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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정치특집 | ‘야당 안의 야당’ 이원욱 의원의 민주당 구하기

중앙일보

입력

“‘정치 훌리건’과 결별하고 다양한 목소리 담자”

박광온 원내대표 등 비명계 지도부 입성, 팬덤정치 경계감 작동한 것
민주당, 내로남불 단절하고 공정 가치 되찾아야 총선·대선 활로 생겨

이원욱 의원이 잔잔한 어조로 말하는 내용은 다수 민주당 의원들이 차마 꺼내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좌표로 찍혀도 할 말은 하는 것이야말로 “당을 향한 보은”이라고 그는 믿는 듯했다.

이원욱 의원이 잔잔한 어조로 말하는 내용은 다수 민주당 의원들이 차마 꺼내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좌표로 찍혀도 할 말은 하는 것이야말로 “당을 향한 보은”이라고 그는 믿는 듯했다.

거액 가상화폐(코인) 투자 논란에 휩싸인 김남국 의원이 5월 14일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고개를 숙이며 “진심으로 사과”했지만, 정작 일부 지지자들은 온라인상에서 ‘김남국 응원 챌린지’를 펼치며 후원금을 보내고 있다. ‘내 편이면 무슨 짓을 해도 용서되는’ 팬덤정치는 언젠가부터 한국 정치 혹은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 키워드가 됐다. 팬덤정치는 포퓰리즘과 극단주의로 치닫는 첩경이지만, 정치인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편한 길일 수도 있다.

김남국 의원의 코인 의혹이 불거진 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민주당 이원욱(60) 의원에게선 “다양한 목소리”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이 의원은 “분열과 갈등을 양산하는 것이 아니라 치유하는 것이 정치”라고 말했다. 김 의원 탈당에 대해서도 그는 “대국민 책임을 피해가는 꼼수 탈당”이라고 소신을 밝혔다. 낮지만 단호한 음성으로 1시간 이상 토로한 비주류 중진 의원의 고언(苦言)은 고스란히 민주당 회생의 솔루션처럼 들렸다. 관건은 민주당 주류 정치인들과 팬덤층이 귀 기울일 수 있는지 여부일 터다.

윤석열 정부가 1년을 넘겼다. 뒤집어 말하면 민주당이 야당이 된 지 1년이 지났다는 뜻이다.
“국회에서 (진영) 갈등이 워낙 심하다 보니 국가적 어젠다를 해결하지 못하고, 국민은 절망에 빠지고 있다. 여당 시절에도 (내가) 대통령 측근 그룹은 아니었지만, 야당이 되니 (의원으로서) 던지는 메시지가 더 공허해진다.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고민이 깊다.”
민주당 의원들도 정말 위기감을 갖는 듯하다. 4월 말 원내 대표 선거에서 비명계인 박광온 의원이 선출됐다. 당초 출마가 예상됐던 이 의원은 왜 뜻을 접었나?
“작년 8월 전당대회는 거의 이재명계 일색이었다. 너무 편향된 목소리만 나오는 것 아니냐는 문제의식에서 출마를 고려했다. 당에는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하고, 집단지성이 발휘돼야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정책이 나올 수 있다. 박광온 의원이 1차 투표에서 과반을 얻어 끝낼 수 있었던 것, (송기헌 원내 수석부대표 등 비명계 위주로 짜여진) 현 지도부, 송갑석 최고위원 지명 등에는 그런 성격이 있다고 본다. 내가 (후보를) 양보한 주된 이유로는 비명계에서 단일대오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광온 의원과 사전교감은 없었나?
“없었다. (출마) 준비까지 다 해놨지만 보좌관들과 마지막 논의를 한 뒤 결정했다.”
민주당 3선 의원으로서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당과 지금의 당은 어떤 점에서 다르다고 보나?
“김대중 대통령은 당선되고 나서 정치보복 없이 용서와 화해를 했다. 핵심 경제관료 직에 보수 인사를 앉혔다. (통합의 정치 덕분에) IMF 경제위기에서 국민이 금 모으기 운동 등으로 힘을 합칠 수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비록 성공하진 못했지만, 대연정을 추진했다. 그것이 수용되지 않았고, 이후 진영정치가 고착화됐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원내대표 불출마한 사연

2023년 4월 박광온 민주당 의원이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비명계가 단일대오를 형성한 결과였다. / 사진:연합뉴스

