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고물가·금리 충격…1분기 실제소득 제자리 걸음, 빈부격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3월 KB국민은행 여의도 본점 창구에서 시민들이 대출 상담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월 KB국민은행 여의도 본점 창구에서 시민들이 대출 상담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직장인 박주연(41)씨의 지난달 월급 명세서에 찍힌 금액은 약 650만원. 하지만 2020년 집을 마련하느라 끌어다 쓴 빚 때문에 실제 쓸 수 있는 돈은 늘 빠듯하다. 신용 대출 150만원, 회사 대출 150만원, 세금과 보험료·통신비·관리비 등 매달 꼬박꼬박 빠져나가는 돈 120만원, 양가 부모님 용돈 20만원 등을 제하면 남는 돈은 매달 200만원 남짓. 이를 4인 가구 생활비로 쓰려니 늘 허덕인다. 점심값부터 택시비, 학원비까지 안 오른 게 없어서다. 특히 대출 이자가 20만원 가까이 올랐다. 김씨는 “월급이 올랐지만, 물가는 더 오른 것 같고, 대출 이자까지 불면서 가계부가 팍팍해졌다”며 “월급이 통장을 스쳐 간다는 게 실감 난다”고 말했다.

박씨처럼 월급은 늘었더라도, 물가까지 고려한 실질 소득은 제자리걸음 한 것으로 나타났다. 치솟은 물가에 대출 이자 부담이 늘어난 영향을 받았다. 빈부 격차는 더 벌어졌다.

25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505만4000원으로 나타났다. 가구당 월평균 소득이 500만원을 넘어선 것은 처음이다. 1년 전보다 4.7% 늘었다. 가계 소득에서 가장 많은 비중(65.8%)을 차지하는 근로소득이 취업자 수 증가, 임금 상승 영향으로 8.6% 상승한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소득에서 물가 상승 영향을 뺀 실질 소득은 1년 전과 같았다. 실질소득은 지난해 3분기에는 2.8%, 4분기에는 1.1% 각각 줄다 올해 1분기 들어 제자리걸음 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실제 쓸 수 있는 돈이 늘지 않은 건 다락같이 오른 물가 때문이다. 지난해 물가 상승률은 5.1%였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은 1998년(7.5%) 이후 24년 만에 최고치다. 2011년 이후 연간 물가 상승 폭은 3%를 넘긴 적이 없었는데, 지난해 큰 폭으로 뛰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막대한 돈이 풀리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치면서다. 물가 상승률은 올해 들어서도 4%대를 유지하다 지난달 3.7%까지 떨어졌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소득 상황은 팍팍한데 지출은 소득 증가 폭을 뛰어넘었다. 1분기 지출은 388만5000원으로 1년 전보다 11.1% 늘었다. 세금과 국민연금 같은 사회보험료, 이자비용 등 자동으로 빠져나가는 ‘비소비지출’이 106만3000원으로 10.2% 증가했다. 소득에서 비소비지출을 뺀 처분가능소득(실제 쓸 수 있는 돈)은 399만1000원이었다.

비소비지출에서 주목할 만한 항목은 이자비용(12만4000원)이다. 1년 전보다 42.8% 폭증해 비소비지출의 11.6%를 차지했다. 통계청이 가계동향조사에 1인 가구를 포함한 2006년 이래 가장 많이 늘었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4월부터 7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한 여파다. 한은은 올해 들어 3차례 금리를 동결했지만, 기준금리는 여전히 3.5%로 높은 수준이다.

한은에 따르면 국내 예금은행의 잔액 기준 대출금리는 지난 3월 기준 5.01%다. 1년 전 대출금리(3.25%)와 비교해 1.76%포인트 올랐다. 2013년 3월(5.01%) 이후 10년 만에 가장 높다.

지출 항목별로는 방역 완화에 따라 오락·문화(34.9%) 분야 지출이 가장 많이 늘었다. 물가 인상 여파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택시비·항공료 등 인상에 따른 교통(21.6%), 외식 물가 상승을 반영한 음식·숙박(21.1%), 전기·가스요금 등 냉·난방비를 포함한 주거·수도·광열(11.5%) 지출이 많이 늘었다.

소득통계 권위자인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소득이 오른 만큼 물가도 올라 빛이 바랬다”며 “물가를 잡지 못하면 소득이 늘어도 체감할 수 없는 ‘불황형 흑자’의 그늘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처분가능소득에서 소비지출을 뺀 흑자액은 가구당 월평균 116만9000원으로 1년 전보다 12.1% 감소했다. 처분가능소득이 지출보다 적은 '적자 가구' 비율은 26.7%로 같은 기간 3.2%포인트 늘었다.

1분위(소득 하위 20%) 가구 월평균 소득은 107만6000원으로 나타났다. 1년 전보다 3.2% 늘었다. 5분위(소득 상위 20%) 가구 월평균 소득은 1148만3000원으로 같은 기간 6.0% 늘었다. 빈부 격차 수준을 나타내는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6.45배로 지난해 1분기(6.20배) 대비 악화했다.

소득 수준별 흑자 여부를 따져보면 빈부 격차가 명확해진다. 1분위 가구는 월평균 46만1000원 적자를 냈다. 1년 전보다 적자가 47.2% 늘었다. 2006년 이후 적자 폭이 가장 컸다. 반면 5분위 가구는 월평균 374만4000원 흑자를 냈다. 같은 기간 흑자 폭이 9.0% 감소하는 데 그쳤다.

정원 기획재정부 복지경제과장은 “고용 호조로 소득 지표가 개선됐지만, 고물가와 경기 둔화 여파로 실질 소득은 늘지 않았다”며 “물가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취약계층·소상공인 부담을 완화하는 데 집중해 소득 증가가 분배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