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30년’이란 오명을 벗어내듯 일본 증시가 날아오르고 있다.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일본 기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겠다고 한 것이 신호탄이 된 듯한 모습이다.
올해 들어 20% 넘게 오른 일본 닛케이255지수는 8거래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며 지난 22일 32년 9개월 만에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거침없는 질주에 잠시 쉬어가듯 23일 닛케이255지수는 전날보다 0.42% 하락하며 거래를 마쳤다.
일본 경제를 대표하는 ‘잃어버린 30년’은 증시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닛케이225 지수는 일본 경기 호황이 절정이었던 1989년 12월 사상 최고치인 3만8915.87을 찍은 뒤 추락하기 시작해 2009년 3월엔 7054.98까지 주저앉았다. 2021년 2·9월에 3만 포인트를 넘었지만, 또다시 내리막길을 걷다 지난 17일 1년 8개월 만에 3만선을 재탈환했다.
일본 증시가 날아오르며 일본으로의 ‘머니 무브’ 움직임도 보인다. 국내 투자자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일학개미(일본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투자자)’의 사자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23일 한국예탁결제원 세이브로에 따르면 지난 1~22일 국내 투자자의 일본 주식 순매수 규모는 70만3300 달러(약 9억원)에 달한다. 지난 2·3월에 순매도에 나섰던 투자자는 지난달 49만5797 달러(약 6억5000만원) 순매수한 데 이어 이번 달에도 일본 주식을 사들였다.
지난달 초부터 지난 22일까지 국내 투자자가 가장 많이 사들인 일본 주식(상장지수펀드 제외)은 게임 업체인 닌텐도와 스포츠용품 업체 아식스, 종합상사 마루베니, 제약회사 다이이찌산쿄, 부품업체 교세라 등이다. 버핏이 투자한 마루베니·이토추상사·미쓰비시상사 등도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국내에서 운용 중인 일본 펀드(ETF 포함)도 고공행진 중이다. 23일 금융정보 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28종의 일본 펀드의 연간 수익률은 평균 14.8%에 달했다. 이 중 5종의 일본 ETF의 평균 수익률은 19.6%다.
일본 증시의 활황은 탄탄한 내수시장과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를 기반으로 기업 실적 개선의 영향이라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에 따르면 도쿄증권거래소 프라임 상장사 중 1067곳의 2023회계연도(올해 4월~내년 3월) 순이익은 전년 대비 2% 증가해 3년 연속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류진이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은 국내총생산(GDP)에서 민간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54%, 민간 투자까지 합하면 74%에 달할 정도로 대외의존도가 낮다”며 “글로벌 경기 부진과 미·중 갈등에 따른 수출 부진 속에도 내수를 기반으로 성장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일본은행(BOJ)이 금융완화 정책을 지속하면서 ‘엔저(低)’ 현상이 장기화하는 것도 일본 증시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23일 엔화 가치는 달러당 138.3엔으로 1년 전(달러당 127.9엔)보다 8.1% 떨어졌다.
‘버핏’ 효과도 일본 증시 강세의 주요 요인이다. 버핏은 지난달 니혼게이자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 종합상사의 지분을 보유한 것에 대해 “매우 자랑스럽다”며 다른 일본 기업에 대한 추가 투자에 대해서도 “항상 고려 대상”이라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외국인은 지난 4월에 156억 달러(약 20조원)의 일본 주식을 순매수했다.
순풍이 불고 있지만 일본 증시가 상승세를 이어갈지에 대한 전망은 갈린다. 최보원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주변국이 경제 활동을 재개하고 있고, 일본도 리오프닝 등 정책 모멘텀이 있는 만큼 추가 상승이 가능할 전망”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문남중 대신증권 연구원은 “일본은행이 4월 올해 실질 GDP 성장률을 지난 1월보다 하향 조정하고 소비자물가 상승률 목표치를 상향 조정하고 있는 만큼 2분기에도 민간 소비가 활발하게 이어질지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