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후 서울 김포공항 인근의 80m 남짓한 골목엔 차량 20여대가 빼곡히 주차돼 있었다. 재건축 예정 빌라가 늘어선 골목 곳곳에 불법 주차된 차량들이 가득했다. 한 빌라 주차장에 세워진 차량 10여 대 가운데 세 대는 입주세대 명단에 없는 번호였다. 차 앞유리에는 충남 당진, 서울 양천구 등지의 아파트 이름이 적혀있었다. 외부 아파트 스티커가 붙여진 차량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거니, 차주는 “김포공항 주차대행 업체에 차를 맡겨놨다”고 답했다. 차량 바퀴 위에는 자동차 키가 올려진 상태였다. 인근 편의점 직원은 “하루에도 수 차례씩 차를 대놓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경찰서가 이처럼 공항 인근 주택가에 차량을 불법 주차한 사설 주차대행업체 D사를 업무방해와 주차장법 위반 등의 혐의로 수사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김민석 강서구의원은 지난 15일 해당 업체에 대한 고발장을 강서경찰서에 제출했다. 김 의원은 “김포공항엔 하루 1만원 내외를 받고 주차 대행을 해주는 업체들이 있는데, 한국공항공사와 정식을 계약을 체결한 업체 한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법”이라고 말했다.
특히 D사의 경우 지난 2월 폐업 신고를 하고도 영업을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의원은 “자체 파악한 불법 주차대행 업체만 수십 곳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며 “업체들은 홈페이지 등에 ‘주차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광고하지만, 실상은 이런 노상이나 야산에 주차해놓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주민들과 상인들은 불법 주차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빌라 관리인 김모씨는 “10여대를 댈 수 있는 주차장인데, 주민 민원이 들어와 하루에 네 대씩 출차 요청을 한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골목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한 상인은 “올해 초 재건축 예정인 빌라 주변에 펜스가 쳐지기 전까진 재건축이 확정된 빌라 부지 안에도 차가 가득했다”고 말했다. 공항 이용객이 많은 주말엔 더 심하다. 인근 상인인 윤모(58)씨는 “주말과 연휴 때면 골목을 넘어서서 인도까지 차가 들어선다”고 말했다.
검찰 송치에 실형도 선고 됐는데... 근절 어려운 이유는
주차대행 업체 중엔 공식 계약 업체를 위협하거나 꼼수로 주차비를 내지 않아 처벌받은 사례도 있다. 서울남부지법은 2018년 1월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정식 업체를 위협한 주차대행 업체 대표와 직원에게 각각 징역 1년을 선고했다. 한국공항공사도 지난해 9~12월 앞차를 바짝 붙어 따라 나가는 ‘꼬리물기’ 방식으로 김포공항 내 주차장에서 주차비 수십만원을 내지 않은 업체들을 적발해 강서경찰서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한 업체는 지난해 12월 남부지검에 사기 혐의로 송치돼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고, 나머지 업체들은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이용객들은 업체들의 불법 행위를 짐작하면서도 서비스를 이용한다. 공항 주차장은 출국장까지 10분 이상 걸어야 할 정도로 멀고, 사설 대행업체 이용료가 정식 업체에 비해 절반 가량 저렴하기 때문이다. 사설대행업체에 주차를 맡긴 차량의 주인은 “대행업체가 아무 데나 차를 대놓을 수도 있단 사실을 대강 알고 있지만 직접 확인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사설 주차대행업으로 피해가 이어지는데도 한국공항공사와 강서구청은 뾰족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한국공항공사 관계자는 “공항시설법에 의해 퇴거를 요구할 순 있지만, 과태료를 부과할 수는 없다”면서도 “공항에 대한 영업방해로 보기엔 어려워 적극적으로 고발하진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강서구청 관계자는 “40명 내외 단속반이 강서구 일대를 전부 관리해 인력이 부족하다”며 “그때그때 들어오는 신고를 단속할 뿐 따로 업체를 관리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