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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곡법 부작용 현실화…창고 쟁인 쌀, 떨이 처분돼 사료 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4일 경기도 용인의 한 창고에서 정부 관계자가 보관 중인 쌀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4일 경기도 용인의 한 창고에서 정부 관계자가 보관 중인 쌀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창고에 보관 중인 쌀 14만t을 올해 말까지 특별처분하기로 했다. 과거 비싸게 사들인 남는 쌀을 싸게 처분하는 셈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3일 보관 중인 정부 양곡(미곡) 14만t을 올해 말까지 사료용과 주정(酒精)용으로 각각 7만t씩 특별처분한다고 발표했다. 2016년 이후 7년 만에 특별처분이다. 전한영 농식품부 식량정책관은 “과다한 재고 물량으로 보관료 등 관리 부담이 커졌고, 시중 쌀 시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고 처분 배경을 설명했다.

농식품부는 지난해 큰 폭의 하락세를 보인 산지 쌀값 안정을 안정시키기 위해 사상 최대 물량인 77만t을 사들였다. 적극적인 매입으로 쌀값은 어느 정도 안정됐다. 하지만 공공비축에 따른 정부 재고량이 대폭 늘었다. 지난달 말 기준 정부 재고량은 적정 재고량(80만t)의 두 배가 넘는 170만t이다.

특별처분으로 올해 남는 쌀 판매량은 당초 78만t에서 92만t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농식품부는 특별처분을 통해 ①정부 양곡 보관비 약 115억원 절감 ②사료용·주정용 수입원료 대체에 따른 외화 618억원 절감(사료 283억원, 주정 335억원) ③정부 양곡 창고 확보 ④과잉물량 일부 해소로 쌀값 상승 기여 효과를 기대한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특별처분은 남는 쌀을 ‘떨이’ 처분하는 조치다. 정부 예산으로 산 쌀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게 아니라 일정 보관 기간이 지난 쌀을 시장에 헐값에 푸는 격이라서다. 보관기한이 3년 지난 쌀은 매입가의 10~20% 수준에 팔린다.

지난 2016~2017년 당시에도 정부는 쌀 100만t 이상을 사료용으로 특별처분했다. 보관 중인 쌀이 적정 재고량보다 2∼3배 늘어나면서다. 결과적으로 쌀값 상승에 기여하긴 했지만, 정부 재정 지출이 컸다. 가공용 쌀 가격 등 형평성 시비도 남았다.

김성훈 충남대 농업경제학과 교수는 “과잉 생산으로 쌀값이 하락하고, 쌀값을 방어하기 위해 정부가 재정을 쏟아 시장에서 격리한 뒤 시간이 지나면 헐값에 파는 악순환”이라고 지적했다.

남아도는 쌀을 정부가 강제 매수하는 내용의 ‘양곡관리법’이 우려했던 그늘의 단면이다. 양곡관리법은 야당에서 일방적으로 처리하려다 윤석열 대통령이 ‘1호’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해 가로막혔다. 결국 지난달 13일 국회 본회의 재투표에서 부결됐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홍문표 국민의힘 의원이 농식품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2022년 정부가 매입한 양곡의 판매 손실 추정액과 관리 비용 총액은 4조 3913억 원으로 추산됐다. 남는 쌀이 ‘골칫덩이’로 전락한 신세라 정부는 쌀 보관 연한 기준을 가공식품용은 기존 2년에서 1년으로, 주정용은 3년에서 2년으로 단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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