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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 폭탄’에 경기둔화, 한은 기준금리 인하 검토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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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한·미 기준금리 격차 확대와 금리 정책

배선영 연세대 경제대학원 교수

배선영 연세대 경제대학원 교수

역린(逆鱗)을 건드리면 위태로워지고, 금기(禁忌)를 건드리면 지탄받기 쉽다고 했다. 우리 경제에서는 한국은행 기준금리에 대한 공개적 논박이 거의 금기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제는 기준금리 인하를 검토할 때가 됐다.

미국 기준금리 연 5.25%, 한국은 3.5%

작년 3월 이래 미국 중앙은행(Fed)은 자국의 물가상승을 억제하겠다며 기준금리를 급속히 올려 왔다. 당초 연 0.25%였던 것이 불과 1년여 만인 2023년 5월 현재 연 5.25%로 올라와 있다. 한국은행도 이에 동조해 기준금리를 수차례 올렸다. 미국보다 속도를 늦추기는 했지만, 당초 연 1.25%였던 것이 현재 연 3.50%로 높아졌다. 이에 따라 시장금리가 급상승하며 막대한 가계부채의 이자 부담이 종전의 거의 2배 수준으로 올랐다. 서민, 중산층, 청년층 등 많은 국민이 ‘이자 폭탄’으로 큰 고충을 겪고 있다. 상당수 기업도 마찬가지 사정에 처했다. 가계소비와 설비투자의 동반감소에 따른 경기둔화 우려도 커진 상태다.

이에 정부는 이자 폭탄을 완화하기 위해 1금융권에 대한 대출금리 인하 압박, 정책금융기관 주도의 저금리대출 확대 등 다양한 대책을 시행하고 있고, 어느 정도 성과도 거두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약재들은 설사 백 가지를 쓴다고 해도 기준금리 자체가 높은 상황에서는 그 효과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공복 혈당 자체가 높으면 아무리 식사를 가리고 줄여서 해도 식후 혈당은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시중 고금리로 가계·기업 고통
기준금리 높으면 백약이 한계

금리차 따른 자본 유출 일시적
시세·환차익 겨냥해 다시 유입

글로벌 인플레이션 기세 꺾여
선제적 금리인하 검토 필요

이런 상황을 종합할 때 필자는 현 상황에서 최상의 대책은 높아진 기준금리를 다시 낮추는 것이라고 본다. 당장 “기준금리를 낮추면 이자 폭탄은 분명히 완화될 것이지만, 환율과 물가는?”이라는 반문이 제기될 것이다. 이를 염두에 두며 순차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자본이탈·환율 불안 우려 지나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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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엔 “미국 기준금리는 높은데 우리 기준금리가 낮으면, 미국의 높은 금리를 좇아 자본이 계속 유출되는 바람에 환율 급등(달러값 급등)이나 외환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그러나, 기준금리 차이가 자본유출에 영향을 미칠 때는 단순한 명목 기준금리의 차이가 아니라 해당국의 물가상승률이 반영된 실질 기준금리의 차이가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미국 물가상승률이 우리나라보다 높다면 우리 명목 기준금리는 낮아도 무방하다.

설사 우리 실질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아주 낮더라도, 자본유출이 계속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환율이 어느 정도 수준까지 높아지고 나면 멈추게 되고, 그때 이후로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향후의 환차익을 겨냥해 오히려 자본을 들고 들어오기 때문에 환율은 서서히 하향 안정화하기 마련이다. 실제 2022년 11월 1450원 수준까지 올랐던 원·달러 환율은 2023년 5월 현재엔 1320원대 수준으로 내려와 있다. 더 단적인 예를 든다면, 기준금리를 마이너스 0.10%에서 아예 올리지 않은 일본의 경우에도 2022년 10월 달러당 150엔 수준까지 올랐던 환율이 현재는 130엔대 수준으로 떨어져 있다.

시장엔 환율 안정화 메커니즘 작동

조금 자세히 설명한다면, 초기에 자본유출이 일어날 때는 많은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주식을 팔아(주가 하락) 원화를 손에 쥔 후 그 원화로 달러를 사서(달러값 상승) 가지고 나가기 때문에 주가 하락과 달러값 상승이 동반해서 일어난다. 하지만, 이 과정이 거의 끝난 뒤 외국인 투자자는 시세차익과 환차익이라는 ‘이중의 차익’을 겨냥하고 다시 들어오게 된다. 이를테면 원화값이 달러당 1500원으로 하락한 경우 외국인 투자자가 1달러를 갖고 와 한국주식 1500원어치를 매수했다고 하자. 추후 한국 주가가 1500원에서 2000원으로 상승하면 그는 주식을 매도해 2000원을 손에 쥐게 되고(시세 차익 실현), 이때 이를테면 환율이 1달러당 1000원으로 하락하면 2000원으로 2달러를 사서(환차익 실현) 나갈 수 있게 된다. 1달러를 투자해 이중의 차익을 통해 총 2달러로 불린 것이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결국 이런 메커니즘을 통해 이탈한 자본이 다시 들어오고 환율이 하향 안정화될 수 있다. 즉, 자본을 가지고 나갔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자수익보다 자본을 가지고 들어왔을 때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환차익과 시세차익의 합계가 더 커 보이면 그 시점부터 자본은 다시 들어오게 되고, 그에 따라 환율도 하향 안정화한다.

