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단독] 대법판결 사흘전…권익위, 김태우 '책임감면' 조치 기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2019년 2월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 등 의혹을 제기했던 김태우 전 구청장이 당시 서울동부지검으로 출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던 모습. 연합뉴스

지난 2019년 2월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 등 의혹을 제기했던 김태우 전 구청장이 당시 서울동부지검으로 출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던 모습. 연합뉴스

공무상 기밀누설죄로 지난 18일 구청장직을 상실한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이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신고자 책임감면 조치’를 신청했으나 기각당한 것으로 22일 확인됐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감찰 무마와 민간인 사찰 의혹 등을 폭로해 재판에 넘겨진 김 전 구청장은 지난 18일 대법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의 판결이 확정됐다.

권익위는 대법원 판결 사흘 전인 지난 15일 전원위원회를 열어 김 전 구청장의 ‘공익신고자 책임감면 조치’ 신청에 대해 논의했으나 전원위는 기각 결정을 내렸다. 문재인 정부 때 임명돼 여권으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전현희 권익위원장은 정치적 중립성 논란을 우려해 위원회 회의 중 별도의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고 한다.

‘책임감면 신청’은 자신의 공익신고로 인해 발생한 형벌의 감경을 권익위에 요청하는 절차다. 신청이 받아들여졌다면 권익위는 대법원에 김 전 구청장에 대한 감형 필요 의견을 전달하게 된다. 선출직 공직자는 형사 사건에서 금고 이상의 형을 확정받으면 직을 상실한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법원이 권익위 요청을 따를 의무는 없다”면서도 “김 전 구청장은 공익신고자 보호기관인 권익위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5일 열린 전원위원회에선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3명의 권익위 부위원장 및 1명의 비상임위원이 김 전 구청장의 책임감면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주장했다고 한다. 청와대 특감반 출신인 김 전 구청장의 폭로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이 드러났고, 실제 조 전 장관이 유죄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김태우 전 구청장의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 폭로로 지난 2월 징역 2년의 유죄 판결을 받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스1

김태우 전 구청장의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 폭로로 지난 2월 징역 2년의 유죄 판결을 받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스1

지난 2월 법원은 조 전 장관의 1심 판결에서 “정치권의 청탁에 따라 정상적으로 진행되던 감찰을 중단시킨 것으로 죄질이 불량하고 죄책도 무겁다”며 징역 2년을 선고했다. 김 전 구청장의 폭로로 드러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도 지난해 1월 징역 2년 확정 판결을 받았다. 김 전 구청장은 유죄 판결 뒤 페이스북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유죄면 김태우는 무죄다. 이게 상식이고 정의고 법치”라고 썼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출신 부위원장 등을 제외한 다수의 전원위 위원들은 김 전 구청장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전 구청장이 언론에 먼저 폭로한 뒤 권익위에 공익신고를 했고 ▶김 전 구청장이 유죄 판결을 받은 사안과 조국 전 장관의 비위는 별개의 사안이란 점 등이 그 이유로 제기됐다고 한다. 김 전 구청장은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 의혹 등 공무상 비밀 5건을 언론에 누설한 혐의로만 기소돼 유죄를 받았다. 앞서 검찰은 민간인 사찰 의혹을 무혐의 처분했다.

법원이 김 전 구청장에게 유죄를 선고하며 “권익위에 신고하고, 수사기관에 고발함으로써 청와대의 잘못을 시정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음에도 언론에 먼저 제보했다”며 유죄 판결을 내린 점도 참작됐다고 한다. 현행법상 언론 제보는 공익신고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공익신고 내용이 언론에 공개된 경우, 그 내용이 공익신고와 다르지 않다면 권익위는 공익신고 조사를 중단할 수 있다.

김태우 전 구청장의 유죄 판결을 비판한 김태규 권익위 부위원장의 모습. 연합뉴스

김태우 전 구청장의 유죄 판결을 비판한 김태규 권익위 부위원장의 모습. 연합뉴스

하지만 권익위 결정이 자칫 공익신고를 위축시킬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김태규 권익위 부위원장은 지난 20일 페이스북에 김 전 구청장의 유죄 판결을 비판하며 “공익신고를 받는 기관이 권력에서 자유롭지 않을 때 공익신고자가 대안으로 떠올리는 곳은 대개 언론이다. 비위 고발이 국가기관에 독점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이) 공익신고제도를 깊숙이 찔러 막아두는 부작용을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도 했다. 공익신고 문제를 다뤄온 양홍석 변호사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현행 공익신고자 보호법상 권익위의 판단이 틀렸다고 보긴 쉽지 않다”면서도 “공익신고 보호의 범위를 공익 제보로 넓히는 방안 등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