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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주정완 논설위원이 간다

월세 1만원 '청년 아파트'…경쟁률 10대 1, 화순군의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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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주정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지역소멸 위기, 대안은 없나

주정완 논설위원

주정완 논설위원

하루 330원이면 방 두 개짜리 아파트에 살 수 있다. 거실·주방·욕실이 딸린 공급면적 68㎡(약 20.6평)의 보금자리다.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는 아니지만 초등학교가 집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있다. 단지 내부와 상가에는 어린이집과 음악·태권도학원 등도 있다. 단지 옆 공공문화센터에선 수영장을 포함한 체육시설과 도서관·악기연습실 등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대형 식자재마트와 대학병원, 주요 관공서도 단지에서 가깝다.

전남 화순군이 올해 처음 선보인 ‘만원 임대주택’과 주변 생활 여건이다. 청년과 신혼부부 등을 대상으로 월 1만원(관리비 별도)에 임대 아파트를 제공한다. 입주자로선 커피 두세 잔 값에 아파트 월세를 해결하는 셈이다. 2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면서 최장 6년간 거주할 수 있다.

전세 사기 등으로 임대 보증금을 떼일까 봐 걱정할 필요도 없다. 화순군이 보증금 전액을 책임지기 때문이다. 입주자에겐 월세를 제외한 임대 보증금 부담이 전혀 없다.  화순군민이 아니라도 연령·소득요건 등만 맞으면 전국 어디서나 신청할 수 있다. 대신 입주자로 뽑히면 전입신고를 하고 실거주하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정부가 꼽은 인구감소지 89곳
초고령사회 진입 화순도 포함

월세 만원에 20평 아파트 제공
경쟁률 10대 1, 외지인 더 많아

일자리 찾아주며 정착 도와줘
학교·병원 등 육아지원에 힘써

“가만히 있으면 지역소멸 못 피해”

전남 화순군 화순읍 부영 6차 아파트 단지(전체 1485가구)의 전경. 화순군은 올해 100가구를 따로 확보해 ‘만원 임대주택’으로 공급할 계획이다. [사진 화순군]

전남 화순군 화순읍 부영 6차 아파트 단지(전체 1485가구)의 전경. 화순군은 올해 100가구를 따로 확보해 ‘만원 임대주택’으로 공급할 계획이다. [사진 화순군]

만원 임대주택은 구복규 화순군수의 야심작이다. 파격적인 인센티브로 청년 인구의 유입과 출산을 유도하지 않으면 지역 전체가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함이 깔렸다. 지난 10일 화순군청에서 만난 그는 “과거 화순군은 인구 10만 명을 넘볼 정도로 활력이 넘쳤다. 이제는 지방소멸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냥 임대주택을 제공하면 공직선거법 위반이기 때문에 1만원을 타이틀로 붙였다”고 소개했다.

인구 6만2000명의 화순군은 이미 오래전에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상태다. 유엔이 분류한 초고령사회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걸 가리킨다. 지난 3월 기준으로 화순군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28.8%를 기록했다. 반면 한창 일할 나이로 꼽히는 18~49세 인구 비율은 31.4%에 그쳤다.

4년간 총 400가구 공급 계획

구복규 화순군수

구복규 화순군수

이런 추세라면 머지않아 화순군 노인 인구가 청년 인구보다 많아지는 역전 현상이 발생할 전망이다. 지난해 화순군에서 사망자는 785명으로 출생아(178명)의 4.4배였다. 대도시 등으로 유출되는 인구를 제외해도 지역 인구 감소가 심각한 상황이다. 구 군수는 “화순군의 인구 통계를 보면 도저히 지역 발전성을 기대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전했다.

화순군은 올해부터 4년간 해마다 100가구씩, 총 400가구를 만원 임대주택으로 공급할 방침이다. 1차 공급 물량 50가구에 대해선 지난 4일까지 신청을 받았다. 지난 18일에는 서류 심사 대상자 명단을 공개했다. 최종 신청자는 506명으로 10.1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신청 대상 연령은 49세까지로 넓혔지만 실제 신청자 중에선 34세 이하의 비율(83%, 421명)이 압도적이었다.

지역별로는 화순군(42%)보다 타지역(58%) 신청자가 더 많았다. 안삼섭 화순군 홍보팀장은 “광주광역시나 전남 다른 시·군은 물론 서울·경기도 등에서도 신청자가 있었다”고 전했다. 화순군은 서류 심사를 거쳐 다음 달 초 입주 대상자를 발표한다. 입주는 오는 7월 예정이다. 어린 자녀가 있거나 임신 중인 부부, 결혼 7년 이내 신혼부부에게 입주 우선권을 준다. 올해 하반기에는 2차 물량 50가구를 추가로 공급할 계획이다.

지역소멸의 위기감은 화순군만의 문제가 아니다. 행정안전부는 2021년 10월 전국 시·군·구 89곳을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했다. 수도권과 광역시를 제외하면 인구감소 위기를 겪는 지역이 그렇지 않은 곳보다 훨씬 많았다. 전남(22개 시·군)에선 화순군을 비롯한 16곳을 인구감소지역으로 분류했다. 민간 전문가나 연구기관이 아닌 정부가 법률(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 따라 공식적으로 지역별 인구위기 상황을 판단한 건 처음이었다.