2023년 4월 박광온 민주당 의원이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비명계가 단일대오를 형성한 결과였다. /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 체제를 거치며 갈등은 심화했다.
“(이 대표 체제에 한하면) 윤석열 대통령 체제의 반작용이다. 칼자루는 대통령이 갖고 있는 것이니까. 아무리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할지라도 야당 대표인데, 대통령이 한 번도 안 만났다는 것은 진영정치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아무리 대통령 권력이 강해도 100%는 아니지 않나? 민주당은 국회 권력의 상당수를 점하고 있는데, 당 대표를 그렇게 무시하는 것이 말이 되나?”
역설적이게도 이렇게 대립이 극렬할수록 이 대표나 친명계 의원들은 핵심 지지층을 결속시킬 수 있다.
“정부·여당이 정치 탄압을 가하니까 야당은 반대로 일관할 수밖에 없다. 다만 그 와중에 ‘내로남불’이 생기는 것이 문제다. 우리가 여당 때 추진하려던 정책들을 야당이 되니까 안 하려고 하는 태도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 (내로남불에 대해) 비판 목소리가 나오면 ‘내부총질’ 같은 용어를 써가며 매도하는 정치문화는 굉장히 아쉬운 부분이다.”
이런 정치 지형에서 팬덤정치는 번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큰일이다.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트럼프 전 대통령을 보라. 대한민국 헌법은 민주공화국을 명시했다. 공화국을 민주적으로 운영하라는 의미다. 하지만 강성 팬덤으로 인해 분열이 심해지고 있다. 나는 강성 팬덤을 ‘정치 훌리건’이라고 표현한다. 이들에게 잡혀 있으면 집단지성이 사라진다. 당이 잘못 가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도 아무 이야기도 못 한다. 점점 하나의 목소리가 지배하는 당이 된다. 지난 대선 패배의 커다란 요인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고 나는 본다. 이를테면 ‘조국 사태’라든가 이런 문제에 슬기롭게 대처했다면, 우리가 25만 표(0.73%p) 차이는 극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0.73%p 차이 극복해야 정권 탈환”

이원욱(오른쪽) 의원이 ‘민주당의 길’ 토론회를 전격 방문한 이재명(왼쪽) 민주당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원욱(오른쪽) 의원이 ‘민주당의 길’ 토론회를 전격 방문한 이재명(왼쪽) 민주당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가뜩이나 남성 청년들의 민주당 불신이 팽배한데 김남국 의원 사태로 더 악화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공정의 가치를 윤석열 대통령에게 뺏겼다. 대선 패배 이후 스스로 반성했다. ‘3선 국회의원을 하고도, 아니 1997년부터 당 생활을 그렇게 오래 하고도 당이 잘못된 방향을 잡고 가는데 아무런 이야기를 못 했구나, 내가 비겁했구나’라는 성찰을 했다. ‘강성 팬덤 정치 훌리건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면 앞으로의 총선과 대선에서 우리가 이길 수 있겠는가’라는 고민 속에서 용기 내서 떠들어 가기로 판단했다.”
소위 ‘개딸’로 불리는 이재명 팬덤은 ‘국민의힘에 대항하기 위해 이재명만 한 구심점이 있느냐’는 프레임을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다. 현실 정치에서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 당장 (이 대표한테) 물러나라고 하는 것도 아니지 않나.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든 안 들든 당 대표로서의 존재를 부정하진 않는다. 다만 당이 국민의 공감을 얻고 가기 위해선 팬덤정치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의원들의 말문이 열려야 한다. 내가 이 대표에 대해 비판한 지점이 바로 여기였다. 당이 정치 훌리건을 단절해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 하고 있는 것이다.”
박용진, 이상민, 조응천 등 뜻있는 비명계 의원들과 교감을 나누고는 있나?
“물론이다. 이 밖에도 어떤 의원은 나한테 ‘들어보라’며 (당이 처한 상황에 대해) 하소연을 하더라. 나보고 이 말을 (당 지도부나 외부에) 전달해달라는데 이러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 의원으로부터 이재명 대표가 직접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의원이 추진한 ‘민주당의 길’도 의미 있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게 좀 이상해졌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 끝나고 김종민 의원과 내가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그렇게 ‘반성과 혁신’ 모임을 만들었고, 의원 21명 정도가 참여했다. 이걸 끝낸 뒤 ‘시즌 2’로 확대 개편해 국민에게 신뢰받을 방향을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민주당의 길’을 추진한 것이다. 사실 친명계 의원들도 꽤 많이 합류하기로 했었는데, 언론에서 ‘비명계 모임’으로 써버렸다(쓴웃음). 그렇게 되니까 비전 모임이라고 생각해 ‘같이 해보자’고 했던 의원들도 위축됐다.”
내년 4월에 총선이 있다. 일부 민주당 극성 지지층으로부터 소위 좌표를 찍혔는데, 현실 정치인으로서 공천 걱정은 안 되나?
“국회의원을 세 번이나 하는 혜택을 받았으면 이제 당에 돌려줘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공천은 받는 게 아니라 따는 것이다. 싸워서 이기면 되는 것이다.”

