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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평형 보증금이 18억…규제가 키웠다, 뜻밖의 '초고가 임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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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안장원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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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장원 부동산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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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지난해 6월 준공한 브라이튼N40 아파트. 84~248㎡(이하 전용면적) 148가구 소규모 단지이지만 올해 공시가격이 17억원대에서 최고 50억원에 육박한다. 248㎡가 49억2000만원이다.

"일단 상한제는 피하고 보자" #강남·여의도 분양 대신 임대 #한강변에 난데없는 '원룸'도 #규제 풀렸지만 아직 지켜봐야

여의도 옛 MBC부지에 10월 입주 예정인 브라이튼여의도. 착공 이후 미뤘던 분양을 포기하고 대신 임대주택으로 사업을 변경해 임차인을 모집하고 있다. [사진 GS건설]

여의도 옛 MBC부지에 10월 입주 예정인 브라이튼여의도. 착공 이후 미뤘던 분양을 포기하고 대신 임대주택으로 사업을 변경해 임차인을 모집하고 있다. [사진 GS건설]

그런데 이 아파트는 임대주택이다. 임대의무 기간 4년인 단기 민간임대주택으로 등록돼 있다. 84㎡(31평형) 임대료가 보증금 17억~18억원, 월세 80만원이다. 월세를 전세로 환산하면 20억원 정도로 3.3㎡당 6000만원이 넘는다. 등록 임대주택이어서 업체 측은 임대료를 5% 이상 올리지 못하는 규제를 받는데도 임대주택 등록의 가장 큰 매력인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면제 혜택이 없다. 공시가격이 종부세 면제 기준인 9억원을 넘어서다. 이 아파트 공시가격이 모두 4000억원 정도여서 올해 종부세가 14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임대 4년간 500억원이 넘는다.

임대 후 분양에 1800억 종부세 부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 18년 만에 들어서는 새 아파트도 비슷하다. 10월 입주 예정인 브라이튼여의도다. 84~132㎡ 454가구로 구성된 49층 초고층이다. 브라이튼N40과 같은 사업자인데, 마찬가지로 이미 4년 단기 임대주택 등록을 해놓고 현재 임차인을 모집하고 있다. 보증금이 3.3㎡당 평균 5300만원으로 최고 보증금 32억원, 월세 490만원이다. 이 단지는 내년부터 종부세를 내야 하는데, 업계는 총 공시가가 1조원에 달해 세금이 300억원을 넘을 것으로 본다. 사업자가 두 단지에서 부담하는 종부세가 한 해 400여억원, 4년간 1800억원 정도다.

주택사업은 가능한 빨리 분양하는 게 정석이다. 그래야 투입비용과 이윤을 회수를 앞당겨 사업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두 단지가 천문학적인 금액을 세금으로 내면서 분양 대신 임대하는 이유는 분양가 규제 때문이다. 브라이튼N40은 강남구가 분양가상한제 지역이어서 땅값과 건축비만 받고 팔아야 한다. 현재 기준으로 업계가 추정하는 분양가가 3.3㎡당 6000만원 정도다. 브라이튼여의도는 지난 1월 영등포구가 상한제 지역에서 해제됐는데도 분양을 포기했다. 업계 관계자는 “상한제가 풀렸지만 이미 임대하기로 결정한 상황에서 분양으로 돌리기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대주택으로 등록한 뒤 임대의무 기간이 지나면 가격이나 청약자격 제한 없이 팔 수 있다. 임대의무 기간이 끝나기 전이더라도 임대주택 등록을 말소한 뒤 매도가 가능하다. 시세대로 팔면 분양가 규제를 받을 때보다 가격을 상당히 올릴 수 있다.

