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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인어공주, 과도한 PC?…그녀 본 뒤, 이런 생각 사라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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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1989년작 애니메이션 '인어공주'를 실사화한 동명의 디즈니 영화가 숱한 논란 끝에 24일 개봉한다.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1989년작 애니메이션 '인어공주'를 실사화한 동명의 디즈니 영화가 숱한 논란 끝에 24일 개봉한다.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에리얼만 흑인이 된 게 아니다. 디즈니는 자신들이 1989년에 내놨던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하면서 주인공 캐릭터의 인종을 바꾼 것 뿐 아니라, 전체 등장인물들의 인종을 다양하게 구성했다. 도구적 역할에 머물렀던 캐릭터를 보다 주체적으로 바꾸고, 이질적인 세계 간 공존과 화합을 추구하는 메시지에 더 크게 방점을 찍었다. 사람들의 변화한 인식에 발맞추려는 노력이지만, ‘원작을 훼손하는 과도한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주의’라는 일부 관객들의 반발도 여전하다. 논란 끝에 베일을 벗는 ‘인어공주’는 34년 전처럼 전세계 관객을 홀릴 수 있을까.

24일 개봉하는 ‘인어공주’는 동명의 애니메이션을 실사로 옮긴 디즈니 뮤지컬 영화다. 늘 바다 너머를 동경했던 인어 왕국의 막내딸 에리얼(할리 베일리)이 조난 당한 인간 세계의 에릭 왕자(조나 하우어 킹)를 구해주면서 육지로 나아가게 된다는 주요 줄거리는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실사판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단연 주인공 에리얼의 인종이다. 2019년 에리얼 역에 흑인 가수 겸 배우 할리 베일리가 낙점된 직후부터, 애니메이션 속 빨간 머리에 하얀 피부의 에리얼을 기대했던 원작 팬들은 ‘#내 에리얼이 아니다(NotMyAriel)’라는 SNS 해시태그 운동 등을 벌이며 캐스팅에 반발해왔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에리얼을 할리 베일리에게 맡긴 제작진의 결정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는 원작 속 에리얼처럼 세상 만물을 향한 천진난만한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이다가도, 한순간에 원작보다 한층 성숙하고 강인한 얼굴로 돌변하기도 한다. 특히 육지로 가고픈 열망을 담아 부르는 영화의 주제곡 ‘파트 오브 유어 월드(Part of Your World)’ 장면에서는 특유의 호소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전율을 일으킨다.

디즈니 실사영화 '인어공주' 스틸컷.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디즈니 실사영화 '인어공주' 스틸컷.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디즈니 실사영화 '인어공주' 스틸컷.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디즈니 실사영화 '인어공주' 스틸컷.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영화를 연출한 롭 마샬 감독은 최근 미국 매체 데드라인과의 인터뷰에서 “처음부터 유색인종을 캐스팅하려는 계획은 없었다. 그저 최고의 에리얼을 찾자는 생각 뿐이었다”며 “캐스팅을 막 시작했을 무렵 그래미 시상식에서 마치 천사처럼 노래하는 할리 베일리를 봤다”고 그를 캐스팅한 계기를 밝혔다. “베일리가 연기를 할 수 있는지도 모른 채 (오디션에) 불러들여 ‘파트 오브 유어 월드’를 부르게 했는데, 노래가 끝날 때쯤 나는 울고 있었다”며 “그 후로도 많은 배우들을 더 봤지만, 그가 세워놓은 높은 기준을 넘는 사람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흑인 에리얼을 내세운 것의 연장선으로, 실사 ‘인어공주’는 배경과 등장인물에도 다채로운 색채를 가미하며 다양성을 꾀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에리얼의 여섯 언니가 모두 하얀 피부로 그려진 것과 달리, 실사에서는 ‘각 인어가 일곱 대륙의 바다를 상징한다’는 설정에 맞게 동서양 각지의 배우들이 제각기 다른 디자인의 조개껍데기와 꼬리를 지닌 모습으로 등장한다.

육지 세계 또한 원작에서는 유럽의 여느 마을처럼 묘사됐다면, 실사에서는 여러 인종이 어우러져 사는 열대 지방 부근으로 바뀌어 알록달록한 의상과 소품이 화면을 수놓는다. 인간과 인어 세계의 갈등을 통해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이해하고 공존하는 법을 보여주는 원작의 메시지는 이런 배경 하에 한층 더 강화됐다.

디즈니 실사영화 '인어공주' 스틸컷.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디즈니 실사영화 '인어공주' 스틸컷.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디즈니 실사영화 '인어공주' 스틸컷.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디즈니 실사영화 '인어공주' 스틸컷.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애니엔 없던 신곡 3개 추가…에릭 왕자 비중↑

원작에선 비중이 크지 않던 에릭 왕자의 서사가 추가된 것도 큰 차이점이다. 애니메이션과 마찬가지로 백인이라는 설정은 유지됐지만, 날 때부터 왕족이 아니라 흑인 왕비에게 입양돼 자란 인물이라는 배경이 더해졌다. 이런 배경 탓에 왕족으로 사는 처지를 불편해 하는 동시에 “뒤처지면 안 된다”는 일념으로 미지의 바다를 탐험하려는 욕구가 강한 성격으로 그려진다. 공주와 왕자가 사실상 서로의 겉모습만 보고 반하는 원작과 달리, 서로의 내면을 알아본 뒤 사랑이 깊어지는 것도 서사의 진화라고 할 수 있다.

이같은 서사를 펼쳐내기 위해 삽입된 에릭 왕자의 솔로곡 ‘와일드 언차티드 워터스(Wild Uncharted Waters)’를 포함해 애니 원작엔 없던 노래 세 곡이 추가됐다. 에리얼이 육지에 처음 제대로 발을 딛는 순간 부르는 솔로곡 ‘포 더 퍼스트 타임(For the First Time)’, 조력자 캐릭터 세바스찬과 스커틀이 우스꽝스러운 랩을 주고받는 ‘더 스커틀벗(The Scuttlebutt)’ 등이다. ‘인어공주’ 뿐 아니라 ‘알라딘’ ‘미녀와 야수’ 등의 디즈니 애니메이션 사운드트랙을 작곡한 알란 멘켄이 작사가 린 마누엘 미란다와 손잡고 신곡을 작업했다.

디즈니 실사영화 '인어공주' 스틸컷.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디즈니 실사영화 '인어공주' 스틸컷.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디즈니 실사영화 '인어공주' 스틸컷.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디즈니 실사영화 '인어공주' 스틸컷.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원작의 명곡으로 꼽히는 ‘언더 더 씨(Under the Sea)’ 장면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바닷속 풍경과 사악한 바다 마녀 울슐라(멜리사 맥카시)가 에리얼에게 다리와 목소리를 맞바꾸는 거래를 제안하는 대목 등은 애니에 비해 실사에서 한층 풍부해진 대목이다. 큰 화면으로 바다 배경의 뮤지컬을 감상한다고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극장 나들이가 될 수 있다.

다만 34년 전 제작된 원작의 재미와 감동을 실사가 뛰어넘느냐 여부에는 물음표가 남는다. 원작(83분)보다 50여분 가량 길어진 135분의 러닝타임을 자랑하지만, 추가된 서사와 노래가 기존 작품의 매력을 유지하는 걸 넘어 배가시키는 역할까지는 하지 못한다. 미국 대중문화 전문 매체 버라이어티는 최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의 월드 프리미어(세계 최초 상영) 이후 “할리 베일리의 에리얼은 칭찬하나, 리메이크가 애니메이션 원작에 부응하는지는 의문”이라고 현지 평론가 등의 반응을 요약해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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