또한, 설사 환율이 어느 정도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반도체 수출 감소와 무역적자 지속 및 경기둔화의 우려가 큰 우리 상황에서는 ‘수출 촉진 및 수입 억제와 그에 따른 성장 촉진’의 효과가 있는 높은 환율이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물론, 여기엔 환율 상승이 수입물가를 끌어올려 국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물가에 대한 우려는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과도하다고 볼 수 있다.

주요국 금리 인상에 물가상승 주춤 

첫째, 환율이 한없이 상승하지 않는 한 물가도 계속 상승하는 것이 아니다. 둘째, 작금의 물가상승에는 수요 견인(demand pull) 요인보다는 공급 쪽에서의 비용 상승(cost push) 요인이 훨씬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비용 상승엔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비롯된 공급망 충격 등 글로벌 요인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런 요인은 미국과 유로존 등의 주요국이 일제히 기준금리를 올림으로써 점차 제어되어 가고 있다. 우리로서는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고서도 글로벌 물가 안정 흐름에 편승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 ‘남의 칼을 빌려 적을 제거한다’라는 차도살인(借刀殺人)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 등에서는 앞으로 세계와 한국 모두에서 경기가 둔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고 있다. 이 전망대로라면 어차피 국내외 물가는 하방 압력을 받을 것이므로(실제 물가 상승세 둔화 조짐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는 향후 기준금리를 1.0~1.5% 포인트 정도 인하하더라도 물가상승 부담을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넷째, 정부는 경기둔화를 막기 위해 내수를 증대하겠다며 재정 조기 집행, 소득공제 확대 등의 대책들을 시행하고 있다. 여차하면 추경까지도 고려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이런 대책들은 물가상승 억제를 위해 기준금리 인상으로 내수를 감소시키겠다는 한국은행의 통화정책과 엇박자를 낼 뿐만 아니라, 세금부담까지 늘릴 수 있다. 반면 ‘기준금리 인하’는 국민 세금을 쓰지 않고도 경기를 진작할 수 있는 효자 같은 카드다. 무릇 경제정책(economic policy)은 ‘경제적으로(economically)’ 운용하는 것이 좋다.

다섯째, 부동산경기 경착륙에 대한 우려가 가시지 않고, 특히 증권사나 2금융권에서 실행한 부동산 PF 및 기타 대출의 연체율이 상승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금융시스템 불안 요인의 경감을 위해서도 기준금리 인하가 필요하다.

한국 실정에 맞는 통화정책 필요

이상을 고려하면, 결론은 자명해진다. 향후 미국 중앙은행이 어떻게 하든, 한국은행은 현재 연 3.50%에서 일단 동결시킨 기준금리를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다시 낮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서, 경제전쟁 1막은 미국이 급격히 기준금리를 올려 강(强)달러를 만들면서 다른 나라에 인플레이션을 수출하는 환경 속에서 치러졌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수비를 해왔다. 경제전쟁 2막은 세계적인 경기둔화 우려 속에서 치러질 것이다. 수출경쟁력 약화 등의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비축된 힘을 소모하는 수비’에서 ‘힘을 비축할 동력까지 만드는 공격’으로 모드를 바꾸어야 할 것이다. 지금부터는 세금부담은 늘리지 않으면서 경제 활성화와 국가경쟁력 강화를 이룰 수 있는 담대한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기준금리가 인하되면 이자 폭탄에 짓눌렸던 소비가 회복될 수 있고, 금융비용 하락 및 환율 상승에 의한 가격경쟁력 향상으로 수출이 증대될 수 있으며, 이 분위기가 투자 증가를 유발할 수 있고, 이것이 품질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단, 다른 나라보다 우리 기준금리가 먼저 낮아져야만 앞의 효과들이 더 잘 발현될 수 있다. 한 금통위원이 “한국은행은 정부로부터는 독립했지만, 미국 중앙은행으로부터는 독립할 수 없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필자로서는 공감하기 어렵다. 한국은행은 한국경제에 가장 적합한 통화정책을 독자적으로, 그리고 독창적으로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배선영 연세대 경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