임대 후 분양에 대해 '무늬만 임대'로 비싸게 팔려는 ‘꼼수’가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고급주택을 짓는 데엔 상한제가 지닌 한계가 많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2018년 구청에서 승인받은 브라이튼N40 사업계획에 따르면 건축비가 3.3㎡당 1500만원이었다. 지금까지 나온 분양가상한제로 받은 최고 건축비가 3.3㎡당 1100만원(강동구 둔촌동 올림픽파크포레온)이었다. 업체들은 “상한제 적용을 받는 분양가가 고급주택 건축비로 턱없이 모자라고, 도심 땅값이 비싸 상한제의 감정평가 금액으로 토지·금융 비용 등을 보전받기 어렵다”고 말한다.

임대의무 기간 10년으로 늘어나

분양가 규제의 아이러니로 임대 후 분양이 고급주택 '인증 코스'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국내 최고급 아파트들이 분양가 규제의 고삐를 바짝 죈 전 문재인 정부에서 이런 방식으로 분양해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남더힐·나인원한남 등이다. 이들 아파트 현 시세는 3.3㎡당 1억원 정도다.

처음에 임대한 뒤 분양한 서울 용산구 한남동 나인원한남. 올해 공공주택 공시가격 2위에 오른 고급주택이다. [뉴시스]

처음에 임대한 뒤 분양한 서울 용산구 한남동 나인원한남. 올해 공공주택 공시가격 2위에 오른 고급주택이다. [뉴시스]

하지만 앞으로는 임대로 시작하는 고급주택을 찾아보기 어려울 전망이다. 임대주택 규제가 까다로워져서다. 용산에서 한남더힐·나인원한남을 이을 주택으로 주목받는 현장이 있다. 용산공원 옆 옛 유엔사 부지 복합단지다. 이곳에는 85㎡ 초과 중대형 아파트 420가구와 오피스텔 723실을 포함해 호텔·문화시설·상가 등이 들어선다. 지난 2월 착공에 들어갔다.

업계는 분양가 규제를 받지 않는 오피스텔을 먼저 분양하고 아파트 분양은 미룰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아파트 임대 후 분양이 쉽지 않다. 임대주택 규제 강화로 임대의무 기간이 10년으로 늘어났고, 중간에 임대주택 등록을 말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준공 후 10년간 막대한 세금 등 ‘출혈’을 감당하면서 버티기엔 부담과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말했다.

고급주택 시장에서 분양가 규제는 '기형' 주택을 낳기도 했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금싸라기 땅인 서울 광진구 광장동 옛 한강호텔 부지가 그런 예다. 분양가 규제를 피하기 위한 선택이 ‘원룸형’ 도시형 생활주택이었다. 도시형 생활주택은 300가구 미만 규모에서 방 하나를 갖추고 1~2인 가구가 살 수 있는 초소형 주택으로 분양가 규제 대상이 아니다. 사업자는 당초 고급주택 계획을 접고 울며 겨자 먹기로 2021년 3월 49㎡ 원룸형 298가구로 사업계획 승인을 받고 그해 11월 착공까지 했다. 그러다 지난 1월 광진구가 상한제 지역에서 풀리자 중대형 주택으로 설계를 변경하고 있다.

구청 관계자는 "도시형 생활주택에서 일반 아파트로 바꾸는 사업계획 변경 승인 신청이 접수돼 있다"며 "아직 터파기 공사 중이어서 내부 평면 변경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집값 오르면 가격 규제 확대 가능성  

이들 주택사업은 하나같이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는 분양가 규제가 없었다. 사업 중간에 상한제가 생기면서 사업이 꼬이기 시작한 것이다. 유엔사 부지 사업의 경우, 2017년 부지 확보 이후 착공까지 6년이나 걸렸다. 토지 확보에서 착공까지 통상적인 사업 기간은 2~3년이다.

문 정부가 서울과 수도권 주요 지역을 대상으로 지정했던 상한제 지역이 지난 1월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와 용산구를 제외하고 해제됐다. 대대적인 규제 완화에 주택건설업계는 반가우면서도 내심 불안한 마음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상한제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불씨’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집값이 다시 뛰면 또 언제, 어떻게 가격 규제가 확대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상한제가 풀렸어도 마음 편히 주택사업을 하지 못하는 이유다.