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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서 반도체 10% 증산 허용해달라" 한국 정부, 美에 요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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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 UPI=연합뉴스

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 UPI=연합뉴스

한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의 중국 내 반도체 공장의 생산능력을 확장할 수 있는 범위를 두 배 늘려달라고 미 정부에 요청했다. 앞서 미 정부는 정부 보조금을 받는 조건으로 ‘우려 국가’에서 ‘첨단 반도체’는 10년간 5% 이상, ‘범용 반도체’는 10% 이상 생산량을 늘릴 경우 보조금을 환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23일(현지시간) 미국 정부 관보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미 상무부가 지난 3월 공개한 반도체지원법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 세부규정안에 대한 의견서를 통해 “가드레일 조항이 미국에 투자하는 기업에 불합리한 부담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시행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런 맥락에서 한국은 미 정부의 규정안에 있는 ‘실질적인 확장’(material expansion)과 ‘범용 반도체’(legacy semiconductor), 기타 주요 용어에 대한 정의를 재검토해 달라고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또 중국 등 ‘우려 국가’와 공동 연구나 기술 라이선싱(특허 사용계약)을 하면 보조금을 돌려줘야 하는 ‘기술 환수’(technology claw back) 조항에 따른 활동 제한 범위도 보다 명확히 해달라고 요청했다.

미 상무부는 지난 3월 21일 미국에 투자하는 반도체 기업이 미 정부 보조금을 받을 경우 향후 10년 동안 중국 등 우려 국가에서 반도체 생산능력을 ‘실질적으로 확장’하는 경우 보조금 전액을 반환하는 내용의 가드레일 조항을 공개했다.

한국 정부는 이번 의견서에서 생산능력 확장 범위와 범용 반도체 등의 정의 재검토에 관한 구체적인 요청 사항을 적시하진 않았다. 다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 정부 보조금을 받더라도 중국에서 반도체 증산 범위를 더 늘릴 수 있게 해달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한국 정부는 첨단 반도체의 실질적인 확장 범위를 기존 5%에서 10%로 늘려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또 범용 반도체를 ▶로직 반도체는 28나노미터(㎚·10억 분의 1m) ▶D램은 18㎚ ▶낸드플래시는 128단으로 정의한 미 상무부의 기준도 완화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 상무부는 반도체법 가드레일 세부 규정 발표 후 “악의적 주체들이 미국과 동맹, 파트너에게 사용할 수 있는 첨단 기술을 확보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취지를 밝혔다. 당시 상무부 고위 당국자는 워싱턴DC에서 가진 한국·일본·대만 특파원 간담회에서 가드레일 조항을 두고 “한·미 양국의 공통 이익에 부응한다고 믿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중국에서 생산능력 확장 길이 막힌 국내 반도체 업계의 난감한 입장을 고려해 증산 허용을 미국에 요청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 정부가 미국 상무부에 반도체지원법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 세부 규정안에 대해 보낸 의견서. 23일(현지시간) 미 정부 관보를 통해 공개된 해당 의견서에서 한국 정부는 “반도체법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이 미국에 투자하는 기업들에게 불합리한 부담을 주는 방식으로 시행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사진 미국 정부 관보 캡처

한국 정부가 미국 상무부에 반도체지원법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 세부 규정안에 대해 보낸 의견서. 23일(현지시간) 미 정부 관보를 통해 공개된 해당 의견서에서 한국 정부는 “반도체법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이 미국에 투자하는 기업들에게 불합리한 부담을 주는 방식으로 시행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사진 미국 정부 관보 캡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미 정부에 의견서를 냈다. 삼성전자는 의견서에 “요건의 확실성과 예측 가능성, 관리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확장 환수’에 대한 정의가 명확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SK하이닉스는 “미 정부가 반도체법에 따른 인센티브 프로그램을 수립하고 반도체법에 포함된 가드레일 규정을 시행함에 따라 향후 관여와 논의를 기대하고 있다”고 요구했다.

이와 함께 한국반도체산업협회(KSIA)도 의견서를 제출했다. 안기현 KSIA 전무는 “미국 기업과 공동 연구나 기술 라이선스를 할 때 특허 방어를 위한 활동에 불이익 없어야 하며, 해외 시설의 정상적인 운영 보장, 정보 보호와 초과 이익 공유 때 기업과 충분히 대화해달라는 내용 등을 (의견서에) 담았다”고 말했다. ‘외국 우려 단체’(foreign entities of concern)의 정의가 너무 광범위하고 모호하기 때문에 수출통제 명단에 포함된 기업 등으로 좁혀야 한다고도 했다. 미 상무부는 지난 22일 의견 접수를 마감했고, 내용 검토를 거쳐 연내에 확정된 규정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최근 중국 정부가 미국 마이크론의 보안 이슈를 문제 삼아 제품 구매 중단 조처를 내리는 등 반격을 가하면서, 미국 정부가 한국 측의 요구를 얼마나 수용할지에 대해서는 낙관적이지만은 않은 분위기다. 실제로 미국 내에서는 한국 기업을 겨냥해 미·중 갈등 와중에 미국 편에 서야 한다는 노골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날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마이크 갤러거 미 하원 미중전략경쟁특위 위원장은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에 대해 무역규제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미 상무부는 중국에서 활동하는 외국 반도체 기업에 대한 미국의 수출 허가가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채우는 데 사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최근 중국의 경제적 강압을 경험한 동맹국인 한국도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마이크 갤러거 미국 하원 미ㆍ중전략경쟁특위 위원장이 지난 4월 19일(현지시간) 미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미국과 중국 공산당 간 전략경쟁에 관한 하원 청문회에서 전쟁 게임 시뮬레이션인 ‘대만 테이블톱 연습(TTX)’에 대한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마이크 갤러거 미국 하원 미ㆍ중전략경쟁특위 위원장이 지난 4월 19일(현지시간) 미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미국과 중국 공산당 간 전략경쟁에 관한 하원 청문회에서 전쟁 게임 시뮬레이션인 ‘대만 테이블톱 연습(TTX)’에 대한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앞서 외신 등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 같은 업체들로 물량을 대체해 자국 산업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기에 중국은 ‘마이크론 구매 중단’에 따른 피해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에 따라 한국 등 외국 기업이 미국 제재에 따른 반사이익을 누리지 못하도록 엄포를 놓은 것으로 해석된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미·중 갈등이 계속 고조돼 왔기에 이는 상수로 둬야 하는 형편”이라며 “이런 가운데 우리 정부와 업계가 조금씩 유리한 구도를 찾아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중국 외교부는 미국의 보복성 제재 목소리에 “결연히 반대한다”는 경고성 메시지를 발표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4일 정례 브리핑에서 CXMT에 대해 제재해야 한다는 미국 의회발 목소리에 대해 “미국 측이 국가 안보 개념을 확장하고, 국가 역량을 남용해 중국 기업을 부당하게 억압하는 것을 결연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중국은 앞으로 계속 필요한 조치를 취해 중국 기업과 기관의 합법적인 권익을 결연히 수호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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