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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시간 간이식 해냈다…지구 반대편에 전해진 K의술 기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아산병원에서 간이식 연수를 받은 코스타리카 칼데론 병원 간이식팀 의료진이 자국 최초로 성인 생체 간이식 수술에 성공했다. 사진은 2019년 연수 당시 모습.

서울아산병원에서 간이식 연수를 받은 코스타리카 칼데론 병원 간이식팀 의료진이 자국 최초로 성인 생체 간이식 수술에 성공했다. 사진은 2019년 연수 당시 모습.

지난달 11일 오전 6시. 코스타리카 칼데론 구아디아 병원의 수술방 두 곳에 환한 불이 켜졌다. 두 모녀가 각자 수술방에 나란히 실려왔고, 간이식팀 의료진 20여명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긴장된 분위기 속 한 쪽 방에선 딸의 건강한 우측 간엽(간의 오른편)을 절제하는 수술이 진행됐다. 옆방에선 어머니에게 딸의 간을 이식하기 위한 준비가 시작됐다. 18시간의 사투 끝에 딸의 간이 어머니에게 성공적으로 이식되자 의료진 사이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해냈다!” 코스타리카에서 성인 생체 간이식이 처음 성공한 순간이었다. 코스타리카 의료진이 4년 전 생체 간이식을 배우러 20시간을 날아 한국을 방문해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을 한 달 넘게 따라다니며 아침부터 밤까지 수술 기법을 익힌 결과였다. 수술은 한 치 오차 없이 끝났고, 환자는 안정적인 회복세를 보이며 8일차에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했다.

30여 년 전 다른 치료법이 없어 죽음을 눈앞에 둔 말기 간질환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한국의 외과의사가 처음 개발한 간이식술이 지구 반대편 중앙아메리카에 위치한 작은 섬 코스타리카에서 이렇게 첫 열매를 맺었다.
서울아산병원은 코스타리카 사회보장청 산하 칼데론 구아디아 병원 간이식팀이 서울아산병원에서 전수받은 간이식 기술을 바탕으로 지난 달 11일 코스타리카 최초로 성인 생체 간이식 수술에 성공했다고 23일 밝혔다. 1991년 서울아산병원 간이식ㆍ간담도외과 이승규 석좌교수는 생체 간이식 수술의 성공률을 높이고자, 이식되는 우엽 간에 새로운 중간정맥을 만들어 우엽 간 전(全) 구역의 피가 잘 배출되도록 하는 ‘변형 우엽 간이식’을 고안해냈다. 이후 서울아산병원은 2022년 9월 ‘간이식 8000례(생체 6658건, 뇌사자 1342건), 수술 성공률 98%’라는 대기록을 달성하며 세계 간이식 분야를 이끌어왔다.

현재는 전 세계 표준 수술법이 된 변형 우엽 간이식을 통해 코스타리카의 간경화 환자 자네트 로리오(Jeannette Lorioㆍ60)가 딸 비앙카 오비에도(Bianca Oviedoㆍ32)의 간을 무사히 이식받아 건강을 되찾게 됐다.
생체 간이식은 뇌사자 간이식에 비해 수술이 까다롭고 합병증 발생 위험이 커 높은 생존율을 담보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코스타리카는 장기 기증률(100만 명 당 7명)이 낮고 대기자 사망률(30%)이 높기 때문에 생체 간이식이 무엇보다 절실한 상황이었다.

코스타리카에서 손꼽히는 병원 중 하나인 칼레론 구아디아 병원은 550여 병상을 보유하고 있으며 코스타리카와 중앙아메리카를 통틀어 간ㆍ췌장ㆍ소장ㆍ폐 이식을 가장 먼저 시행하기도 했다.

코스타리카 최초로 성인 생체 간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은 자네트 로리오 씨(왼쪽)와 간 기증자인 딸 비앙카 오비에도 씨가 수술 25일차를 맞아 사진을 찍고 있다.

코스타리카 최초로 성인 생체 간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은 자네트 로리오 씨(왼쪽)와 간 기증자인 딸 비앙카 오비에도 씨가 수술 25일차를 맞아 사진을 찍고 있다.

그간의 이식 경험을 토대로 칼데론 병원 간이식팀 의료진은 생체 간이식에 도전하기 위해, 변형 우엽 간이식과 2대 1 생체 간이식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고 2018년 당시에만 5천례의 생체 간이식을 시행한 서울아산병원에 협력을 요청했다. 2019년 5월 서울아산병원이 생체 간이식을 전수하기로 결정하면서 칼데론 병원 간이식팀 의료진 24명은 그 해 12월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서울아산병원에서 간이식 연수를 받았다. 연수단은 외과ㆍ마취통증의학과ㆍ영상의학과 전문의, 수술실ㆍ중환자실 간호사로 구성됐으며 수술, 수술 후 간호, 합병증 치료에 대해 6주씩 교육을 받았다. 연수단은 매일 아침 7시에 진행되는 회의에 빠짐없이 참석한 것은 물론이고 뇌사자 구득 과정과 밤늦게 시행되는 응급 수술까지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의 모든 의료 현장마다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연수 후 자국으로 돌아간 칼데론 병원 간이식팀 의료진은 한국에서 배운대로 생체 간이식 수술 프로그램을 비롯해 간이식 혈관 재건 개선, 복강경 수술 프로그램, 간이식 간호기술 표준화, 중환자실 간호관리, 간이식 수혜자 감염관리 등 다양한 시스템을 현지에 구축해나갔다. 이러한 시스템을 바탕으로 올해 4월 성인 생체 간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수술을 집도한 바네스 로페스 칼데론 구아디아 병원 간이식팀 간췌장담도 및 이식외과 교수는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 의료진의 도움으로 이곳 코스타리카 환자와 가족의 삶이 바뀔 수 있었다. 우리가 생체 간이식 자립에 성공하기까지 성심성의껏 의술을 전수해준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 의료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승규 서울아산병원 간이식ㆍ간담도외과 석좌교수는 “우리에게 연수를 받는 동안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애쓰던 코스타리카 의료진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려운 수술을 스스로 훌륭하게 해낸 칼데론 병원 간이식팀 의료진에게 깊은 축하와 감사를 전하고 싶다. 앞으로도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 의료 기술을 전수해 세계 곳곳의 많은 환자들이 새 삶의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코스타리카 칼데론 병원 간이식팀 의료진이 ‘감사합니다(Gamsa hamnida) 서울아산병원’이라는 메시지를 넣은 단체 사진을 편지와 함께 전달해왔다.

코스타리카 칼데론 병원 간이식팀 의료진이 ‘감사합니다(Gamsa hamnida) 서울아산병원’이라는 메시지를 넣은 단체 사진을 편지와 함께 전달해왔다.

서울아산병원의 간이식 해외 전수는 오랜 기간 이어져왔다. 간암 발생률 최상위 국가인 몽골과 베트남에 2011년부터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 의료진 50여 명이 연 2~4회씩 방문해 현지 의료진을 양성했다. 또 현지 의료진 250여 명을 서울아산병원으로 초청해 전문 교육을 실시했다. 그 결실로 몽골 국립 제1병원과 베트남 쩌라이병원, 호치민대학병원에서 간이식을 독자적으로 시행할 수 있게 됐다. 이밖에도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은 의술 전수를 통해 △2001년 터키 최초 성인 생체 간이식 △2004년 프랑스 최초(유럽 최초) 2대1 생체 간이식 △2006년 터키 최초 2대1 생체 간이식 △2016년 중동 카타르 최초 성인 생체 간이식 △2019년 카자흐스탄 최초 2대1 생체 간이식을 성공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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