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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겜’ 손해, ‘우영우’는 이득? K콘텐트 변호사가 보면 다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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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만 좋은 계약이었을까. K콘텐트 산업 규모가 커지면서 지식재산권 관련 계약이 더욱 복잡해지고 있어 면밀한 검토가 필수가 됐다. 사진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만 좋은 계약이었을까. K콘텐트 산업 규모가 커지면서 지식재산권 관련 계약이 더욱 복잡해지고 있어 면밀한 검토가 필수가 됐다. 사진 넷플릭스

드라마 지식재산권(IP)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 으레 ‘오징어 게임’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비교하게 된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2021년 10월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으로 9억 달러(약 1조 2000억원)를 벌어들였다. IP를 가진 덕분에 올 11월엔 드라마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생존 서바이벌 ‘오징어 게임: 더 챌린지’를 공개한다.

이용해 변호사는 10년간 SBS PD로 재직했으며 이후 15년 동안 초록뱀미디어 등에서 드라마와 예능을 제작했다. 이후 변호사로서 다수의 콘텐트 기업의 프로덕션 리걸 및 자문변호사를 맡고 있다. 사진 YH&CO 법률사무소

이용해 변호사는 10년간 SBS PD로 재직했으며 이후 15년 동안 초록뱀미디어 등에서 드라마와 예능을 제작했다. 이후 변호사로서 다수의 콘텐트 기업의 프로덕션 리걸 및 자문변호사를 맡고 있다. 사진 YH&CO 법률사무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넷플릭스에 IP를 넘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난해 3분기 넷플릭스가 꼽은 최고 흥행작에 올랐고 인기에 힘입어 넷플릭스가 직접 더빙판을 제작해 방영하기도 했다. 제작사 에이스토리의 이상백 대표는 2022 국제방송영상마켓에서 “리메이크 판권 외에도 웹툰으로 만들어 5개국에 수출 협상을 진행 중이고, 뮤지컬 세 편도 개발 중”이라면서 “IP는 우리 같은 작은 제작사들이 생존할 수 있는 중요한 토대”라고 강조했다. ‘우영우’를 통한 경제 효과가 ‘오징어 게임’을 넘었다는 말까지 나오는 이유다.

결과만 놓고 보면 ‘오징어 게임’은 손해 보는 계약, ‘우영우’는 현명한 계약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훨씬 복잡하다. 당시 넷플릭스 고문 변호사로 ‘오징어 게임’ 계약을 진행했던 이용해(56) YH&CO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시즌1 계약이 잘못됐다고 보지 않는다. 당시의 현실로는 다소 폭력적인 소재로 한국에서 제작이 어려웠던 작품이었는데 그 리스크를 넷플릭스가 감수하고 투자했다. 세계적인 흥행 배경엔 당연히 넷플릭스 공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시즌2부터는 상황이 다르다. 시즌1이 성공한 것을 토대로 유리한 계약을 끌어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변호사는 시즌2부터 제작사 싸이런픽쳐스를 대리한다. 이 변호사는 이런 상황에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제작 환경에 있어 딜 파워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딜 파워를 고려해 의뢰인이 원하는 조건을 가져다주는 것이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전문 변호사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 변호사는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PD와 제작사 대표로 25년간 미디어 업계에서 일하다 2015년 전남대 로스쿨에 입학, 50세에 변호사가 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셈법 복잡해진 콘텐트 제작 현장

과거엔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전문 변호사라고 하면 연예인을 대리하는 사람으로만 여겼다. 실제로 이 변호사의 업무 초창기엔 각종 소송에 휘말린 연예인 의뢰인이 많았다. 그는 “지금은 연예인보다는 K콘텐트가 제대로 대우받고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낼 수 있도록 자문을 하고 협상 테이블에 나서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은 변호사가 콘텐트 제작 현장 전반에 자문하고 법적 조언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을 당연한 절차로 받아들인다. 제작비의 0.5~1%가량을 법률 서비스에 쓰게 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가 자문을 맡은 작품으론 ‘오징어 게임’외에도 넷플릭스 ‘킹덤’·‘인간수업’·‘스위트홈’, 디즈니+ ‘그리드’, 아이치이 ‘간 떨어지는 동거’ 등이 있다.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엑스오, 키티’의 한국 올 로케이션 촬영도 도왔다. 제작사 파라마운트글로벌의 의뢰를 받아 배우 비자 문제부터 코로나 방역, 촬영 장소 허가, OST 계약, 저작권이슈, 명예훼손여부, 현지배우 계약 및 협상, 교포 배우의 경우 병역 문제까지가 모두 그의 업무 영역이다. 제작 환경 전반의 절차를 함께 만든다. 이렇게 외적인 요소에 있어 법적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작 전반을 살피는 것을 ‘프로덕션 리걸’(Production Legal)이라고 한다.

