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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경제관료' 강경식 "韓펀더멘털 괜찮다? 다시 들여다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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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식 전 경제부총리가 지난 18일 서울 강서구 국가경영전략연구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가 지난 18일 서울 강서구 국가경영전략연구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재무부·재정경제원(현 기획재정부) 장관을 역임해 ‘영원한 경제관료’로 불리는 강경식(87) 전 부총리는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이 괜찮다’는 진단을 다시 들여다보라”고 경고했다. 지난 18일 중앙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다. 그는 25일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 호텔에서 열리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립 60주년 기념 국제컨퍼런스’ 기조 발제에 앞서 한국 경제에 대해 거침없는 진단을 쏟아냈다.

그는 역대 정부가 “펀더멘털은 괜찮다” 같은 레토릭(수사)을 반복하는 상황을 두고 ‘재정 중독’을 이유로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강 전 부총리는 “펀더멘털의 기본은 재정”이라며 “최근 문재인 정부 시절 탈원전·소득주도성장 같은 포퓰리즘 정책을 거치며 재정 건전성이 급속도로 무너졌다.(지난해 기준 국가채무 비율 49.6%). 그런데도 펀더멘털이 괜찮다고 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그는 “일단 나랏빚을 내기 시작하면 ‘국가채무 비율 20%는 괜찮고, 30%는 안 된다’는 식으로 선을 긋기 어렵다. 적자 예산 편성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산 편성은 불만의 공평 분배”란 평소 소신도 드러냈다. 모자라는 예산을 쪼개 쓰려면 모두를 만족시키기 어렵다는 점부터 인정해야 하는데 불만을 최소화하는 데 집중해선 안 된다고 우려했다.

서슬 퍼런 박정희 정권 시절 경제기획원(EPB) 예산국장으로 국무회의에 참석했을 때다. 예산안 보고를 마쳤는데 법무부 장관이 ‘교도관 수당 예산을 늘려달라’고 그에게 요구했다. 단박에 ‘안 된다. 교도관 수당을 올리면 경찰관, 소방관에 나중엔 등대지기 수당까지 올려줘야 한다’며 거절했다. 그는 "최근 당의 힘이 세졌다지만, 나라 곳간 지기(경제 관료)라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예산 요구에 안면 몰수하고 ‘노(No)’ 할 수 있는 스피릿(기백)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고물가로 시름하는 서민 경제를 두고선 “물가는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다. 물가 잡기는 국가가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물가국장으로 오래 일한 관료 출신치곤 의외의 답변이다. 기업은 절대 손해 보지 않고 물건을 파는 만큼, 정부가 틀어막아도 결국 부작용만 생긴다는 것이다. 그는 “과잣값을 잡으려고 했더니 양을 줄이고, 소줏값을 잡으려고 했더니 알코올 도수를 내리더라. 가격은 그대로 두고 품질을 낮춘 것”이라며 “물가가 3%대로 안정됐다는 통계는 실제 국민이 체감하는 물가가 아니라 ‘물가지수’만 3%대로 맞춘 것일 수 있다. 정부 물가 잡기는 거기까지가 한계”라고 꼬집었다.

물가 잡기 말고도 2010년 쓴 책『국가가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에서 언급한 것처럼 “장래 먹을거리 찾는 일, 경기 부양책, 재정으로 일자리 창출하는 것 3가지는 국가가 해선 안 될 일”이라고 말했다. “장래 먹을거리는 기업이 더 잘 찾는다. 정부는 기업이 잘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고 규제를 풀어주면 된다”며 “억지 경기 부양은 뒷북치기 십상이고 재정을 들여 만든 일자리 대책도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노동·연금·교육 개혁과 저출산 대책 등 산적한 장기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과거 경제기획원의 순기능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견된 단기 과제 해결도 중요하지만 장기 청사진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는 측면에서다. 그는 “경제기획원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처럼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래 목표를 다듬는 부처였는데 지금 경제부처는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매몰됐다”며 “경제 관료라면 인기는 없지만, 꼭 필요해 누군가 해야만 하는 장기 과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80년대 재무부 장관 시절 간부 회의를 주재하는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뒷줄 가운데). 중앙DB.

80년대 재무부 장관 시절 간부 회의를 주재하는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뒷줄 가운데). 중앙DB.

강 전 부총리는 5공화국 때 승승장구하며 재무부 장관(82~83년), 전두환 전 대통령 비서실장(83~85년), 12·14·15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하지만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전 경제부총리로 각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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