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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채용’ 선관위 투톱, 전격 사퇴…소쿠리 1년만에 또 혼돈

중앙일보

입력

박찬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이 지난 23일 오전 북한의 해킹 시도와 사무총장 자녀 특혜 채용 의혹과 관련해 경기도 과천 중앙선관위를 항의 방문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여당 간사 이만희 의원과 면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찬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이 지난 23일 오전 북한의 해킹 시도와 사무총장 자녀 특혜 채용 의혹과 관련해 경기도 과천 중앙선관위를 항의 방문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여당 간사 이만희 의원과 면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을 받아오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박찬진 사무총장과 송봉섭 사무차장이 25일 동시 사퇴했다.

선관위는 이날 오후 보도자료를 통해 “최근 드러난 고위직 간부들의 자녀 채용 특혜 의혹으로 국민께 큰 실망과 걱정을 끼쳐 드린 점에 대해 그 책임을 깊이 통감한다”며 “박 총장과 송 차장은 그동안 제기돼온 국민적 비판과 지적을 겸허히 수용하고 도의적 책임으로 사퇴한다”고 밝혔다. 자진 사퇴 결정은 이날 오전에 열린 현안 긴급회의에서 최종 결정됐다고 한다.

두 사람의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은 지난 10일 본지 보도로 불거졌다. 박 총장의 딸은 광주 남구청에서 9급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지난해 1월 전남 선관위가 실시한 경력직 공모에 지원해 9급으로 채용됐다. 지난해 1월은 박 총장이 사무차장이던 시절로, 그는 딸의 채용을 승인한 최종 결재권자였다. 송 차장의 딸은 충남 보령시청에서 8급 공무원으로 있다가 2018년 충북 단양 선관위의 경력직 공모에 지원해 8급으로 뽑혔다. 당시 송 차장은 선관위 기획국장을 지낸 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연수 중이었다. 송 차장의 딸은 선관위 직원으로 구성된 면접위원 3명 모두로부터 만점을 받았다.

자녀 채용 특혜 의혹을 받고 있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박찬진 사무총장(오른쪽)과 송봉섭 사무차장. 사진은 지난 23일 국민의힘 의원들이 선관위 청사를 항의 방문했을 당시의 모습. 뉴스1

자녀 채용 특혜 의혹을 받고 있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박찬진 사무총장(오른쪽)과 송봉섭 사무차장. 사진은 지난 23일 국민의힘 의원들이 선관위 청사를 항의 방문했을 당시의 모습. 뉴스1

의혹 보도 후 박 총장과 송 차장은 모두 “아빠 찬스는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럼에도 직전 선관위 사무총장이었던 김세환 전 총장이 아들 채용을 둘러싼 의혹으로 지난해 3월 사퇴한 데 이어 같은 일이 반복돼 파장이 커지자 선관위는 지난 14일 박 총장과 송 차장의 딸만을 대상으로 특별감사에 들어갔다.

그런 중에도 국민의힘과 언론이 다른 고위직이 연루된 의혹을 연이어 찾아내면서 선관위를 둘러싼 여론은 악화일로였다. 신우용 제주 선관위 상임위원 아들, 윤모 전 세종 선관위 상임위원 딸, 김모 경남 선관위 과장 딸이 선관위에 경력직으로 채용된 사실이 새로 드러났다. 이에 국민의힘은 “선관위가 알고 보니 ‘고용세습위원회’였다”(김기현 대표)고 비판했고, 선관위는 지난 24일 감사 대상을 5급 이상 전 직원으로 크게 확대했다. 선관위의 고용 세습 논란으로 사건이 전개되면서 두 사람은 선관위 사무처 최고위직으로서 상당한 부담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박 총장과 송 차장) 개인의 문제가 아닌 집단 전체의 문제”(이철규 국민의힘 사무총장)로 비치게 된 만큼 선관위는 25일 “총장·차장의 사퇴와 상관없이 현재 진행 중인 특별감사 및 자체 전수조사를 통해 전·현직 공무원의 자녀 채용 관련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그 결과에 따라 징계 또는 수사 요청 등 합당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특혜 채용 의혹과 더불어 북한의 해킹 시도에 선관위가 부적절하게 대응했다는 의혹도 박 총장과 송 차장의 사퇴 배경으로 꼽힌다. 선관위는 북한의 해킹 공격을 받고도 국가정보원의 보안 점검 권고를 거부했다는 지난 3일 본지 보도 이후 국정원으로부터 북한 해킹 사실을 제대로 통보받았는지를 두고 여권과 진실공방을 벌였다.

국민의힘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질의, 중앙선관위 과천 청사 항의 방문 등 기회가 될 때마다 “공정과 중립이 생명인 선관위가 보안이 뚫리는 무능함에 더해 뻔뻔한 거짓말까지 일삼는다”(박대출 정책위 의장)고 비판했고, 선관위는 결국 지난 23일 “국정원이 참여하는 보안점검을 수용한다”고 한 발 물러섰다. 선관위는 25일 “국정원 등 외부기관과의 합동 보안 컨설팅 절차도 신속하고 차질없이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대선 당시 확진·격리자 투표용지를 플라스틱 소쿠리에 모아놓은 모습.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지난해 대선 당시 확진·격리자 투표용지를 플라스틱 소쿠리에 모아놓은 모습.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사무처 투톱의 동시 사퇴로 선관위는 소쿠리 투표 논란 1년 만에 또 다시 수장이 사라지는 혼돈의 시간을 맞게 됐다. 선관위는 지난해 3·9 대선 당시 소쿠리 투표함 등 사전투표 부실 관리 논란으로 노정희 전 위원장과 김세환 전 총장이 지난해 5월과 지난해 3월 각각 자진 사퇴하는 등 위기를 겪었다. 흐트러진 조직을 수습하고자 지난해 6월 취임한 박 총장마저도 1년을 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며 사무총장이 두 명 연속 불명예 퇴진하는 기록을 세웠다. 선관위는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총장·차장 후임자를 인선하여 조속히 조직을 안정시키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선관위 최고 수뇌인 노태악 위원장(대법관)의 사퇴도 요구하고 있다. 선관위는 현직 대법관이 위원장을 겸직하는데, 노태악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해 5월 위원장으로 지명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25일 총장·차장의 사퇴 직후 기자들과 만나 “처음 이 사건이 불거졌을 때 선관위원장이 당장 조치를 취했어야 마땅한데, 어디에 숨었는지 일언반구도 없다”며 “그 점에 대해서 선관위원장에게 분명한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윤재옥 원내대표도 “위원장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본다”고 압박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별다른 공식 논평을 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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