이용해 변호사가 프로덕션 리걸을 맡은 넷플릭스 시리즈 '엑스오 키티'. 사진 넷플릭스

이용해 변호사가 프로덕션 리걸을 맡은 넷플릭스 시리즈 '엑스오 키티'. 사진 넷플릭스

이 변호사는 프로덕션 리걸의 중요성을 한국 콘텐트 업계에 피력하고 있다. 그는 “K콘텐트의 규모가 커졌다는 것은 동시에 리스크가 커졌다는 뜻이다. 우리가 양적으로는 커졌는데 질적으론 아직이다. 계약서만 잘 써도 막을 수 있는 제작 상황에서의 사건·사고들이 정말 많다”고 했다.

국내에서 있었던 소송 사례를 살펴보면 촬영을 승낙한 경우에도 초상권 문제로 위자료를 지급한다거나, 촬영 허가를 받은 장소임에도 저작물이 있는 소품이 TV에서 방영돼 저작권 침해로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일이 있었다. 수년 전엔 아이돌 그룹을 모티브로 삼은 드라마가 계약서에 상표권 문제, OST 문제 등을 표기하지 않아 큰돈을 날린 일도 있었다. 프로덕션 리걸을 통했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일들이다.

이 변호사는 “우리나라는 콘텐트 업계 규모에 비해 소송이 잦은 편이다. 계약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최근에도 계약 기간을 명시하지 않아 소송으로 이어질 뻔한 사건이 있었다”면서 “당장 변호사 비용 아끼려다 더 큰돈을 쓰는 경우가 정말 많다”고 아쉬워했다.

변화한 제작 환경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 변호사가 SBS PD로 재직하던 시절엔 제작사가 프로그램을 제작해오면 제작사가 방송사와 계약하고, 해외 판권 요청이 들어오면 방송사가 또 다른 계약을 체결하는 단순한 구조였다. 계약의 당사자들도 대부분 업계 지인들이었고 구두 합의도 잘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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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다르다. 제작 단계부터 글로벌 플랫폼 판매까지 염두에 두기 때문에 제작의 모든 상황을 첫 계약서에 담아내야 한다. 시즌2에 대한 가능성은 물론 출연자의 혹시 모를 학교 폭력 논란까지도 상세하게 검토한다.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아마존 프라임 등 업계 선수들인 미국 콘텐트 회사들과의 교류가 잦아지면서 글로벌 관행인 미국법을 따라야 할 때가 많기 때문에 콘텐트를 잘 아는 법률 전문가 도움이 꼭 필요하다.

미국에선 콘텐트 보험이 일반적

우리보다 훨씬 제작비 규모가 큰 미국 콘텐트 업계에선 의외로 소송이 적다. 초대형 프로젝트의 경우 계약만으로 몇 개월이 걸릴 정도로 공들여 계약서를 작성한다. 계약서에 세부 내용까지 다 정해져 있고, 콘텐트 전문 보험까지 들기 때문에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가 누구에게 있는지 서로가 명확하게 안다.

대표적인 보험으론 E&O보험(Errors&Omissions Insurance)이 있다. 아무리 잘 대비해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비용을 확보하는 보험이다. 요즘은 넷플릭스 등 해외 플랫폼과 거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국내 콘텐트 제작사에게도 법률 전문가와 함께하는 E&O보험을 사실상 강제하는 추세다.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되는 프로젝트는 투자사가 먼저 완성보증보험 가입을 요구할 수 있다. 제작사가 프로그램 제작비를 조달하기 위해 선판매의 형태로 방영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정해진 시간과 예산 내에 프로그램을 완성하도록 보증하는 보험이다. 외국에선 제작 인력, 각본, 예산, 스케줄, 자금조달계획 등을 평가해 적정한 보험료를 산출한다. 국내에서는 완성보증제도라는 이름으로 문화산업진흥 기본법에서 보호하고 있다.

한국 제작사는 여전히 이런 환경에 익숙하지 않아 자칫 큰코다칠 수 있다. 이 변호사는 “모 제작사 대표가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받은 영문 계약서를 주면서 ‘급하니까 하루 만에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적어도 50장 이상의 페이지였는데 ‘큰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며 가볍게 생각하더라. 이삼일간 서류를 살펴보니 꽤 큰 콘텐트 보험금을 제작사가 부담하게 돼 있었다. 이야기를 해주니 깜짝 놀라면서 그런 게 있냐고 되물었다”고 전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제작 환경이 아직도 급박하게 돌아가는 편이다. 모든 계약이 그러하듯 협상을 위한 제안으로 보고 조건을 면밀히 검토해야 하는데, ‘글로벌 플랫폼이 준 계약서니까 당연히 좋겠지’ ‘이 계약서를 거절하면 안 될 거야’하는 심정으로 무작정 사인하려고 하는 사례가 더러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그는 “우리 콘텐트를 지키기 위해선 제작사가 계약서 작성부터 민감하게 살펴봐야 하고, 콘텐트 분야에 전문성을 띤 변호사가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내년엔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다. 국내 거의 모든 제작사가 이에 해당하기 때문에”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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