이 의원의 지역구는 경기도 화성 을이다. 동탄 신도시가 발달하며 민주당 강세지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비례대표인 민주당 전용기 의원이 출마를 준비 중이라는 소식에 대해 이 의원은 “아마 우리 지역구는 내년 4월 총선에서 분구가 유력할 것”이라며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경쟁이 아니라 협력의 관계라는 뉘앙스로 들렸다.

송영길 전 대표가 연루된 돈 봉투 의혹과 윤관석·이성만 의원의 탈당, 위장 탈당한 민형배 의원의 복당, 코인 의혹에 휩싸인 김남국 의원의 탈당 등을 보며 민주당 안의 혁신 에너지에 관한 의구심이 비등하다.
“의원들끼리 ‘청년 다 버리고, 내년 총선 큰일 났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민주당이 청년 의제를 잡고, 청년과 공감하는 정치에 실패하고 있는 것 같다. 2020년 ‘조국 사태’ 때 이른바 ‘초선 오적’ 사건이 있었다. 젊은 정치인 5인이 ‘조국의 강을 건너자’는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이때 나도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 극성 지지자들에게 폭탄을 맞자 바로 항복했다. 이런 시도들이 성공하고 그 목소리가 계속 커져나갈 수 있었다면, 공정의 가치를 뺏기지 않았을 것이고 대선에서도 이겼을 것이다.”
2023년 3월 박지현 전 민주당 비대위원장을 위해 이 의원은 국회에 기자회견장을 마련해줬다. 다른 의원들이 외면할 때 왜 그렇게 했나?
“아마 박지현 비대위원장 체제에 가장 날카로운 비판을 한 사람이 나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유야 어찌됐든 당이 박지현이라는 청년 여성을 대선과 지방선거 때 비대위원장까지 시켜가며 써먹지 않았는가? 그런데 170명의 어른 정치인 중에 기자회견장 하나 예약해주는 사람이 없더라. 박 전 비대위원장의 생각에 동조했다기보다는 정치적인 미안함에서 그렇게 했다.”

“민주당 변화의 씨앗 될 것”

이 의원의 지역구에는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이 있다. 민주당에서 이 의원이 비교적 친시장적 컬러를 갖는 배경이라고 볼 수 있을까?
“삼성과 상관없다. 아마도 내가 중대재해처벌법을 반대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현장에서 내가 반대표를 눌렀더니 몇몇 의원들이 와서 ‘의원님, 진짜 용기 있네요’라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당론도 아닌데 왜 반대를 못 해요’라고 반문했다. 나는 이런 것이 민주당이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씨앗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2021년 이재용 삼성 회장 사면론을 주장했다.
“문 대통령이 폭넓게 생각했으면 해서 그렇게 했다.”
총선을 앞두고 여의도에서는 어김없이 제3지대론이 불고 있다.
“무당층이 계속 늘어나고 있으니 그런 수요가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파워풀한 동력을 찾기가 힘들다. 김종인 전 대표나 금태섭 전 의원으로는 동력이 안 될 것이다.”
의원실 문에 윤 정부의 대일외교를 비판하는 문구가 담긴 팻말이 붙어 있더라.
“우리 보좌진이 앞에다 붙이라고 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웃음). 진영정치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 이제 외교 문제마저 진영정치 중심으로 들어왔다. 윤석열 정부가 외교에서는 좀 더 섬세해야 한다. 아쉬울 뿐이다.”

- 글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 사진 김상선 기자 kim.sangseon@joongang.co.kr / 녹취 정리 이상우 월간중앙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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