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마음 읽기

당신이 필요해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원영 스님 청룡암 주지

원영 스님 청룡암 주지

초록의 진한 빛깔이 일광(日光)보살의 강렬한 빛을 받아 선명한 시절, 이제 곧 ‘부처님 오신 날’이다. 화사한 봄날에도 이런저런 일정으로 꽉 채워진 달력을 볼 때마다 나는 외려 표정이 굳어진다. 다관에 차를 우려 맑은 차 한 모금 입에 머금고 눈을 감았다. 은은한 차향에 몸을 맡기니 좀 낫다. 그래도 머릿속에선 자꾸만 묻는다. 어찌하여 이리도 여백 없이 산단 말인가.

저녁나절, 공허한 마음에 탑전을 내다보니 불 밝힌 연등이 고단한 삶을 어루만져주는 듯하다. 이런 내게 송나라 야보(冶父) 스님이 한 말씀 하신다. ‘꽃은 늘 웃고 있어도 시끄럽지 아니하고, 새는 항상 울어도 눈물을 보이지 않으며, 대그림자 뜰을 쓸어도 먼지가 일지 아니하고, 달빛이 물밑을 뚫어도 흔적이 없네.’ 그래, 제아무리 번잡한 일상이어도 고요한 마음은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 연중 가장 큰 행사가 남았으니, 밝고 고요한 가운데 다시금 마음을 다잡아본다.

부처님 오신 날 연등 밝히는 뜻
모든 종교는 우리의 행복 기원
사랑을 많이 하면 자비도 커져

마음 읽기

마음 읽기

최근 평화방송에 갈 일이 있었다. 처음 있는 일이라 지인에게서 성경을 잠시 빌렸다. 성경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가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조금이라도 훑어보고 갈 요량이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사유로 성경은 제대로 읽고 가지 못했다. 당연히 내가 아는 불교 이야기만 하다 왔다.

어쨌든 평화방송의 초대 덕분에 잠깐이나마 성경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매우 흡족한 구절을 발견했다. 21세기 해설판 구약성경 서론에 이르기를 ‘모든 사람이 한 형제자매와 혈육이 되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고, 모든 사람과 모든 백성의 자유로운 삶을 핵심 목표로 삼도록 하는 것이 하느님의 계획’이라는 글이 있었다. 이 글을 읽고 반가운 미소가 지어졌다. 역시 모든 종교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있구나 싶었다. 나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이들을 내 가족처럼 여기고, 그들이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모든 종교의 존재 이유 아닐까. 기독교의 사랑도, 불교의 자비도 결국엔 모든 존재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출가하여 얼마 안 된 젊은 시절에는 종교마다 주장하는 바가 다르므로, 차이점이 훨씬 더 크게 느껴졌다. 유일신을 믿는 종교와 자기 자신을 찾으라는 종교가 서로 만나는 지점을 발견하기란 불가능한 일일 거라고만 여겼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불교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나의 견해에도 변화가 생겼다. 종교가 세상에 필요한 이유는 오직 하나뿐이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바로 ‘모든 존재가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지향하지 않는 종교는 존재조차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불자들이 수시로 암송하는 불교의 『반야심경』만 보아도 세상의 공(空)한 이치를 알아서 일체중생을 온갖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주제다. 깨달음의 세계가 펼쳐지는 『화엄경』에서는 자비로운 마음으로 수행하고 해탈하여 자비실천을 통해 모든 이들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라고 가르친다. 밖에서 보면 불교는 인간의 내면을 통해 깨달음을 구하는 것이 목적인 듯 보이지만, 사실 불교의 궁극적 목적은 진리에 대한 자각을 통해 모든 존재의 행복을 완성하는 데 있다.

평화방송에 다녀와 서가를 뒤져 예전에 읽었던 『마음의 진보』를 찾아보았다. 이 책은 7년간 수녀생활을 했던 세계적인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Karen Armstrong)의 자서전이다. 내가 사는 비구니의 삶과 그녀가 이야기하는 수녀원의 생활이 무척 닮아서 공감했던 책이다. 전후 사정이야 어떻든지 간에, 그녀나 나나 17세에 각자 신과 부처를 만나기 위해 다 버리고 떠나는 선택을 했고, 한 걸음 한 걸음 여기까지 왔다. 그 과정에서 얻게 된 생각은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면 모든 것이 사랑이요, 자비요, 공감’이라는 점이다.

여럿이 모여 살면 화합이 가장 중요하다. 다종교가 공존하는 사회에서는 서로를 인정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것이 곧 평화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평온한 삶을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자기 주변에 적대적인 사람이 없어야 한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을 평화롭게 만들고, 마음 열고 부드러운 미소로 대해야 자신이 원하는 평온한 삶의 여백이 생긴다.

브레히트의 시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우리의 삶은 홀로 떨어져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가 절실히 필요하다.

사랑에 빠진 사람 눈에는 오직 사랑하는 사람만 보이는 법이라 간혹 맹목적일 때가 있다. 그러니 그 사랑하는 대상을 확대해보자. 그럼 모든 존재가 자비로운 내 눈 안에 들어올 것이다. 우리에겐 서로가 필요하다.

원영 스님 청룡암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