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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펫 유치원보다 싸다" 아우성…시립대도 반값등록금 포기 검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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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해부터 고물가 흐름이 지속하면서 2009년부터 이어진 정부의 등록금 억제 기조가 흔들리고 있다. 올해 부산 동아대 등 17개 대학이 등록금을 인상한 데 이어 서울시립대도 인상 검토에 들어갔다. 대학들은 10년 넘게 지속된 등록금 동결과 학령인구 감소 등으로 등록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年 200만원대 시립대 등록금, 11년만에 인상 검토  

서울시립대 전경. 중앙포토

서울시립대 전경. 중앙포토

서울시립대는 최근 ‘등록금 정상화 공론화 위원회’를 구성하고 등록금 인상에 대한 구성원 의견을 모으고 있다. 학내 위원과 외부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위원회는 매달 회의를 하면서 반값 등록금의 실효성에 대해 토론할 계획이다.

시립대는 2012년 박원순 전 서울시장 주도로 '반값 등록금'을 시작한 지 11년간 연 200만원 대 등록금을 유지했다. 올해는 239만5900원이다. 전국 4년제 대학 평균 등록금(679만5200만원)의 3분의 1 수준이다. 하지만 지난해 말 서울시의회가 시립대 지원금 577억원 중 100억원을 삭감하며 위기를 맞았다. 시의회는 “반값 등록금 정책 이후 교육의 질이 하락하고 대학 경쟁력이 저하됐음에도 대학의 자구 노력이 부족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시립대는 대학원 및 유학생 등록금을 올려 올해에도 반값 등록금을 유지했지만 내부에서는 한계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시립대 사정을 잘 아는 서울시 관계자는 “등록금이 싸지면서 교육의 질이 하락할 뿐 아니라 일부 수험생에겐 ‘부담 없이 등록금 내놓고 '반수'를 노릴 수 있는 대학’으로 인식되며 학생이 이탈하는 등 피해가 컸다”고 말했다.

재정난 내몰린 지방대…“6만원이라도 올린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소속 대학생들이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지금도 너무 비쌉니다, 대학생 재정난 해결 프로젝트' 발족 기자회견에서 대학 등록금·학식 가격·대학가 월세·공과금 인상 등이 적힌 대형 현수막을 찢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스1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소속 대학생들이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지금도 너무 비쌉니다, 대학생 재정난 해결 프로젝트' 발족 기자회견에서 대학 등록금·학식 가격·대학가 월세·공과금 인상 등이 적힌 대형 현수막을 찢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스1

교육계에서는 시립대처럼 등록금 인상을 검토하는 대학들이 속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1월 교육부 출입기자단 설문 조사에서 전국 4년제 대학 총장 116명 중 53.5%(61명·무응답 2명 제외)가 등록금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특히 학령인구 감소로 학생 모집이 어려워진 지방 사립대가 먼저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올해 학부 등록금을 올린 17개 대학 중 12곳이 지방대였는데, 내년엔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대학교육연구소가 펴낸 '지방 사립대 재정 진단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에서 2020년 사이 10년간 지방대 등록금 수입은 3361억원 줄었다. 반면 서울 소재 대학은 같은 기간 등록금 수입이 1246억원 늘었다.

올해 등록금 인상한 대학 명단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대학교육연구소, 대학 자체 홈페이지 등]

올해 등록금 인상한 대학 명단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대학교육연구소, 대학 자체 홈페이지 등]

지방대의 등록금 수입이 크게 줄어든 이유는 학령인구 감소와 함께 정부의 대학 정원 감축 영향이다. 이명박 정부부터 대학 평가 결과에 따라 학생 수를 줄이도록 했는데, 주로 지방대가 타깃이 됐다. 지방대에서는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인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올해 등록금을 1%(6만4800원) 인상한 광주 한 대학 관계자는 “1% 인상으로는 추가 수입이 4000만원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면서도 “하지만 조금이라도 올려야 다음에 올릴 때 거부감이 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등록금이 저렴한 대학부터 선제적으로 움직일 가능성도 있다. 같은 비율을 인상해도 심리적 저항감이 낮기 때문이다. 올해 인상을 결정한 교대 8곳은 한 학기 등록금이 159만~180만원 수준이다. 서울시립대도 한 학기 등록금이 119만7950원으로 저렴하다. 황인성 한국사립대총장협의회 사무처장은 “일부 대학 등록금은 이미 고등학생 학원보다 싸고 '펫 유치원' 보다도 싸다”고 말했다. 실제로 재수 종합학원의 정규반의 경우 월 수강료가 200만원 안팎에 달한다. 학원과 대학의 수업 시간·과목이 다르지만 체감 비용은 학원이 더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정 지원과 연계한 정책, 약발 다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지난 2월 8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3년 맞춤형 국가장학금 지원 기본계획을 발표하며 등록금 인상 대학에 유감을 표명했다. 뉴스1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지난 2월 8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3년 맞춤형 국가장학금 지원 기본계획을 발표하며 등록금 인상 대학에 유감을 표명했다. 뉴스1

재정 지원을 미끼로 한 등록금 억제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법적으로 대학은 등록금을 직전 3개년 물가 상승률 평균의 1.5배까지 인상할 수 있다. 하지만 교육부가 등록금을 올리는 대학은 국가장학금을 지원해주지 않겠다고 하면서 인상을 억제해 왔다.

하지만 최근 물가가 급격히 오르면서 정부의 국가장학금 지원을 받는 것보다 등록금 인상이 재원 확보에 유리해졌다. 이해우 동아대 총장은 “등록금을 인상해 못 받는 정부 돈은 20억원인데, 늘어난 수익은 50억원”이라고 말했다.

규제를 받지 않는 대학원이나 유학생 등록금은 이미 크게 오르고 있다. 올해 4년제 대학 중 69곳(35.7%)은 대학원과 외국인 유학생 등록금을 올렸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도 25곳 중 12곳이 등록금을 인상했다. 2014년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임희성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이제는 간접적으로 등록금을 낮추는 방식보다는 대학에 대한 직접 재정 투입을 대폭 늘려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등록금 인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재정 지원은 사립 대학 재정 투명화, 민주화와 정부 당국의 철저한 관리 감독이 전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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