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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king&Food] 쫄깃한 쫄면의 발견은 실수일까? 연구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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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면

[식재료 탐구 쫄면편]

장하준은 자신이 쓴 책 『경제학 레시피』에서 쫄면 맛을 이렇게 표현한다. “엄청난 쫄깃함과 눈물을 쏙 빼는 매운맛의 조합 덕분에 쫄면을 먹는 경험은 철인 3종 경기에 비견할만하다. 극도로 어렵지만, 극도의 만족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매운맛과 쫄깃함. 그중에 매운맛은 쫄면만의 특징은 아니다. 그러니 가장 큰 매력은 면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면만 놓고 보자면, 쫄면의 매력은 쉽게 끊어지지 않아 자꾸 씹게 하는 쫄깃함에 있다. 『국수는 돈이다』를 쓴 제면 전문가 차욱진 식품공학자는 쫄면의 매력을 “잘근잘근 씹는 어금니의 압박에서 오는 쾌감”이라고 표현한다. 잘근잘근 씹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기분도 좋아진다는 것이다.

쫄면은 ‘압출면’에 속한다. 압출성형으로 만든 면인데 압착면 또는 사출면착면이라고도 한다. 반죽에 물리적인 압력이나 열을 가해 일정한 모양을 가진 출구로 면을 뽑는 방법을 말한다. 면이 나오는 출구, 즉 분창(die) 구멍은 면의 종류에 따라 크기와 모양을 다르게 쓴다. 쫄면은 1.5㎜ 내외의 구멍을 사용하는데, 이 작은 구멍으로 반죽을 밀어내기 위해 높은 압력을 가한다. 차욱진 식품공학자는 “반죽이 익을 정도의 압력이다. 면의 온도 역시 85도 정도로 높다”고 설명한다.

고압과 고온으로 밀어낸 쫄면은 밀도가 높다. 조직이 조밀해 탄력이 있고 쫄깃하다. 그래서 잘 불지도 않는다. 면 속으로 수분이 침투할 공간이 적어서다. 면의 겉과 속의 수분함량이 같아진 순간 우리는 “면이 불었다”고 말한다. 빨리 불어버리는 대표적인 면은 라면이다. 튀겨서 만드는 라면은 스펀지처럼 구멍이 많은 다공성 조직이다. 끓이는 순간부터 물이 흡수되기 시작한다.

1970년대 분식 열풍, 쫄면도 그 때 탄생했다

쫄깃한 쫄면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1970년대 ‘광신제면’이라는 인천의 제면소에서 만들어졌다. 여기까진 확실한데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모호하다. 두 가지 설이 인터넷을 떠돈다. 첫 번째는 냉면을 만들던 제면소 직원이 바쁘게 일하던 중에 분창을 잘못 써서 두껍고 탱탱한 면이 나왔다는 ‘실수설’이다. 두 번째는 실수설을 반박하는 ‘연구설’이다. 독특한 면을 만들기 위해 연구를 거듭했다는 설이다. 냉면과 쫄면의 재료가 다르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든다.

쫄면이 탄생한 1970년대는 밀가루로 만든 분식 열풍이 불었던 때이기도 하다. 1950년대의 한국은 쌀이 부족했고 정부의 주도 아래 혼분식을 적극적으로 장려했다. 밥을 지을 때는 잡곡을 섞거나 밥 대신 분식을 먹으라는 ‘혼분식’이다. 2000년대 초반 남편과 함께 광신제면을 인수한 이영조씨는 “그때는 제면소가 아주 바빴다고 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국수를 샀다고 창업자에게 들었다”고 전했다.

당시 상황은 책 『식탁 위의 한국사』에 자세히 쓰여 있다. “(1955년 이후)미국의 잉여농산물이 들어오면서 밀가루·설탕·면직물의 삼백작업이 한국 경제의 중심축이 되었다. 이와 함께 대한민국의 식품산업도 제분업과 제당업을 통해서 그 기반을 다졌다.” 이어 1963년에 라면, 1969년 인스턴트 칼국수가 출시됐고 1972년부터는 본격적인 분식의 시대가 열렸다. 쌀이 부족한 시대에 쫄면이 탄생한 셈이다.

쫄면을 포함한 국수의 3대 주재료는 곡물가루·물·소금이다. 재료는 간단해도 공정은 간단하지 않다. 차욱진 식품공학자는 “아주 작은 차이가 전혀 다른 면을 만든다”고 강조한다. 분창 구멍은 물론이고 뒤에서 면을 밀어주는 압력을 잘못 조절해도, 압출의 횟수에 따라서도 식감이 달라진다.재료 배합과 반죽도 중요하다. 광신제면에서 특별히 제작한 면으로 국수를 만드는 인천 중구 개항로의 국숫집 ‘개항면’ 한진구 오너셰프 역시“똑같은 밀가루를 사용해도 공정에 따라 식감과 맛의 차이가 크다”고 말한다.

분식집 단골 메뉴 쫄면, 우리집 별미가 될까

“밀가루와 소금의 양, 물과 전분의 배합에 따라 맛이 확연히 다르다. 또 숙성도 중요하고 날씨도 큰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기온의 변화나 면을 만드는 손 온도에 따라서도 맛이 달라진다. 건면보다 생면이 특히 환경에 예민한데 약간의 편차도 용납되지 않는 작업이다.”

‘작은 차이도 용납하지 않는 예민한 작업’ 그렇다면, 라면 제조방식으로 배홍동쫄쫄면을 만들고 있는 농심은 어떻게 맛을 구현했을까. 농심 면개발팀 고재민 선임 연구원은 “라면 제조 방식으로 쫄면의 식감을 표현하기 어려웠다. 수만 번의 시도 끝에 반죽과 면 건조 과정에서 면의 밀도를 보완할 방법을 찾아냈다. 방법을 찾으니, 빠르게 조리 할 수 있는 라면의 장점이 눈에 들어왔다. 집에서도 쉽고 빠르게  즐길 수 있는 농심만의 쫄면을 개발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차욱진 식품공학자는 “아주 작은 차이로 전혀 다른 새로운 면을 만들 수도 있다. 면 뽑는 방법에 따라 국수의 종류는 무한대가 된다. 우연히 만든 면이라 해도 꾸준히 같은 식감을 내도록 제품화하려면 연구는 필수”라고 강조한다. 결국 ‘실수’도 ‘연구’도 모두 맞는 말이 아닐까.

도움말=차욱진 식품공학자(삼립식품(현 SPC)에서 24년 동안 제빵·제면 연구 및 제품을 개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전문위원과 연성대학교 식품과학부 교수를 거쳤다), ‘개항면’ 한진구 오너셰프, 농심 면개발팀 고재민 선임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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