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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숙련공 내쫓기 급급한 나라…이민 장벽 과감히 철폐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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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저출산 ‘국가 소멸 위기’에 쇄국적 규제 그대로

이민청 만든 일본은 기능 인력 무기한 체류 허용

세르달 아카다(34)는 ″5년 뒤면 한국과 튀르키예에서 보낸 세월이 같다″고 했다. 이영근 기자

세르달 아카다(34)는 ″5년 뒤면 한국과 튀르키예에서 보낸 세월이 같다″고 했다. 이영근 기자

중앙일보 기획 보도물 ‘이제는 이민시대’(5월 23일 시작)에 등장하는 세르달 아카다는 15년째 한국에 산다. 서울 마포구 튀르키예 음식점 요리사인 그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성인이 된 뒤 내내 머물러 온 한국이 튀르키예보다 편하다고 한다. 친구도 대부분 한국에 있다. 그러나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아카다는 한국 영주권을 얻으려다 낙담했다. 대학 졸업장과 연 소득 8500만원 이상을 증빙하는 자료가 없어서 자격 획득이 쉽지 않다는 행정사의 말 때문이었다. 학력과 소득이 주요 심사 항목인 것은 사실이다. 가급적 고학력·고소득자에게만 영구 체류 자격을 주려고 장벽을 높이 친 한국의 ‘쇄국적’ 이민 정책의 산물이다.

다른 등장인물인 리지빙은 곧 한국을 떠나야 한다. 비숙련 취업자 자격으로 중국에서 한국에 와 남해 유자망 어선 선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체류 허가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 숙련기능인력 비자(E-7)를 받으면 장기 체류가 가능하지만 학력이 높지 않고 한국어도 서툴러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처럼 비숙련 취업자로 한국에 머무르는 외국인은 수십만 명인데, 한 해에 E-7 비자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5000명뿐이다. 산업계의 빗발치는 요구로 정부가 쿼터를 늘려서 이 정도다. 지난해에는 2000명이었다. 리지빙이 타는 배의 선주는 “월급 500만원을 줘도 한국 사람은 안 온다”며 한탄한다. 농·어업과 제조업 분야에서는 외국인 근로자가 없으면 일이 되지 않는 지 꽤 됐다. 그런데도 외국인 근로자들이 숙련된 기술인이 될 때쯤 그들 나라로 돌려보내기에 급급한 게 우리의 정책이다.

우리가 이러는 사이에 일본은 외국인에게 문을 활짝 열었다. 인구 감소, 그에 따른 생산인력 부족을 이민 정책으로 막는 데 발 벗고 나섰다. 4년 전에 이민 담당 독립관청(출입국재류관리청)을 만들었다. 건설업·농업·제조업 등에서 필요한 기능을 가진 외국인 근로자의 체류 기한을 없앴다. 영구 거주가 가능하다. 허가 해당 업종은 늘어나고 있다. 한국 못지않게 외국인 근로자의 정착이 어려웠던 일본이 이렇게 변했다. 저출산·고령화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다.

저출산 현상은 한국이 일본보다 심각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나쁘다. 현재 3700만 명 수준인 한국의 생산가능인구는 2040년에 약 2800만 명으로 줄어든다. 서울시 인구만큼이 사라진다. 출산 장려 정책은 실효를 거두지 못한다. 하루하루 인구절벽으로 다가가는 ‘국가 소멸 위기’다. 현실적 해결책은 우수 인력이 한국에 많이 와 살게 하는 것뿐이다. 구시대 이민 장벽을 붙들고 있을 때가 아니다. 중앙일보 기획 보도를 접한 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이민 문제에 과감하고 선제적인 대응”을 전 부처에 주문했다. 발상의 대전환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