체 수출 부진과 중국 관광객의 국내 유입이 느리게 개선되고 있는 점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주요 부문별로 보면 1분기 성장을 주도했던 민간 소비는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면서 연간 2.3%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설비투자는 지난해 -0.5%에서 올해 -3.2%로 감소 폭이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건설투자는 지난해(-3.5%)에 이어 올해(-0.4%)도 부진할 것으로 봤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재화 수출은 상반기에 바닥을 찍고 점차 개선돼 연간으론 0.4%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창용 “재정·통화로 저성장 해결? 나라 망가지는 지름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5일 서울 한은 본부에서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3.5%로 동결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5일 서울 한은 본부에서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3.5%로 동결했다. [사진공동취재단]

상반기에는 -2.3%를 예상했는데, 올해 초 자동차 수출이 ‘깜짝’ 호조를 보이면서 직전 전망치(-4%)보다는 감소 폭을 줄였다. 하반기에는 반도체 등 IT 품목 부진이 이어지겠지만 중국 리오프닝 효과 등에 힘입어 3%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대외건전성 지표인 경상수지는 1분기 44억6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지만 연간으로는 240억 달러 흑자를 기록할 거라고 전망했다. 한은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지난 2월과 같은 3.5%로 유지했다.

기대가 다소 꺾이긴 했지만 하반기 이후 경기가 점차 좋아질 거라는 ‘상저하고’ 전망은 유지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 분기 정도 연기되는 측면은 있지만 아직은 상저하고 흐름이 유지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한은은 주요 경제 지표의 ‘시나리오 분석’도 제시했다. 중국 경제의 회복이 지연되고 선진국 금융불안이 확대되는 최악의 시나리오에서 올 성장률은 기본 1.4%에서 1.1%까지, 물가상승률은 기존 3.5%에서 3.3%까지 낮아질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중국의 성장 동력이 강화되는 최선의 경우에는 성장률이 1.6%로, 물가상승률도 3.8%로 높아진다고 추정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한은은 내년 성장률은 2.3%, 물가상승률은 2.4%로 전망했다. 지난 2월 전망치보다 각각 0.1%포인트, 0.2%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석 달 전에 비해 물가 안정세는 예상보다 빨라지겠지만 경기 회복 속도는 당초 예상에 비해 느릴 것으로 본 셈이다.

한은은 이날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3.5%에서 동결하면서 “물가상승률이 둔화 흐름을 지속하겠지만, 상당 기간 목표 수준(2%)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현재의 긴축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어려운 경기 전망뿐 아니라 그간 감소세이던 가계빚이 최근 다시 늘었다는 점도 금리 동결의 배경이었다. 이 총재는 “금리를 더 올리지 않더라도 금융회사의 연체율은 상당 기간 올라갈 것”이라면서도 “다만 큰 위기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이번 동결 결정은 금통위원의 만장일치 판단이었다.

금융시장에선 사실상 기준금리 인상이 종료됐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시장에선 한은이 올해 기준금리를 내릴지에 관심이 크다. 하지만 이 총재는 “금통위원 6명 모두 최종금리 수준을 3.75%로 올릴 가능성도 열어둬야 한다고 봤다”며 “물가가 확실하게 목표 수준인 2%로 수렴한다는 증거가 있기 전까지는 인하 시기를 언급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또 한국 경제의 장기 저성장 문제를 구조개혁으로 풀지 않고 단기 처방으로 해결하려는 분위기에 대해 쓴소리를 날리기도 했다. 이 총재는 “한국은 저출산과 고령화가 워낙 심하다. 한국은 이미 장기 저성장 구조로 와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 문제를) 재정·통화 등 단기 정책을 통해 해결하라고 하는 건 나라가 망가지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지를 모르는 게 아니라 이해당사자 간 타협이 너무 어려워 진척이 안 된다는 것”이라며 “노동·연금·교육 등 구조개혁이 정말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재정·통화정책은 단기적으로 경제를 안정화하는 것이고, 한국 경제가 잘되기 위해선 사회적 타협의 해결을 통한 구조개혁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은 총재가 금융·통화정책이 아닌 사회경제적 사안에 대해 강도높게 발언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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