2014년 ‘마스다 보고서’의 경고

한국보다 인구 고령화에서 앞선 일본은 2014년 지방소멸을 경고하는 보고서로 사회적 충격을 줬다. 마스다 히로야(增田寬也) 전 총무상(한국의 행안부 장관에 해당)이 이끄는 일본창성회의가 발표한 ‘마스다 보고서’다. 한국으로 치면 읍·면·동에 해당하는 기초 지방자치단체 896곳이 2040년 소멸 위험에 직면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일본 기초 지자체의 절반가량(49.8%)이 암울한 미래를 앞두고 있다는 얘기였다. 마스다 전 총무상은 보고서를 소개하면서 “인구 감소는 멈출 수 없다. 그러나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인구가 감소하는 건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국내에서도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지방소멸 위험에 대한 경고가 이어졌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일본식 계산법을 활용한 지방소멸위험지수를 개발했다. 가임기 여성(20~39세) 인구수를 노인(65세 이상) 인구수로 나눠서 계산한다.

예컨대 해당 지역의 가임기 여성 인구가 100명이고 노인이 200명이라면 이 지수는 0.5가 된다. 고용정보원은 이 지수가 0.5보다 낮으면 소멸위험지역으로 구분한다. 지난 2월 기준으로 전국 시·군·구의 절반 이상(52%)인 118곳이 소멸위험지역에 속했다. 2016년(84곳)과 비교하면 7년 만에 34곳이 늘어났다.

영·호남서 6년간 66만 명 유출

인구 감소지역 89곳 지정

인구 감소지역 89곳 지정

산업연구원은 지난해 독자적으로 만든 ‘K(한국형) 지방소멸지수’를 제시했다. 일자리 창출 등 경제적 요인으로 인한 지역 인구 유출입까지 고려한 지수다. 이렇게 분석한 소멸위기지역은 59곳으로 전국 시·군·구의 26%를 차지했다. 허문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수도권으로 향하는 지방인구의 행렬이 멈추지 않고 있으며 특히 청년들의 수도권 쏠림 현상은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수도권으로 인구 집중이 심해진 건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을 고비로 수도권에선 전입 인구가 전출 인구보다 많은 순유입으로 돌아섰다.

지난 6년간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순유입한 인구는 34만 명에 이른다. 같은 기간 호남권에선 12만 명, 영남권에선 54만 명이 빠져나갔다(순유출).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이후 본격화된 수도권 인구 집중이 약 50년 만에 멈췄다가 다시 불이 붙은 모습이다.

원래 살던 시·도에서 다른 시·도로 이동한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꼽은 원인은 일자리(35.6%)였다. 통계청이 지난해 시·도간 이동자 217만 명의 전입 사유를 분석한 결과다. 대부분의 지자체가 청년 인구 유입과 일자리 창출을 정책 목표로 제시하지만 구체적 성과를 내는 곳은 많지 않다.

24시간 운영 어린이집도 추진

화순군의 실험이 주목되는 건 이 지점이다. 청년에게 단순히 월세가 싼 임대주택을 제공하는 것만으로 끝내지 않는다. 일자리를 포함한 생활여건과 출산·보육여건까지 책임지겠다는 구상이다.

구 군수는 “청년이 지역 기업에서 일하길 원하면 취업을 알선한다. 농사를 짓고 싶다고 하면 하우스 시설자금을 지원한다. 창업을 원하면 푸드트럭 제작비도 보조해 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루 24시간 운영하는 어린이집을 선정하고 예산을 지원하는 걸 추진 중이다. 신혼부부가 아이를 낳으면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취지는 좋지만 돈이 너무 많이 드는 건 아닐까. 화순군은 그렇지 않다고 설명한다. 민간 사업자(부영주택)에게서 전세로 집을 빌린 뒤 청년에게 월세로 재임대하는 방식이다. 올해 공급 물량 100가구의 전세 보증금은 46억원이다. 구 군수는 “이건 없어지는 돈이 아니다. 특별회계로 관리해 돈은 그대로 있고 이자만 화순군이 부담한다”고 말했다. 화순군은 지난달 보건복지부와 복지제도 신설에 대한 협의를 마쳤다고 밝혔다.

임대주택도 도심에 있어야 효과적

임대주택의 입지도 청년 입주자에겐 중요한 문제다. 지난 10일 화순군을 방문한 신민호 전남도의회 기획행정위원장은 “정부가 도심에는 땅이 없으니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에 임대주택을 짓는다. 그러면 청년들이 안 들어가기 때문에 악순환의 연속”이라고 지적했다. 구 군수도 “우리는 화순읍 중심지에 있다. 외곽에는 임대주택을 지어봐야 소용이 없다”고 대답했다.

화순군은 기존에 생활권이 갖춰진 민간임대 아파트 단지에서 일부 물량을 공공임대로 확보했다. 그만큼 입지 조건이 유리하다고 설명한다. 다만 준공 25년의 구축 아파트라는 단점은 있다. 구 군수는 “앞으로 신축 임대아파트도 공급할 수 있도록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과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