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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깨운 사이버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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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변재선 세종대 정보보호학과 초빙교수·전 국군사이버사령관

변재선 세종대 정보보호학과 초빙교수·전 국군사이버사령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이 발발한 지 15개월이 지났다. 개전 초 러시아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이미 수도 키이우를 탈출했다”는 가짜뉴스를 유포했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각료들과 함께 키이우 시내를 활보하는 동영상을 트위터에 공유해 가짜뉴스를 불식시켰다. SNS를 통해 국민의 저항의식을 고취하고 국제사회의 자발적 지지를 끌어냈다. 허위 조작정보를 이용한 러시아의 공격을 단숨에 무력화시키는 결정적 변곡점을 만들었다.

디지털 대전환(DX) 시대를 맞으면서 전 세계 모든 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전쟁인 ‘하이브리드 전쟁(Hybrid Warfare)’을 수행 중이다. 군사적 수단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비군사적인 수단까지 동원한다. 가짜 뉴스·심리전·여론조작·해킹 등이 주로 사이버공간에서 이뤄지고, 사이버전 기술이 활용된다는 특징이 있다

러시아, 개전 초 가짜뉴스 유포
북한의 해킹 위협 계속 높아져
한국 민·관 정보조직 강화해야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지난 3월 초 미국은 중국의 동영상 플랫폼인 틱톡이 수집한 개인정보와 행태정보를 중국 정부 당국에 제공할 수도 있고, 대만을 침공할 경우 이런 정보를 여론전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미국 정부 기기에서 사용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북한은 대남 적화통일 전략을 완성하기 위해 고도화된 사이버 기술 수단을 통해 대한민국의 물리·정보·인식 공간을 공격하고 있다. 예를 들면 북한이 가상화폐 해킹으로 지난해 1년 동안 7억 달러를 탈취했다. 이 자금을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사용했고, ‘워터링 홀(watering hole)’ 수법으로 한국 정부와 공공기관, 언론사와 방산업체를 포함한 61개 기관과 기업의 컴퓨터 207대를 해킹한 것으로 보고됐다.

한국은 사이버전에 대응해 민간 영역을 담당하는 한국인터넷진흥원을 2009년 창설했고, 2010년에는 사이버사령부를 창설해 국방 영역을 담당하도록 했다. 정부는 2013년 ‘국가 사이버안보 종합대책’을 발표해 선진 사이버안보 강국을 실현하기 위한 4대 전략목표를 발표했다. 그러나 2012년 정부의 여러 기관이 개입한 ‘댓글 사건’으로 정치적 홍역을 치른 이후 정책적 지원과 발전이 답보 상태에 빠졌다. 지난 정부에서는 사이버심리전 조직을 폐지했는데, 이러한 정책 오류의 피해자는 결국 국민과 국가가 될 것이다.

지난 3월 22일 윤석열 대통령은 사이버작전사령부를 현직 국가원수로는 최초로 방문했다. 그 자리에서 사이버작전부대 역할의 중요성과 선제적·능동적 대응을 강조했다. 지난달 26일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전략적 사이버 안보 협력을 통한 ‘진화하는 사이버안보 동맹’을 천명했다.

윤 대통령의 사이버안보 리더십에 더해 사이버안보 분야 발전을 위해 몇 가지를 제안하려고 한다. 첫째, 정부 및 민간 각 조직의 최고 리더들은 사이버안보에 대한 인식을 높여야 한다. 조직의 임무 수행에 필요한 사이버 기술의 활용, 조직의 정보체계와 정보보호체계의 최신화, 정보보호 조직의 편성 및 능력의 보강, 조직 구성원의 보안규정 준수, 정보보호 예산 증액 등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둘째, 국가 사이버안보 거버넌스의 효율화가 필요하다. 효율적인 사이버안보 컨트롤타워 운용, 사이버심리전 조직 정비, 사이버안보 기본법 제정, 통합방위법에 사이버안보 반영 등 법과 제도를 조속히 정비해야 한다.

셋째, 국가 화이트해커 생태계 육성이 시급하다. 각 기관은 능력 있는 화이트해커 또는 보안업체를 활용하는 민·관 협력정책과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사이버안보 위협 세력보다 개념 우위의 사이버전 능력을 개발하는 분야에 민간 분야를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넷째, 사이버안보를 위한 범 글로벌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국경 없이 이뤄지는 사이버전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사이버 우방국과 국제 공조를 최상위 차원에서 강화하고 더욱 긴밀하게 대응해야 한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함께 사이버 위협이 국가안보의 제1 위협이라는 국민적 인식과 공감대를 확산해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관련된 법과 제도의 정비, 재정적 뒷받침 등을 결단하고 실행에 옮기는 길이 사이버 영토를 수호하고 사이버전에서 온전하게 승리하는 길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변재선 세종대 정보보호학과 초빙교수·전 국군사이버사령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